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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랑 Aug 15. 2023

입사 15년, 그냥 퇴사 해야겠다

끝나지 않는 비행 사춘기

 내향적 집순이인 내가 어떻게 승무원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떻게 비행 생활을 15년이나 버텼는지 더 모르겠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많이 공감했던 문장이 있다.

‘나는 유복하게 자란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듯이 자신의 일을 잘 해내지 못했다.’ [데미안]

 20대에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상태로 진로를 결정했던 것이 비극의 서막이었나.


 비행을 시작하고 회사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게 맞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 내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책을 파고들어봤지만, 당시에는 '스물일곱 이건희처럼',  '그래도 계속 가라', '비서처럼 하라' 등 힘들어도 인내하고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 식의 나의 피나는 노력만이 진리인 양 말하는 책이 대세였다. 그리고 꽤나 성실한 모범생이었던 나는 그 책의 조언들을 새기며 10년이 넘도록 미련하게 노력하며 비행하였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지금 생각해도 매력적이다.


 정해진 스케줄의 근무시간만 근무하면 되고 야근이나, 추가근무는 없다. (비행기 딜레이를 야근이라고 하면 야근이고, 비정상상황 보고서 정도가 연장업무랄까?) 비행이 끝나면 관련된 모든 임무가 끝나기 때문에 일의 연속성이 없어 퇴근 후에는 직장인으로 무장한 마인드를 완전히 OFF 해도 된다.

 그리고 한 달에 비행시간이 100시간을 넘기지 않고 밤에 하는 비행도 있기 때문에, 많은 낮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집에 있을 수 있어 백수나 한량으로 오해를 받을 만큼 한가하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다. 지금은 더 이상 아니지만 1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낯선 외국 현지 음식들을 먹을 수 있고, 해외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을 쇼핑하는 것도 특권이라면 특권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한국에서도 충분히 먹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요즘도 이삼일에 한 번 꼴로 세계의 핫플레이스를 방문하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승무원들은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에서 인기가 많은 걸 보면 아직까지도 이런 것들이 승무원 베네핏이라 해도 되겠다.


 그리고 직원 할인 항공권 혜택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이것은 승무원뿐 아니라 항공사 직원 혜택이기 때문에 굳이 따지면 '승무원 베네핏'은 아니지만. 일본이나 중국을 10만 원이 안되게, 그리고 유럽이나 미주를 20만 원 정도의 공항세만으로 왕복할 수 있으니, 여러 항공사 직원 베네핏 중 갑 오브 갑이랄까?






 이런 여러가지 베네핏 덕분에 함께 일했던 승무원 대부분은 직업만족도가 크다. 나 역시 스스로에 대해서 잘 몰랐을 때에는 만족했고 즐거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주변 분위기에 ‘아, 이게 즐거운 거구나’ 하고 받아들였던 건지도. 그땐 ‘친구 따라 강남 가며’ 살았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잘 몰랐던 때고, 친했던 입사동기들도 다 비행을 즐거워했으니까.


 싱글일 때는 ‘남편과 매일 못 봐서 더 애틋해진다’며 결혼하고 더 좋은 직업이라 느낀다는 결혼한 선배들의 말을 믿었다. 결혼 후에는 ‘평일에 많이 쉬어 반은 전업맘이나 다름없어 일반 9 to 5 회사보다 아이 키우기 좋다’는 육아 선배들의 말을 믿었다. 다들 아기 낳고 육아해 보라고, 비행 나오는 게 너무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나도 그렇게 느끼리라 믿고 인내하며 첫째 낳고 복직해서 다녀보고, 또 아이 하나일 때와 둘은 다르대서 둘째 낳고 또 복직해서 다녀보았는데, 왜 한 번 아니라고 느낀 비행은 다시 좋아지지 않는 걸까?


 그러다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말해도 내가 아니면 아닌 거였는데, 나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라며 내 내면의 소리를 부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인 건데.


 그냥 퇴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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