필카 사진을 더 보는 이유

스크롤이 귀찮아지면서 시작된 궁금증

by 씬앤콰이엇


스크롤해서 사진 보기가 귀찮아졌다.


일단은 보고 싶은 사진과 이걸 왜 찍었나 싶은 사진들이 뒤섞여 있으니 보고 싶은 걸 찾는 과정이 번거롭고, 스크롤 압박이 은근 부담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폰이 추천해주는 사진 모음에 세련된 효과를 덧입힌 슬라이드 쇼를 기능을 자주 사용하는데 꽤 편리하다. 나름 만족스럽게 편집해서 보여준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아주 작고 사소한 감정 같은데 사라지지 않는 불편한 느낌 중 하나다.



사진은 대학생 때 많이 찍으러 다녔다. DSLR이 막 출시된 시기였고 아날로그 감성이 유행이어서 아버지 DSLR과 내 필름 카메라 들고 심심찮게 출사를 다녔었다. 6개월 동안 교환학생 신분으로 시카고에 머물렀을 때는 가장 많이 사진을 찍은 시기였는데 가기 전에 가장 큰 고민은 어떤 카메라를 들고 갈까였다.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 하나는 니콘 D70. 다행히 아버지는 미국 가는 아들을 위해 빌려줄 마음이 있으셨다. 다음은 내가 가지고 있던 펜탁스 mx. 몇천 장을 찍을 수 있는 DSLR이 있는데 불편하게 필름과 펜탁스를 가져가는 게 맞나 고민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둘 다 가져가는 것. 니콘 D70과 펜탁스 mx 그리고 36방 필름 다섯 롤.


낯선 색상, 텍스쳐, 피부색 조합이 미국 vibe로 강렬하게 남았다.


문득 나의 시선을 강렬히 사로잡았던 미국 바이브를 소환하고 싶어 진다. 그 시간과 장소로 돌아갈 수 없으니 당연한 것 같다. 옛 기억을 더듬어 보고자 외장하드 혹은 클라우드에서 사진들을 찾아보는데 주로 찾는 폴더는 몇 천장 찍어둔 DSLR 폴더가 아니라 필름 스캔해 둔 다섯 롤의 폴더이다. 대부분 DSLR을 들고 다녔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보려면 DSLR로 찍은 사진을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 손이 가지 않는다. 필름 다섯 롤 스캔본은 종종 찾아본다. 왜 몇 장 되지도 않은 필카 사진들을 보면서 그 시간을 추억하고 있을까?


메모리 카드와 필름이 주는 태도의 차이


DSLR로 찍을 때는 마음 한 구석이 든든했다. 대여섯 번, 아니 그 이상을 찍어도 부담 없었기 때문이다. 몇천 장을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 카드 때문이다. 어딘가 놀러 가거나 여행을 다녀오면 수십 장, 수백 장의 사진들이 메모리 카드에 저장되어 있었다. 반대로 필름 카메라로 찍을 때는 긴장했다. 나에게는 필름 다섯 롤밖에 없었고, 조금이라도 어둑어둑해지면 찍을 수 없었으며, 조리개를 손으로 맞추면서 빛의 양을 어림잡아 찍어야 했기 때문이다.(펜탁스 mx는 완전 수동이다.) 그래서 무작정 렌즈 커버를 열고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정말 찍고 싶다고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에 촬영 가능한 상황이 되어야 찍을 수 있었다.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소중한 필름 한 장이 날아간다. 같은 사진을 여러 장 남기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한 롤이 36장이었지만 처음 몇 장은 날아가고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있을 때는 꼭 기억하고 싶은 순간임을 먼저 결정하고 찍었던 것 같다. 순간을 기억으로 남기고 싶을 때 셔터를 눌렀고 망설여지는 순간에는 누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몇몇 사진은 그때 찍을 당시의 온도, 공기, 뷰파인더 바깥 풍경도 떠오르곤 한다. 몸속 구석구석 숨어있는 감정의 세포들을 소환하는 느낌이랄까. 반면 DSLR은 적당히 좋은 느낌이면 먼저 여러 장 찍어두고(좋은 것 같은 느낌에도 찍어두고), 정말 기억하고 싶은 한 장의 사진은 미래의 나에게 판단을 미루었다.



이 순간을 기억으로 남기겠다 결정하고 셔터를 누른다.


기억하기로 결정한 타이밍이 중요하다. 원하는 순간을 박제해야 하며 두루뭉술한 조각들을 모아 두고 나중에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섯 롤밖에 안되지만 필카 사진을 더 찾아보게 되는 이유이다. 필카로 찍을 때 머릿속에 정리해 두었던 규칙과 그때 경험한 기억을 정리해본다면 더 나은 기록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