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해야만 했던 것들
[조절식 2일 차 - 25.10.22]
된장차 3, 장미소 3, 니시차 2, 연입밥 1/2, 비트, 단호박, 마, 우주밥상(생식) 1
커피관장 1, 물관장 1
[조절식 3일 차 - 25.10.23]
된장차 3, 장미소 3, 니시차 1, 연입밥 1/2, 비트, 단호박, 마, 애호박, 연근, 우주밥상(생식) 1
커피관장 1, 물관장 3
[조절식 4일 차 - 25.10.24]
된장차 3, 장미소 3, 니시차 1, 연입밥 1/2, 비트, 단호박, 마, 애호박, 연근, 당근, 우주밥상(생식) 1
본의 아니게 기록이 밀렸다. 마음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것에 가려져 잠시 기록하는 것을 잊었다.
22일 수요일에는 면접이 두 건 있었다. 상향으로 넣어 봤던 곳 한 곳과, 기대하며 넣어봤던 곳 한 곳. 3시와 6시, 성수와 서초라서 오후 내내 밖에 있었다.
첫 번째 면접에서는 생각지 못한 조언을 들었다. 디자이너 출신의 CMO님과 1:1 면접이었는데, 본인이 직무를 확장하기 위해 들였던 노력을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어떤 것 하나 곧바로 되는 것은 없다며, 생각보다 정말 많은 시간을 들였다는 것. 압도적 실무 경험이 남들보다 2-3배는 더 필요했다는 것. 이번 이직 때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꽤나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있으나,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는 세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느 한순간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때로는 상실감을 가져오기도 한다. 내가 무엇을 얻고 싶고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생각해두어야 한다. 어떤 선택에는 반드시 반작용이 함께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그것째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솔직하게 대화해봐야 한다.
두 번째 면접에서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 압도되는 경험을 했다. 제출한 서류상의 내 이력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꼼꼼한 질문들이 오갔다. 경험의 규모와 종류를 체크하는 질문들이었다. 급성장하는 회사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무엇이든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이 있는 사람이 필요해 보였다. 아주 뚜렷한 목표가 느껴지는 대화에서 아직 주어지지 않은(주어지지 않을지 조차 불분명한) 상황에 완전히 압도되어 결국 마음이 무거워졌다.
당황스러웠다. 도전적인 과제, 성장, 밀도 있는 경험 - 같은 것들은 늘 내가 쫒는 것들이었다. 그런 자극이 없으면 동기부여가 약해질 만큼 말이다. 오후 내내 밖에 있으면서 단식 식품을 제대로 못 챙겨 먹은 탓에 스테미너가 떨어져서 인지, 모두가 신기해하던 타고난 열정이 쥐도 새도 모르게 고갈되어 버린 것인지, 정말 단순히 겁이 났던 건지 오늘까지도 알 길이 없다. A를 선택하면 B는 따라오게 되어있다는 것, B 없는 A는 나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
이 기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오랜만에 명상을 했다. 거울 앞에서 뿜어져 나오는 많은 말들을 보며 최근에 벌어진 여러 가지 사건들이 내 어깨를 꽤나 짓누르고 있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 아빠에게 짐이 되어선 안돼. 내가 돈을 정말 많이 벌어야 해. 엄마 아빠에게 힘이 되어야 해."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되뇌게 될 줄은 몰랐다. 내 몸이, 내 건강이 어떻게 되더라도 일단 나를 받아주는 곳에서 갈아 넣으며 일하는 것 말고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 이것만이 나와 내 가족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이 짠했다. 스스로 다소 제멋대로 자란 그다지 큰딸 같지 않은 큰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아직 종결되지 않은 일들이 돈과 삶, 윤택함, 노후 이런 단어들 앞에서 너무나 취약하게 아물지 않은 살갗을 드러낸다. 스스로가 애처로울 만큼 울었다. 울다 울다 자려고 누워 시간을 보니 45분이 지나있었다.
눈물은 절대 참으면 안 된다는 주의다. 물은 흘러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흐르려 하는 본성을 거스르면 이내 고여 썩게 된다. 팀원들에게도 눈물이 나면 엉엉 울라고 했다. 참아 버릇하면 나중에 더 아프게 울게 되더라고, 그냥 울라고 말이다.
