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야기를 쓰는 이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
취업 준비는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대학 4학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아니, 세상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 잘 몰랐다. 기껏해야 의사, 교사, 판사, 대통령, 은행원 정도..? 요즘 초등학생들의 직업 지식만도 못했던 것 같다.
아나운서를 꿈꾸던 다른 과 친구가 승무원이 되는 것을 보고,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갔다 온 동기가 승무원이 되는 것을 보고, '아, 나도 승무원을 해볼까?' 싶어 승무원을 꿈꾸게 되었다. 시작이야 뭐가 어떻게 되었든 나도 간절히 승무원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꿈꾸던 승무원이 되었다.
내 인생의 선택이 '아무거나'일 순 없다.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처럼 집에서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모범적인 아이는 정작 혼자 무언가를 실천을 하거나, 선택을 할 때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랬다. 대학교 전공 선택도 부모님의 결정에 따랐고, 옷과 신발도 내가 산 적이 없었다. 무언가 갖고 싶었던 적도 필요하다 느껴본 적도 없었다.
점심 메뉴를 물어도 '아무거나'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먹고 싶은 것도 생각나는 것도 없었고 밖에서 급식 아닌 밥을 먹어본 경험도 적었기에 아는 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거나 상관없었다.
그랬던 내가 승무원이 되어 독립을 하니 수많은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 쉬는 날 뭘 할지, 장은 뭘 볼지부터 카드는 어떤 카드를 만들지, 쇼핑은 무엇을 할지.. 그런 시간들이 있고 나서야 '취향'이라는 것도 생겼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승무원이 되기로 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닌 줄 알면서 확신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퇴사를 결심하기까지는 너무 오래 걸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플랜 B가 없이 그만두면 후회한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럭저럭 살만한 환경이 나를 더 안주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일을 하고 있지 않아야 내가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두고 딱히 뭘 해서 먹고살지 계획은 없었지만 이러다가 평생을 이렇게 살 것 같아 두려웠다. 후회를 할지 하지 않을지는 해보지 않고서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일단 비행을 그만둬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퇴사까지 15년이 걸렸다
모두 내가 행복할 선택을 하게 되기를 바라며.
남들에게 선망의 직업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행복한 일을 하고 살아가려면 나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나를 알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이 정도도 못 견디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사소한 일일수도 있지만, 누군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는데 승무원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경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예전의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간 경험과 감정을 공유해 본다.
승무원이 되기로 결심한 건 내 생애 가장 큰 실수였지만, 그로 인해 남들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에 맞는 선택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또 좋은 선택을 하고 진짜 행복을 만들어 가는 방법을 깨달았으니, 결국에는 잘한 실수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내 아이들에게 공부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선택의 기회와 그 선택을 존중해 주는 엄마가 되기를 다짐하며, 아이들이 조금 더 커서 사회를 궁금해하게 되면 나의 첫 직업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