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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 Oct 24. 2021

3. 복직한 집사는 레벨업 중

정신없는 하루의 끄적거림


오늘로  말랑콩떡이가 우리집에 온지 1주일이 된다. 며칠 만에 훌쩍 자란 아이들을 보며 글을 쓴다. 결국 내가 빨리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나는 건 이런 때이다. 오래도록 담아두고 싶은 순간을 남기고플 때. 행복한 순간을 잊는 게 두려울 때. 조지 오웰처럼  정치적인 글쓰기에 대한 확신, 진실을 보존하고자 하는 욕망 같은 건 없는 그냥 사적인 기록욕일 뿐이다. 과연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말랑콩떡이가 우리집에 온 첫날.


나래를 처음 맞던 날, 책상 뒷편 구석에 숨어버린 나래를 빨리 나오게 하고 싶어 그 앞에 캔을 뒀던 아까운 기억이 있다. 먹을 것에 약한 강아지와 달리 이틀 동안 집에서 증발해버린 듯 숨어만 있었던 것이다. 


경력직 집사답게 고양이들에게 새로운 공간에 익숙해질 시간을 충분히 주기로 했다. 문간방에 고양이 이동장을 내려놓고, 물에 불린 사료와 물그릇을 두고, 살며시 문을 닫았다. 




이틀  동안 수줍어하면서도 잘 먹고 잘 쌌는데, 물을 안 먹는 거였다! 하얀 사기그릇에 담아준 사료는 먹는데 물은 계속 안 먹어서  걱정이 됐다. 그릇을 바꿔주면 먹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찌개를 끓이고 난 하얀 두부 그릇에 물을 담아줬는데 핥핥핥핥 먹기  시작. 너네 길에서 물먹을 때 사람들이 이런 데다 물 채워줬던거니.......?! 


비슷하게  투명한 그릇에 물을 담아줬더니 또 잘 먹기에 물그릇을 싹 바꿔줬다. 고양이들은 밥그릇을 각자 쓴다기에 사료를 두 군데 나눠줬는데 꼭  둘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먹으려고 해서 한 마리가 먹는 동안 한 마리는 대기하고 있길래 길다란 그릇에 줬더니 더 편하게 먹었다.  이것저것 시도해볼수록 냥이들이 편해지는 걸 보니 집사 레벨이 상승한 것 같아서 뿌듯.




둘째날 저녁. 살금살금 열어보니 말랑콩떡이는 서로 얼키고 설켜 손으로 발로 입으로 컴퓨터 연결 전선을 뜯고 있었다. 으악. 두 마리가 전선을 함께 물고 빨고 하는 그 풍경이 정말 다정하고 예뻐보여서 당황한 스스로가 좀 우스워졌다.


마침 남아있던 전선 정리용 쫄대로 책상 밑을 정리하고 냥냥이들과 놀아주기를 시도. 집에 장난감이 하나도 없던 터라 츄리닝 바지에 있던 하얀 끈을 빼서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내가  막대기를 흔들어도 끈을 들이대도 고개만 까딱까딱 돌리던 고양이 관객들은 셋째날부터 조금씩 끈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주말엔  일부러 외출 약속을 잡지 않고 집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심심할 땐 고양이 문간방에 토퍼를 펴놓고 누워도 있었는데 냥이들은 책상  밑에 숨어있거나, 베란다에 쌓아둔 상자에 기어들어가 있거나, 이동장에 숨거나 했다. 잘 먹고 잘 싸길래 손에 사료를 올려놓고  먹여보려고도 했지만 그릇에 둔 사료에만 마음을 열었다. 힝




고양이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 루틴이 딱 정해져있으면 좋다는데, 일단 집사 생활 자체가 규칙적이지 않은데요? 갑자기 일터지면 야근하고  평일에도 약속 종종 있고. 그래도 출근하는 날은 아침에 10분 놀아주고 화장실/사료/물그릇 세팅해주기, 퇴근하자마자 똥 치우고  놀아주기, 놀다 지친 듯하면 새 사료 주기, 내 밥 먹고 나면 빗질하고 만져주기, 자기 전에 놀아주기, 대략 이런 패턴으로 잡힌  듯싶다. 


고양이에게 전혀 관심없을 것처럼 굴던 구글이도 출퇴근 전후로 장난감을 흔들며  놀아줬다. 덕분에 낮에는 애들이 잘 자고 있으리라 믿는다. 낮에 자꾸 애들이 보고싶고 아른거려서 아기 있는 친구들에게 홈CCTV 뭐  쓰냐고 묻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고양이 용품 갖추는 데에 돈이 많이 들어서 일단 포기. 절제와 만족지연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간(=나)에게 욕망을 조절하게 해주는 건 통장 잔고뿐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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