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1년을 살 수 있다면
서울(을 비롯한 육지)에서는 원하는 동네의 살만한 집을 알아보기 쉽다. 네이버부동산 검색만으로 그곳의 시세와 주변환경, 실거주 후기 등을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동산에서 매물 정보를 서로 공유하기 때문에 한두 군데만 가보아도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을 수 있다.
제주도에는 제주오일장이라는 부동산 사이트가 따로 있다. 그리고 그곳에 올라오는 매물을 보면 부동산마다 보유하고 있는 매물들이 다르다. 같은 매물도 부동산에 연락해서 상담해 보면 부동산 재량으로 가격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찾으려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그런데 제주도 부동산은 육지와 다르게 이사 날짜 세 달 전쯤 연락하면 집을 보여주지 않는다. 적어도 이사하기 한 달 반전은 되어야 제대로 집을 소개받을 수 있다. 우리는 다행히 마음씨 좋은 중개사님을 만나 꽤 일찍부터 볼 수 있었지만, 원룸이나 오피스텔 같은 경우에는 이사 일주일 전에 가도 이삼일 전에 다시 오라 하기도 한다니 육지에서처럼 3달 전에 무작정 부동산을 찾아갔다가는 헛걸음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무작정 검색해서 네비를 찍고 부동산을 찾아가면 당황할 것이다. 네비를 따라가다 보면 '여기에 부동산이 있다고...?' 싶은 곳이 나오기도 한다. 그나마 진짜 부동산 가게가 있으면 또 다행이다. 그러나 있다고 해도 서울에서처럼 항상 오픈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중개업을 겸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전화로 예약을 해야 출근을 하는 경우도 많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남편과 나는 먼저 제주오일장 부동산 사이트를 둘러보면서 마음에 드는 집을 추렸고, 그 집을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에 연락을 해서 집을 보여달라고 몇 차례 문의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4달에 걸쳐 3번이나 제주도에 내려왔었고, 그때마다 2~3곳의 부동산 중개사와 상담하며 여러 군데 집을 보러 다녔다. 연고가 하나도 없던 이곳으로 이사오기 위해 살고 싶은 지역을 정하고 집을 구했던 그 선택의 과정을 짧게 공유해보려 한다.
제주도로 이사를 생각한다면, 먼저 어디에 살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나의 전 직업을 아는 이들에게 부끄럽지만 나는 제주도에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지역구분을 집을 구하면서 처음 알았다. 제주도를 한 도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행으로 올 때도 그저 주최자를 따라만 다녔기에.. 내가 맛집으로 검색해서 찾아 둔 가게는 왜 멀어서 못 간다는 건지 몰랐는데, 이제 너무나 잘 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혹시 있다면, 서울의 3배 정도 크기인 제주도 섬에서 대략 북쪽이 제주시, 남쪽이 서귀포시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1. 제주시 vs 서귀포시
제주도에서 가장 개발된 곳은 제주시이다. 육지로부터 신문물(?)이 제주시로 들어오고, 제주시에서 또 서귀포 쪽으로 내려가는데 몇 년은 걸린다나. 아마 제주시는 제주의 서울이고 서귀포시는 제주의 지방 같은 느낌인가 싶다. 병원 갈 일이 많을 것 같거나, 육지 갈 일이 많다면, 그리고 제주에 사는 동안 찾아올 친인척들이 많다면 공항 접근성도 무시 못하므로 제주시 근처에 살아야 한다.
하지만 진짜 제주스러운 곳을 찾는다면 서귀포 쪽이 매력적이다. 가장 큰 장점은 우선 제주라고 하면 유명한 관광지들은 거의 서귀포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 듯한 그런 감귤나무가 있는 돌담집, 귀농, 귀촌의 제주살이를 꿈꾼다면 서귀포가 좋겠다. 최근 영어교육도시, 혁신도시 조성으로 서귀포에도 많은 투자 개발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 공부와 진짜 제주를 느끼는 것 그 어느 하나 놓치기 싫은 사람들도 서귀포로 많이들 간다.
공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아이 공부를 생각했다면 서울을 떠나 제주살이를 오진 않았을 거다. 서울에서 학교 잘 다니고 학원도 잘 다니는 아이를 굳이? 우리 경우에는 아이들 공부는 고려사항이 아니었고, 근처에 갈만한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나마 바람이었다. 그렇기에 나름 제주시 학군이라는 노형동이나 영어교육도시, 국제학교 등은 생각에도 없었다. 누군가 어쩔 수 없이 제주로 발령이 나서 제주에 살아야 하는데 아이 공부가 걱정되는 분들이라면 직장과 학교, 학원, 상권이 밀집된 곳 위주로 살 지역을 알아보겠지.
제주시의 바다는 남해지만 서귀포시의 바다는 태평양이다. 태평양의 여름과 남해의 여름은 차원이 다르다. 여름에 서귀포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따뜻하다고 하니, 더위에 강하고 추위에 약한 분이라면 서귀포에 살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더위에도 약하고 추위에도 약해서 말이지..
2. 해안가 vs 중산간
제주도의 집들은 해안가 아니면 중산간에 위치하고 있다. 한 달 살기를 계획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만 먹으면 매일 바다로 바로 나갈 수 있는 해안가 마을이 매력적이다. 해안가에 자리한 숙박업체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면 해안가 마을의 장점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나도 해안을 따라 있는 산책길을 매일 산책하는 로망이 있는데... 그리고 강수량이 적고 겨울에 눈이 와도 금방 녹아 교통이 마비되지도 않는단다.
1년 이상 거주를 생각한다면 중산간의 마을을 추천하고 싶다. 중산간은 한라산 주변으로 해발고도 200m 이상 600m 미만인 지역으로 바다의 영향을 적게 받아 제주사람들이 많이 살기를 선호한다고 한다. 소금을 머금은 바닷바람은 자동차도, 집안의 겨울 옷, 이불, 가죽가방 등에도 그다지 좋을 것 같지 않다. 물론 눈이 많이 오면 고립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어차피 공무인력 부족으로 제설작업이 바로바로 되지 않는 것은 제주시청 앞도 마찬가지라고 하니 너무 외지만 아니라면 큰 고려사항은 되지 않겠다.
제주도에 짧게 머무르다 갈 것인지, 한달살이, 세 달 살이, 100 일살이, 반년살이, 일년살이를 할 것인지에 따라 내가 살고 싶은 지역이 달라진다. 그리고 같은 일년살이라도 사람마다 제주도에서 원하는 생활이 무엇인지에 따라 선호하는 지역이 다를 것 같다. 그건 그만큼 제주도의 모든 지역이 매력적이기 때문이겠지.
우리는 어디를 선택했을까? 힌트는 습도가 높으면 정신을 못 차리는 내게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습도차, 해안마을과 중산간 마을의 습도차는 거주할 지역을 정하는 데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마음에 쏙 드는 지역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