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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랑 Aug 18. 2023

내 이미지는 내가 챙길게

아이섀도를 하지 않으면 -2점이라고?


왜 승무원은 그렇게 풀메이크업을 하고 다녀?


 항공사마다 이미지메이킹 규정이 있고 승무원은 근무 중 그 규정에 맞는 외모와 복장을 유지해야 한다. 이미지메이킹 규정은 남승무원과 여승무원 각각 다르게 적용되는데 보통 남승무원에게 조금 유하다. 코로나 이후 이미지메이킹 규정이 많이 완화되었지만 (작지만 소듕했던 마스크..^^), 여승무원들은 기본적으로 화장과 머리모양, 그리고 손톱관리, 유니폼, 신발, 스타킹 색, 액세서리 규정까지 세세한 지침이 있다.

 새벽쇼업(출근)이거나, 해외에서 밤샘비행을 위해 쇼업준비를 할 때면 화장이고 뭐고 30분만 더 자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규정은 규정이니 지켜야 했다. 눈썹도 손톱도 정돈되어 있지 않은 남승무원을 볼 때면 조금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같은 월급을 받으며 여승무원은 남승무원보다 출근준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승무원 이미지메이킹 평가항목


 입사초기에는 열심히 이미지메이킹 규정을 따랐지만, 나는 무언가 꾸미는 데 워낙 손재주가 없다 보니 화장 솜씨와 실력이 늘 부족했다. 거의 비행 때마다 누군가로부터 이미지메이킹을 평가받는데(함께 일하는 동료 중에 평가자가 있다), 그러다 보니 만나면 서로의 상태를 지적해 주는 낯선 문화도 있었다. '하랑씨, 오늘 머리 좀 이상하게 한 거 같은데? 점수 깎이겠다. 다시 해야겠어~'라고 조언해 준 승무원은 나를 걱정해 준 건지 그 비행 평가자였는지 아직도 모른다.


 이런 환경이 계속되자 언제부턴가 누구를 만나면 그 사람이 나의 옷차림, 화장, 머리스타일을 평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위축되었다. 점점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게 되었고, 돈을 내고 완벽하게 메이크업을 받은 나의 모습 외에는 자신감이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이미지메이킹이 점수가 실적 평가에 들어가다 보니 서로의 외적인 모든 것을 평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랑씨는 키가 몇이에요? 키가 정말 작네요' 소리도 거의 매일 듣다 보니 키에 대한 없던 콤플렉스도 생겼다. '운동 좀 해~ 너무 약해 보여'라는 걱정 섞인 말부터 '하랑씨는 정말 말랐다. 남자들이 안 좋아하겠어~'라며 농담하듯 몸평을 하기도 했다. 정말 무례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땐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도 '힝, 그죠?' 하며 바보같이 웃었다.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ㅜㅠ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못할 것 같다. ㅠㅠ 김숙님처럼은 할 수 있을 듯.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몸단장 시간들에 지쳐갈 때쯤 페미니즘이 이슈가 되었다.

‘그래, 우리도 화장 같은 거 꼭 다 안 해도 되면 좋겠다. 네일만이라도! 아니 규정에 없다고 우리가 손톱정리도 안 하고 다니겠냐고!’라는 내 말에, 누군가는 ‘왜? 난 예쁘게 화장하고 꾸미는 게 좋은데? 너도 출근 말고 놀러 나갈 때도 꾸미고 나가잖아?’라고 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어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우리도 화장하지 말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외모를 꾸미는 데 있어 세세한 것들을 다 규정짓는 것보다 조금 자율성이 주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못볼꼴로 나타나지는 않을 테니. 눈이 건조할 때는 안경을 쓸 수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지, 매일 집순이처럼 자연의 모습 그대로 출근하고 싶다는 것은 아닌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란다. 그 말도 동의한다. 뭐 어쩌겠어.. 이런 회사인 줄, 이런 직업인 줄 알고 선택한 것인데! 시간이 흘러 내가 변한 것일 뿐..


 입사만 시켜준다면 뭐든 다 하겠다던 절실함으로 면접을 보고 들어왔어도, 언젠가는 배부른 소리를 하는 때가 온다. 평생 노예계약서에 서명한 것도 아닌데 당연한 것 아닐까?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아지기를 꿈꾸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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