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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 Oct 24. 2021

4. 사람도 병원은 무서워

말랑콩떡이 처음 병원 다녀왔다! 


아가들  구조한 샘이 병원 갔을 때 이상 없었다고 하길래 우리집 올 때에도 바로 병원으로 직행 안 하고 먼저 좀 친해지려고 했던 건데,  1주일쯤 되니 이제 경계하는 기색도 없고 해서 이동장 안으로 샥샥. 그 사이에 이동장을 베란다 구석에 둬서 어쩌려나 싶었는데  다행히 얌전히 들어갔다. 그 안에서 꼬물꼬물 놀다가, 복도로 딱 나오자마자 얼음. 둘이 껴안고 이동장 구석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평소에 잘 안겨 있는 냥이라도 낯선 곳에서 자기가 어딘가로 피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꼭 이동장 쓰라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 듯.  

수의사  선생님들은 정말 신기하다. 처음 본 고양이들도 엄청 잘 다루심! 그 모습이 좋아보여서 정말 내가 어릴 때 동물 키우면서 병원  다녔다면 수의사 되고 싶어서 공부 열심히 했을 것 같다.(입결 높은 거 안다.. 못했겠지...... 상상은 자유니까) 


체중 재고, 눈이랑 귀 상태 체크하고, 청진기도 대어 보고.  말랑이는 털이 약간 빠진 듯한 부분이 있고 내가 평소에도 애들 둘다 좀 열심히 몸을 긁을 때가 있다고 했더니 곰팡이 검사를  권하셨다. 몸 여기저기 털을 샥샥 뽑아서 며칠 후에 시약이 변하면 곰팡이가 있는 거라고 한다. 말랑이는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눈꼽이 너무 많아서 약간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아무 이상도 없다고. 그냥 환경 탓이었을 거라고 하셨다. 


내가  다 못 깎은 뒷발 발톱도 깎아주셨다. 간호사님이 담요로 샤샥 감싸니까 애들이 몸부림 못 치면서도 약간 안정감을 느끼는 듯했다.  갇히는 느낌을 안 받게 조절할 수 있다면 집에서도 이런 방법을 써봐도 괜찮을 것 같다. 과연 내가 해도 애들이 가만히 있어주려나.


백신  맞고, 의사샘이 구충제를 먹이면서 고양이 알약 먹이는 법도 처음 배웠다. 입 속 깊숙히 알약 넣고, 고양이 입 다물게 한  다음에, 코로 샥 바람을 불어넣으면 훅 삼킨다고 한다. 과연 내가 필요할 때 잘 따라할 수 있을 것인가...?! 말랑이가 먼저 약  먹고 나서 콩떡이는 그럼 제가 해 볼게요~!! 하고 손 들려다가 자신 없어서 그냥 선생님께 맡겼다. 냥신 유튜브 보고 필 건  사두고 가끔 츄르 묻혀서 줬는데, 의사샘이 보여주시면서 애들 커지면 이런 거 써도 좋다고 하셔서 괜히 뿌듯. 


돌아와서  이동장 놓고 문 열어놓으니 바로 나와서 신나게 논다. 우리가 저녁 먹고 있으려니 이동장 안에 깔아뒀던 배변 패드 또 물고 빨고  뜯고 둘이 잡아 당기고 아주 야단이다. 이동장을 보기만 해도 부르르 떨고 도망가던 나래랑은 아주 딴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여전히  내가 예전 고양이랑 비교하면서 너무 많은 걸 걱정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돌아보면 연애할 때도 항상 그랬다. 바로 전 연애에서 나빴던 점을 되새기면서그런 부분이 없는 사람만 골라 만나려고 하고,  얘는 그런지 안 그런지 계속 관찰했다.  그러다 새로운 문제로 연애가 끝나면 다음 연애에선 그 문제에 꽂혀서 그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려고 하고. 나래는 나래고,  말랑이는 말랑이, 콩떡이는 콩떡이. 나래를 기준으로 자꾸 얘네는 괜찮아서 다행이네 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내 마음이 조금 편해질 것  같다. 최대한 스트레스는 예방하되 미리 나래의 소심한 부분만 되새기며 걱정하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


예전에  한 드라마에서, '고양이는 뇌에 신피질이 없어서 과거도 미래도 없고 오직 현재만 산다'는 대사를 들은 기억이 나서 다시  찾아봤다. 신피질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인간만큼 발달하지 않아서 현재에 집중하고, 지루함도 안 느끼는 거라고 한다. 

마음챙김과  관련된 수많은 글에서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걱정 대신 현재에 집중해야 행복하다는 흔한  이야기. 원래 걱정쟁이인 내가 고양이만큼의 멘탈을 가질 수 있기를 당장은 바라지도 않지만, 내가 또 걱정에 갇혀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지금은 조금 시원하다. 원래 해결의 시작은 문제의 자각이라고, 좀 만족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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