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랑 Oct 11. 2023

전 ‘효리네 민박’ 현 ‘소길별하’

몇 년 전 톱스타 이효리 씨가 결혼하고 제주도로 이사한 것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그 여파가 어찌나 컸던지 너도나도 제주살이의 꿈을 꾸었고, 그 후 '효리네 민박'이라는 방송을 찍으면서 그녀의 집은 관광지가 되어버렸다. 방송을 보지 않은 나도 그녀가 애월읍 소길리에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거의 전 국민이 알지 않았을까?

조용히 쉬고 싶어 이사를 했는데, 자꾸 찾아오는 사람들에 일상생활이 힘들어지자 그녀 부부는 집을 팔고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매입 당시보다 10배나 올랐다고 하니 톱스타 그녀의 영향력이 놀랍다. 지금 그 집은 제주의 한 법인회사가 소유하며 소규모 친환경 브랜드를 판매하는 로컬 브랜드샵으로 운영되고 있다. 소길별하라는 이름으로.


사실 이런 사실을 예전에 이미 소길별하를 다녀온 친구가 알려줘서 알게 되었을 만큼 나는 세상 소식에 재바르지 않다. 그래도 그 친구가 네이버로 사전예약을 한 후 방문하여야 한다는 것도 알려준 덕분에 이번 연휴에 무사히 방문할 수 있었다. 예약은 입장료 6000원을 내야 했지만, 음료와 과즐이 제공되니 그리 비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위치는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되는 거리였고, 아이들도 예쁜 카페에 놀러 가는 것을 좋아해서 기대가 컸다.


애월읍 소길 남길 34-37 주소를 찍고 가는데, 네비는 '이 쪽으로 가는 게 맞아?' 싶은 길로 우리를 안내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갈 때나 봤음직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좁은 일방통행 오르막 흙길을 구불구불 올라가니 마주 보는 여러 채의 주택과 밭들이 보였고, 그 끝으로 높은 담이 이어지며 넓은 주차장 대문이 보였다.


소길별하 주차장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에도 건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안쪽에 입구로 가는 길을 알리는 표지판과 안내하는 사람이 서서 예약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어찌나 외딴 마을 외딴곳에 있는지.. 소길별하로 가는 길 주변으로는 밭과 정원, 나무 그리고 언덕밖에 보이는 게 없어 외부와 단절된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얼마나 사람들 눈길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살고 싶었던 걸까?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지만.

주차장에서 소길별하 건물까지 가는 길


카페라고 해야 하나 샵이라고 해야 하나 모르겠는 그 건물은 톱스타의 집이었다고 하기엔 소박하다고 할 만큼 평범한 2층 주택이었다. 다른 가정집을 개조한 가게, 카페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편집샵으로 운영되는 본채는 제주에 대해 진심인 창작자들의 작품과 친환경, 비건 상품들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 공간으로 '누군가의 제주'를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음료를 주문할 수 있는 별채가 있었고, 정원에는 벤치와 작은 텐트, 그늘막 그리고 캠핑의자들이 있어 자유롭게 앉아 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누가 '효리의 민박' 팬이어서 와보았다면 더 의미 있는 곳이었겠지만, 이 공간만큼은 팬이 아니라도 한 번 와볼 만했다. 정원에 마련된 캠핑의자에 앉아 고요함 속에서 한없이 게을러지는 기분을 느끼며 세상과의 단절을 약간 경험한 시간도 꽤 좋았다.

아이들도 소길별하에서 키우는 고양이 길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지만, 반려동물을 동반하여 함께 방문도 가능한 키즈존이고, 반려동물존이었다.


그녀는 나와는 다른 이유로 제주도에 왔을 테고, 이곳에서 살면서 그 필요가 어느 정도 채워졌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방송 이후로 또다시 조용한 일상이 힘들어져서 이사를 가야 하긴 했지만, 이사 간 곳에서 다시 평온함을 만끽하고 있으리라.


제주도는 그런 곳인 것 같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어주는 곳.

관광을 오든, 이주를 하든, 사람에게, 세상에 받은 마음의 상처도, 몸의 아픔도 치유되고 회복되는 곳.   


그녀가 제주에서 바란 것들을 충분히 누렸기를..

모두가 제주에서 바라는 것들을 충분히 누리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곳에서 살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