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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 Oct 24. 2021

2. 아아, 그는 까다로운 고양이였습니다

걱정쟁이 소심집사

길냥이들을 데려올 수 있었던 자신감의 원천은 가족들과 고양이를 키웠던 경험이었다. 하지만 말랑콩떡이를 데려오는 걸 가장 망설였던 이유도 바로 그 고양이와 있었던 일들 때문이었다.     


나래. 여섯 달 간 이 고양이를 기르던 선생님이 부르던 이름이라 그대로 썼다. 나래와 처음 동거를 시작하면서 고양이 관련 서적을 읽고 공부하긴 했지만 한참 부족했던 모양이다. 목욕, 발톱깎기, 이닦기 등 고양이가 싫어하는 케어를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해줘야 한다는 걸 몰랐다. 스케일링을 하면 마취까지 시켜야하는 게 부담스러워 이빨만큼은 3일에 한번이라도 닦이고 싶었지만 칫솔을 숨기고 있어도 귀신같이 눈치채고 침대 밑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4인가족과 함께할 때 나는 발톱 소제와 이닦기, 엄마는 목욕, 털깎을 땐 온가족 등으로 고양이 선도부(!)의 역할을 나눌 수 있었는데, 나 혼자 이걸 다 하다간 그냥 냥이한테 미움받는 집사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사료에 대한 취향이 있는 것까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자율급식을 하다보니 여름에 사료가 좀 눅눅해지면 바로 먹지 않고 찡찡대는 건 정말이지 당황스러웠다. 겨울에도 사료를 꺼내놓은지 한 시간만 지나도 입도 대지 않았다. 건사료지만 향이 날아가서 맛이 덜해지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제한급식을 하려 하면 아무 때나 배고프다고 앵앵 울었다. 말랑콩떡이도 이런 의외의 취향이 있으면 어쩌지. 구글이는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올 때가 많은데, 혼자 섬세하게 고양이님을 챙겨줄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말할 줄 아는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눈치 없어서 실수투성이다. 이런 내가 참을성 많은 고양이가 아프고 힘든 걸 알아채서 잘 돌봐줄 수 있을까.     

가장 걱정스러웠던 건 역시 집을 비우는 시간. 나래 덕분에 나는 고양이가 속설과 달리 굉장히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됐다. 고양이라고 아무렇게나 혼자 두면 안된다는 걸. 처음으로 2박 3일 가족 여행을 다녀왔을 때였다. 화장실도, 물그릇도 밥그릇도 넉넉하게 준비해주고 다녀왔다. 명절에 1박2일 정도는 무난하게 버티던 아이라 괜찮겠거니 했다. 집에 돌아왔더니 캣타워나 집안 곳곳에 올려뒀던 냥이 장난감이 온 집안에 흩어져 있었고, 그동안 사람을 막 찾으며 울었던 건지 목쉰 소리를 냈다. 토라져서 우리가 다가가도 반기지 않았다. 고양이님의 마음이 풀리는 데 한나절은 걸렸다. 그날 이후로 넷이 모두 집을 하룻밤 이상 비우는 일은 없다. 명절에도 시간차로 움직이거나, 가사노동 부담이 적은 멤버가 돌봐주러 다녀오곤 한다.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고 있는 캣대디샘과 부장님 모두 낮 시간엔 고양이가 자니까 괜찮다고 했는데 영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고민이 되어 나와 비슷하게 2인 가구에서 길냥이 둘을 키우는 곰돌샘과도 통화를 했다.

매사 시원시원한 곰돌샘이 잘라 말했다.

"집에 있는 시간 동안 충분히 사랑해주면 괜찮아. 스트릿 출신들이 확실히 성격이 좋거든. 예전에 샘 키웠던 고양이 보니까 사진만 봐도 딱 품종묘던데? 그런 애들이 까탈스러운 거야. 대신 화장실은 세 개 만들어주고 밥그릇도 세 개 놓고, 물그릇은 곳곳에 많이 두면 돼. 완~~전 괜찮아. 나는 추천!"



아이들과 상담하다 보면 친구나 학원샘의 말을 듣고서야 결정을 내려서 오는 애들이 있다. 내가 한 말이 바로 그 말이었는데! 서운하기까지 한 건 아니지만 나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왜 내가 말했을 땐 안듣나 생각했더랬지. 그런데 삼인성호라고 세 명쯤에게 같은 말을 듣고, 가장 말주변 좋은 사람의 설득을 들어야 인간은 뜻을 바꾸는 모양이다. 곰돌샘의 이야기까지 듣고 나서야 말랑콩떡이를 데려오는 쪽으로 마음이 좀 기울었다.     

그렇게 말랑콩떡이를 데려와서, 이번엔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고양이 행동학에 관한 책도 읽고, 수의사들 유튜브도 보면서 집사 2회차 학위과정을 밟고 있다. 그랬더니 꼭 해야할 것처럼 보이는 게 너무 많다. 아기 때 칫솔 치약에도 익숙하게 만들어주고, 목욕을 시작하기 전에 물소리랑 욕조와도 친해지게 만들고, 발톱 깎는 것도, 청소기와 헤어드라이기 소리도, 낯선 손님도 무서워하지 않게 길들이고 싶다.


아가들 습관 기르기에 꽂히면서 고양이가 아니라 내가 츄르(모든 고양이가 환장한다는 그 전설의 간식!!)의 노예 같다. 빗질 한참 해주고 츄르 주고, 안아올렸다가 꼼지락대면 내려놓고 츄르 주고, 칫솔이랑 주사기에 츄르 묻혀주면서 이것들은 좋은 거라고 여기게 해주고 싶어.  고양이판 <SKY캐슬>이 있다면 분명 나는 욕심 많은 엄마 역할에 배정당할 것이다.      


한편으론 너무 완벽한 엄마고양이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이 버겁다. 일단 할 일 리스트가 많아지니 내 마음이 괜히 바쁘고 지친다. 자칫 조급하게 발톱깎고 이빨 닦겠다고 덤볐다가 매일매일 애들에게 스트레스 주고 힘들게 하는 꼴이 될까봐 조심스러워, 도리어 신경이 곤두서기도 한다. 밥주고 만져주고 놀아주고, 말랑콩떡이가 좋아하는 일로만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도 너무 짧은 저녁인데 자꾸 이것저것 하려는 내 욕심으로 애들을 힘들게 해버리진 않을까.     


이러려고 애들을 데려온 건 아닌데. 정신 차리자. 그냥 이 집에서 고양이들과 함께 행복하길 바란 거지. 고양이들이 빗질할 때, 이 닦을 때, 목욕할 때, 발톱깎을 때, 내가 생활할 때 너무 무서워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완벽하지 못해도 좀 느려도 괜찮다고 마음을 다잡아본다. 오늘 점심시간엔 자녀를 키우는 샘들에게 내려놓는 비법을 좀 배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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