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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랑 Oct 05. 2023

어떤 곳에서 살고 싶어?

제주시냐 서귀포냐. 어디에서 살 것인지 정했으니 살고 싶은 동네를 찾아야 한다. 제주도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 경험은 신선했다. 직주근접인 동네에서 예산에 맞추어서 적당한 집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더 좋은 동네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것도 아니다. 투자 목적 없이 오로지 거주 목적만으로 어떤 동네, 어떤 집에서 나의 일상을 보내고 싶은 지를 생각하는 것은 나를 돌아보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사 갈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이사 후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내가 사는 집이 성공의 기준, 재력의 척도가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으로 성큼 다가왔다.





관광지가 아니라 거주지로써 제주도를 보기 위해 남편과 둘이서 제주를 돌아다녔다. 제주공항을 중심으로 약간 서쪽부터 그리 멀지 않은 동쪽까지가 우리가 생각하는 거주지 후보 범위였다.


관리사무소가 있는 아파트 vs 정원이 있는 주택


동네를 돌아보기에 앞서 아파트와 주택(타운하우스) 사이에서 살고 싶은 집의 형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관리사무소가 있는 아파트를 원했다. 아직 집을 관리하는데 둘 다 서툴고, 쓰레기를 배출하는 일이나 택배나 아무래도 공동주택이 살기 편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살더라도 주중의 생활은 서울에서처럼 평범한 일상일 테고, 주말에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제주를 즐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동안 서울에서 아파트에서 살았으니 제주도에서는 정원이 있는 주택에서 살아보자고 했다. 내가 주택을 망설이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정원관리와 벌레문제였다. 나는 주택 외부와 정원을 관리할 만큼 부지런하고 체력 좋지 못하고 벌레를 병적으로 싫어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정원은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업체에 맡겨 매달 관리를 받고, 벌레도 퇴치업체의 관리를 받기로 하면서 타협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정원이 있는 타운하우스를 알아보게 되었다.  



어떤 동네에서 살고 싶어?


그다음엔 타운하우스 단지가 있는 마을의 규모와 주변 환경을 따져보아야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지역은 한림, 애월, 하귀를 거쳐 조천, 신촌, 함덕까지..

우리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어 초등학교를 기준으로 마을을 살펴보았다. 전교생이 500명이 넘는 큰 초등학교부터 전교생이 12명이라는 작은 분교까지 마음에 드는 학교가 있으면 방문해서 상담을 하였고, 주변의 동네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제주살이를 온 사람들에게 이미 유명한 어느 초등학교는 도로에서 학교 정문으로 가는 길이 동화같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전교생의 80%가 육지에서 온 친구들로 전학이 너무 잦을 것 같은 단점이 있었다. 한 반에 학생이 남학생 17명에 여학생 3명인 반도 있었다(같은 학년인 다른 반은 그래도 거의 반반 비율이었다). 학년초에 남녀 골고루 반편성을 하였을 텐데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전학생이 나고 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또 건물 도색이 예쁜 것으로 유명해서 기대를 하고 찾아간 어느 초등학교는 교문 앞부터 도로까지 나가는 길이 좁고 복잡하게 갈래 져있고 3~4층짜리 빌라들이 조잡하게 모여 있어 왠지 안전 문제가 염려되어 제외되었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살고 싶은 동네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일단 그 마을 초등학교가 학년 당 학급이 2~3반은 있는, 한 학년 학생수가 50여 명 정도 되는 규모가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학교 주변이 번화가나 관광지보다는 조용한 분위기였으면 했다. 학교 앞에 있었으면 하는 것은 편의점과 음식점 2~3개, 카페, 공공기관이나 버스정류소 등이었다. 집에서 학교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였으면 했고, 멀어도 차로 5분 안에 갈 수 있었으면 했다.


살고 싶은 동네는 제주시내를 제외한 서쪽의 애월과 동쪽의 조천, 함덕 쪽으로 추려졌다. 그리고 이들 중 해안가 특성이 강한 함덕은 또 제외되었다. 서울에서 알아볼 때는 애월이 제주살이로 너무 핫해진 바람에 집값이 비싸서 조금 더 조용한 조천 쪽으로 가볼까 했지만, 실제로 다니면서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아무래도 신제주와도 가깝고 공항과의 가깝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 돌고 돌아 애월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이유가 있는 거였다.