진이 빠지게 울고 나니 다음날(23일)은 개운했다. 벌에 쏘인 마냥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찬찬히 되짚어봤다. 결론은, 원하는 바가 A라면 반드시 B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절반씩 하거나 A를 포기하는 옵션은 없었다. 어제와는 다르게 용기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목요일은 면접이 없어 뒹굴뒹굴 누워 보냈다. 1,2일 차 때에는 허기도 별로 안 느껴지던 조절식이 갑자기 엄청 배고프게 느껴졌다. 소화기관이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공복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엄마가 집을 4시간 정도 비운사이 배달 어플에 들어갔다 나왔다, 진짜 그러려던 건 아니지만 혹시라도 '가볍게 뭐 빠르게 먹고 치워버리면 어떨까' 하는 유치한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다른 거 말고 산적이랑 두부 전이 너무 먹고 싶었다. 계란에 노릇하게 지진 전들을 가득 쌓아놓고 밥도 없이 배를 가득 채우고 싶었다. 기름진 음식이 당기는 것을 보니 본격적으로 지방이 빠지나 보다,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희망회로를 돌리며 꾸욱 잘 참아내었다.
엄마에게 어제와 오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걱정은 하지만 내 선택이 맞는 것 같다는 말을 하셨다. 모든 것이 기회이며 마땅히 겪어야 할 일,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다지 어려울 것은 없다.
어제부터 입가와 눈가, 이마가 따끔 따끔 거린다. 붉은기가 막 올라오는 것은 아닌데 저린 것 마냥 따끔따끔, 피부 안쪽에서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다. 키토산을 먹기 시작해서 그런 걸 지도 모른다. 단식할 때 추천하는 키토산 용법은 끼니당 3알에서 많게는 10알 정도 먹는 것인데, 이때 본인에게 가장 약한 부위가 알러지처럼 부어오르거나 늘 앓던 증상이 일시적으로 심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예전 긴 단식을 할 때 손에 한포진이 엄청 심하게 올라왔었는데, 키토산을 하루에 40알씩 메가로 일주일 먹으니 사라졌다. 마치 한포진이 손에서 다 빠져나가버린 것만 같았다.
이번에도 그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같다. 올해 구레나룻 부분과 귀 위쪽 두피, 눈가와 팔자주름 라인에 붉은기가 올라오려 할 때마다 스테로이드를 조금씩 발랐었다. 연고를 발랐던 부위들이 따끔따끔 간질간질거리고 있다. 키토산을 왕창 먹고 물에 개어놓은 키토산도 얇게 발랐다. 지금이 아니면 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모조리 청소해야 한다.
오늘(24일)은 커피챗이 하나 있었다. 전 직장에서 협업건으로 두 번 정도 대면 미팅을 했었던 분이 이직한 직장의 대표님과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별다른 설명을 듣은 바 없이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커피챗이라 당연히 건물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 도착하여 연락을 했더니 사무실로 올라와달라고 답장이 왔다. 테이크아웃을 바꾸고 올라가서 미팅룸으로 안내받았다. 나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H님, 대표님, 그리고 인사팀장님 총 세 분이 들어왔다.
그렇다고 갑자기 완전한 면접 분위기는 아니었다. 내심 궁금했던 부분들이 완전히 해소될 만큼 여러 히스토리를 허심탄회하게 들을 수 있었다. 방향이 뚜렷했고, 전략이 명확했으며, 나로 고려하고 있는 직무에 원하는 것 또한 명확했다. 아주 도전적인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소위 말하는 '애자일 하게' 일하는 업무를 더 빠른 시일 안에 더 많이 해내려 하는 중이었다.
일만 놓고 봤을 때에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다른 선택지에서 매력 포인트가 또렷이 드러날수록 기준이 중요해진다. 모든 것을 만족할 순 없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 무엇을 받아들일 것이고 무엇을 허용하지 않을 것인가 > 이를 통해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최종 답일 것이다.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남에게 조언한다고 생각하고 선택해야 한다.
일주일 정도 시간을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갈팡질팡 그저께의 마음이 다시금 고개를 드는 것만 같았다. 이 글을 올리고 다시 명상을 할 것이다. 내가 나에게 솔직해질 때까지 계속 두드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