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지 않을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소울메이트가 있을까 싶을 만큼 나를 빼다 박은 언니가 한 명 있다. 친구보다도 더 친구 같고 가끔은 언니로서 보듬어주기도 하는 고마운 존재이다. 4년 전 아빠가 병원에 있었을 때 다른 층에는 언니의 어머님이 병실에 계셨다. 내가 아빠를 먼저 보내고 아파하는 동안 언니는 어머님의 항암을 지켜보며 너무나도 아팠고, 언니가 어머님을 떠나보낸 후 1년은 내가 엄마의 항암을 지켜보며 아팠다. 꼭 이런 것까지 닮지는 않아도 되는데, 취향 성격 말투로 모자라 경험까지 닮나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어쩌면 말하지 않아서 서로를 더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엄마가 없는 1년이 지났다. 말도 안 되는 순간에도 문득 보고 싶고, 말도 안 되는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다. 괜찮냐고 물어오는 많은 이들에게 괜찮다고 거짓말을 한 1년이었다. 야속하게 흐르는 시간이 엄마와의 기억과 추억도 제멋대로 침식시킬까봐 그게 가장 두려운 시간이었다. 쌓아갈 시간 없이 쌓아온 시간들을 되새김질할 수밖에 없는 나에게 시간은 결코, 약이 아니다.
언니가 어머님을 보낸 지 1년이 되는 날 쓴 글이다. 첫마디에 아렸고, 두 마디에서부터 울었다. 몇 번이나 다시 읽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지난 5년 같았다. 아빠를 보내고 나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지만 제일 야속한 말이었다. 언니의 말처럼 시간을 되새김질하며 살아야 했고, 하나부터 열까지 잊지 않으려 일부러 기억을 꺼냈고 그럴수록 사실 아팠다. 왜 카톡이 없냐고 삐진 척하며 입술 쭉 내밀고 찍은 셀카도,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역에 마중 나오던 모습도, '잘 자 우리 공주' 하고 말해주던 목소리도, 자주 부르던 노래부터 웃음소리까지 아빠에 대한 모두를 기억하고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느낌이 들 때마다 부여잡았지만 그 순간들에 시간은 분명 독이었다.
저 글을 보자마자 언니의 감정이 내 감정이 되었고, 언니에게 아무 연락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언니를 부르지도 못한 채 하루가 지났다. 그 하루 동안은 멀리서 조용히 같이 울어주는 걸로 나만의 위로를 전했다. 우리는 그저 보통의 어느 날에도 문득 생각나 눈물을 쏟곤 하는 문득병을 앓고 있으니, 떠나보낸 날에는 오죽할까. 5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아직도 가끔 악몽 같지만 시간이 지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금 더 담담한 척 아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것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려 할수록 많이 떠올릴 수밖에 없고 생각할 때마다 아프다. 오늘은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아빠 나이쯤의 아저씨만 봐도 이렇게 울컥해오는 하루라서 온 힘을 다해 기억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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