마음에 드는 타운하우스 찾기


애월은 생각보다 면적이 넓었고 타운하우스 단지들도 많았다. 우리는 타운하우스 주변에 편의점이나 마트 등 급하게 물건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었으면 했고,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식당과 카페가 있었으면 했다. 그러다 보니 단일 브랜드의 타운하우스 만으로 이루어진 곳보다는 그래도 어느 정도 다른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10여 채의 주택들만 있는 타운하우스 단지는 주변에 도보로 갈 수 있는 편의점이나 카페가 없었고, 외딴곳에 집들만 있어 조금 무서웠다.

그리고 애월에는 농장과 축사가 많기 때문에 근처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냄새가 심한 동네가 있다. 축사의 냄새뿐만 아니라 농장은 농약을 치는 시기가 되면 날씨가 좋아도 창문을 열 수 없다. 그러니 주변에 농장이나 축사가 있는지 꼭 체크해야 한다. 이 문제는 집을 보러 간 날에 괜찮았다고 해서 안심할 순 없다. 계절마다, 그리고 하루 중 시간마다 다르니 마음에 드는 단지가 있으면 적어도 두 번은 다른 날, 다른 시간대에 찾아가 보길 권한다.  





몇 차례 제주에 내려와 발품을 판 덕분에 이사를 한 달 앞두고 두 개의 집이 후보로 남았다.

하나는 기숙학교 근처에 위치한 타운하우스 단지로, 4~5 업체의 타운하우스 단지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조금 더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었고,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연예인 둘이나 근처에 세컨드하우스를 가지고 있을 만큼 매력적인 동네였다. 매물로 나온 집은 마당이 넓고, 방해물 없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뻥뷰를 자랑하는 곳이어서 다른 곳보다 연세가 500 정도 더 비쌌다. 그리고 내부에 수납공간이 부족하였고,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조금 멀었으며 셔틀버스 타는 곳까지도 걸어가기 애매했다.

또 하나는 애월읍이 시작되는 곳에 흐르는 강 바로 옆에 있는 단지로, 옆집과 앞집을 비롯해 모두 10여 채의 타운하우스가 모여있으며, 주변에 4층짜리 아파트들도 있었다. 매물로 나온 집은 지은 지 7년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 집주인이 살다가 서울로 돌아가면서 내놓은 집이라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내부 수납공간도 좋았고 햇빛과 환기도 나쁘지 않았다. 뷰는 2층 테라스에서 옆집 지붕과 나무들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정도였지만 주변이 강과 숲이라 나쁘지 않았고, 뒤쪽으로 한라산을 볼 수도 있었다.


우리는 두 집 중에서 두 번째 집을 선택하였다. 두 번째 집은 단지 주변에 도보로 갈 수 있는 식당과 편의점이 있고,  제주 시내의 대형 마트까지도 차로 10분이 걸리지 않아 위치가 너무 좋았다. 비슷한 시기에 새로 구한 남편 직장과도 차로 15분 거리이니 (첫 번째 집에서는 30분은 넘게 걸린다) 직주근접도 되었다. 하지만 남편 직장 동료는 왜 그렇게 집을 멀리 구했냐고 했단다. 처음엔 ’뭐가 멀어?‘라며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이해가 되는 것을 보니 제주생활에 익숙해졌나 보다. 요즘은 제주에서 차로 10분 이상 걸리는 거리라고 하면 왠지 멀게 느껴진다.


집을 구할 때는 많이 저울질했지만, 막상 결정하고 살기 시작하니 지금 집이 점점 더 마음에 든다. 서울에서와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서 설거지만 하고 있어도 좋다. 사람들이 왜 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지도 알겠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마당에서 아이들과 뛰어놀 수 있다는 것도, 우당탕탕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에 층간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고개를 들지 않아도 넓고 높고 예쁜 하늘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도.. 이런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이렇게 큰 만족으로 다가올지 몰랐다.  



남들이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서울보다 제주가 좋아요', '아파트보다 주택이 좋아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언제든지 병원에 빨리 갈 수 있는 도시가, 그리고 나에게도 한 때는 덕질할 기회가 많은 서울이 가장 살고 싶은 곳이었으니까.

모두에게 좋은 동네란 있을 수 없다. 자기 성향과 현재 상황에 맞는 곳이 어디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밤하늘의 별 밑에서 서울로의 상경을 꿈꾸고 있을 수도 있고, 녹초가 되어 퇴근하는 길에 지쳐 아무도 없는 산속의 자연인이 되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냥 내가 제주에서 집을 구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지금의 나는 제주가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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