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평함은 내 발작버튼이었다.
‘나 혼자 분리수거하러 내려가는 게 몇 번째야?’
엘리베이터에 재활용품을 밀어 넣으며 한숨이 나왔다.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는 매주 목요일인데, 남편은 이상하게 목요일마다 회식이 있다. 매주 재활용품들은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한 번 버릴 때마다 혼자 하면 두 번은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서 들고나가려는데 아슬아슬하게 종이박스 위에 담겨 있던 캔들이 떼구르르 떨어진다.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차곡차곡 쌓아서 가지고 나오지 않은 건 내 잘못인데, 불똥은 직장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느라 정신없는 남편에게 튄다.
‘오늘 또 나 혼자 분리수거했어. 집에 왜 안 와?’
한 템포 화를 누르고 애써 침착하게 카톡을 보냈다. 확인도 안 하는 남편. 카톡창 문자 옆 숫자 1을 한참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서럽고 억울한 감정이 밀려왔다.
같이 돈 버는데 왜 나만 매번 쓰레기를 버려야 할까?
왜 남편은 출근하러 나가면서 쓰레기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안 할까...?
삑삑 삑삑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워 깜짝이야. 아직 안 잤어? 왜 그러고 있어?"
"나 오늘도 분리수거 혼자 했어. 왜 자꾸 목요일만 늦어?"
"내가 놀면서 늦는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늦는 건데 왜 그래?"
"맨날 나만 쓰레기 버리니까 그렇지."
"누가 하면 뭐 어때? 힘들면 놔둬. 밤늦게 오든 새벽에 오든 내가 다 버릴 테니까."
누가 하면 뭐 어때
남편의 말에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혼자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된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엄마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한 살 차이 나는 언니는 공부할 것이 나보다 많고 입시가 더 빠르다는 이유로 고3 때까지 내가 집안 허드렛일과 심부름 담당이었다. 나와 아홉 살 차이가 나는 막내 남동생은 큰 나이차이와 나와 다른 성별의 이유로 내가 심부름을 하며 엄마를 돕던 나이만큼 커서도 심부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였다.
그러다 보니 야단맞는 일도 내가 제일 많았다. 필요한 물건을 잘못 사 왔거나, 늦거나, 쏟거나, 깨거나, 제대로 못하거나 바로바로 안 돕고 미적거리거나. 언젠가 내가 ‘왜 나만 시켜? 어제도 내가 하고 그저께도 내가 했는데..‘라고 볼멘소리를 했을 때 엄마는 말했다.
'누가 하면 뭐 어때'
그리고 그 후로도 그 '누'가 언니나 동생이 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불공평함은 내 발작버튼이 되었다.
자식에 대한 대우는 공평해야 했다. 그러지 못했다면 수고를 더 하거나 희생을 한쪽을 인정하고 칭찬해주었어야 했다. 나만 양보하고 참아야 했던 것, 그리고 내가 더 마음 썼지만 인정받지 못했던 것, 공평하지 않은 대우를 참아왔던 억눌림 탓에 불공평함이 내 발작버튼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맞벌이 부부의 집안일도 공평해야 했다. 이번 주에 내가 집안일을 더 했으면 다음 주에는 남편이 더 해야만 했다. 불공평함이 내 발작버튼이 되어버린 탓에 남편에게는 누가 해도 상관없는 별것도 아닌 일이 나에게는 혼자 하면 억울하고 내가 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서러운 대단한 일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남편은 발작버튼이 없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남편은 한 번도 유별나게 반응하는 것이 없는 두루두루 모난데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의 예민함과 까칠함도 따뜻하게 받아준다. '그럼 네가 다 해.'라는 가시 돋친 나의 말에 '그게 뭐가 어려워. 내가 다 할게. 늦게 오면 새벽에 하더라도 내가 할 테니까 혼자 하지 말고 그냥 놔둬'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후로 정말 밤늦게 돌아와서도 분리수거를 했고, 출근길에도 군말 없이 일반쓰레기도 음식쓰레기도 잘 버렸다. 그는 내가 알아서 다 하니까 안 한 게 아니었다. 그날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 줄 몰랐거나 아는데 깜빡했던 것뿐이었다. '이번에는 누가 버리나 보자.'라며 지켜보는 건 열등감 가득한 나 같은 사람이나 하는 생각이었다.
발작버튼으로 인해 내가 예민했다는 것, 그리고 그 원인을 알고난 뒤 내 모난 생각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남편도 내가 이런 부분에 예민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 배려해 주었다. 이제는 내가 혼자 집안일을 하거나 분리수거를 해 놓은 날이면 '이거 봐, 내가 이렇게 다 치웠다?', '재활용품 너무 많아서 밤늦게 와서 힘들까 봐 절반은 내가 했어.'라며 생색을 낸다. 그러면 남편은 '헐, 힘든데 놔두지 왜 그랬어. 혼자 고생했겠네.'라며 매번 그 수고를 알아준다.
맞벌이 부부의 집안일은 50:50이 아니어도 된다
그 수고를 알아주고 고마워하는 사람 앞에서는
누가 하면 뭐 어때. 이 말은 누구에게 무언가를 시키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너를 위해서라면 이런 건 내가 더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매번 너만 도와주네. 고맙다'라는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내 발작버튼은 남편의 인정과 사랑으로 인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가끔 내가 어처구니없이 작은 일을 같이 해야 한다고 우기는 날이면 '공산당이야 뭐야.' 하며 어이없어하기도 하지만.
내 모난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전문 상담을 받고 싶었던 날들도 있었지만, 이제 괜찮아져서 글로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