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랑 Sep 18. 2023

어떤 비행 어떤 승객이야기

어디 데리고 갔다가 내릴 때 데려다주면 안 되나요?


프놈펜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귀국 편 이코노미클래스 첫 열에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한 아기아빠가 아기를 데리고 탔다. 그 아기아빠는 이륙 후 아기를 배시넷(아기요람)에 눕히는 것도 쩔쩔매면서 좀 도와달라고 한다. 아니, 그동안 아기는 전적으로 엄마만 돌봤나..? 신생아도 아니고 적어도 7개월은 되어 보이는데.. 아기아빠가 아기를 안는 것도 잘 못하다니 뭔가 의아했지만, 뭐 어쩌겠어. 도와드려야지.


그리고 비행 중 아기가 큰소리로 계속 울어서 가보니 아기아빠는 우는 아기를 달래지도 않고 무관심했다. 후배가 아기를 안아 달래자 '어디 데리고 갔다가 내릴 때 데려다주면 안 되나요?'라고 요청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물론 글로 적으면서 약간 순화한 것이다. 아기아빠는 아기를 애물단지 취급하고 있었다.)

그 아기 아빠는 자기는 지금 너무 잠이 온다고 했다. 마침 밤비행으로 주변 승객은 물론 앞쪽 비즈니스클래스까지도 아기 울음소리에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라 결국 승무원들이 돌아가면서 아기를 달래고 재웠다.


우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어린 아기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서 너무 무책임해 보이는 아빠의 모습에, 한국 남자들은 왜 아기를 못 달래냐고 묻는 외국인승무원 앞에서 그 아기아빠와 같은 국적임이 부끄러워졌다.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저 손님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여주길 바랐지만, 그 외국인승무원은 비슷한 상황을 몇 번 본 모양이다.


어쩌다 아기는 아빠와 단둘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 걸까?

프놈펜에서 사는데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손주를 너무 보고 싶어 해서 아빠가 아기만 데리고 잠깐 한국에 들어오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 아기 엄마는 캄보디아 국적인 건가? 캄보디아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한국 국적 신고하려고 데리고 오는 것일까? 혹시 엄마한테 아기만 뺏어온 건가..? 내 편견이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아기아빠가 아기를 제대로 안을 줄도 모른다는 것부터가 좋은 쪽으론 생각되지 않았다.


파사삭 부서지는 인류애를 조각조각 끌어안으며 그렇게 돌아오는 비행 내내 먹먹했다. 

인천에 도착해서 엉거주춤 아기를 들듯이 안고 내리는 아기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저 아기와 어디 있을지 모르는 아기엄마를 걱정했다. 사정이 궁금하면서 궁금하지 않았다. 알면 뭔가 아기에게, 그리고 아기엄마에게 느끼는 연민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에 대한 편견은 부모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게 많은 것 같다.

경제적 문제, 국적취득과 같은 다른 목적을 위해 한국인과 결혼하는 여자, 한국에서 결혼 상대를 구할 수 없어 돈을 써서 거짓정보를 제공하고 외국에서 신부를 구하는 남자, 그리고 무능한 자식이라도 결혼해서 대를 잇기를 바라는 그 부모의 헛된 바람이 만들어낸 슬픈 한 시대상이다. 그리고 애초에 그런다고 해결되지 않을 문제들(경제력, 병력, 의사소통, 폭력 등)로 이들의 삶은 더 열악하고 불행해지는.. 미디어에서 보여주었던 다문화가정의 어두운 면들이 떠오른다.  


한류드라마를 보고 한국 남자에 대한 환상을 가진 이들에게 현실은 참 잔인하다.

모든 한국 남자들이 드라마의 환상을 깰 만큼 별로인 것은 아니지만, 국제결혼 중매업에 참여한 대부분의 한국 남자는 한류드라마 속 한국 남자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들도 이제는 깨달았을 것 같다. 오죽했으면 베트남, 캄보디아 정부가 고령의 한국남성과의 국제결혼, 결혼중개업을 금지시켰을까? (연애결혼은 가능)


지금은 미디어나 유투브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국제커플들을 조금씩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더 이상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워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의 선택이 '아무거나'일 순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