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즈 Oct 24. 2021

6. 짐작과는 다른 일들

  



  고양이 행동학 책을 읽고 수의사들의 유튜브를 통해 다묘 가정에 대해 공부하는 중이지만 이들이 우리 집에 온 순간부터 이미 이론과는 다르게 행동했다.

자기  영역, 자기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고양이들을 위해 밥그릇 물그릇 화장실 모두 두 개씩 마련해줬지만 굳이 한 그릇에 함께 머리를  파묻고 좁은 자리를 고수하며 밥을 먹었고, 화장실도 같이 들어가곤 했다. 안쪽은 말랑이, 바깥쪽은 콩떡이가 쓰는 건가 싶었는데  정해진 자리도 없이 이곳저곳 같이 썼다. 할수없이 물그릇도 밥그릇도 화장실도 아가들 몸에 비해 큰 걸로 해줬다.

게다가  깨끗한 걸 좋아한다더니, 화장실을 엄폐물로 쓰는 거였다. 화장실 들어가서 둘이 뒹굴고 놀기도 하고, 사냥놀이를 하다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사냥감을 노리기도 했다. 고양이가 숨을 만한 곳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서 거실 곳곳에 목욕탕의자와 상자들을 놔줬더니  신나게 오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콩떡이가 거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말랑이가 따라 들어가는 것이었다. 콩떡이가 용변 볼 준비를 하는지 흙을  파고 있는데 말랑이가 물고뜯고 장난을 걸었다. 원래도 저게 싸우는 건가 노는 건가 싶을 정도로 물기도 하고 냥냥펀치를 하면서  뒹굴지만, 밖에서보다 더 격한 모습이었다. 말랑이는 허리를 동그랗게 말아올리며 화들짝 뛰어오르기도 했다. 내가 놀아줄 땐 한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좀더 덩치가 큰 말랑이가 콩떡이를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건가 싶었는데, 말랑이가 화장실에 들어가도 콩떡이가 따라 들어가서 쫓아다니곤 했다. 장난을 거는 건지 시비를 거는 건지 정말 알쏭달쏭.

   고양이들이 싸울 땐 이렇게 하랬어! 하고 책에서 배운 대로 콩떡이를 문간방으로 데려가서 놀아주면서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역시 한번도 들어본 적 없이 슬프고 다급하게 울면서 문을 긁기만 해서 다시 거실로 내보냈더니, 또 둘이 뒤엉켜서 논다. 말랑이를  방으로 데려가도 낚시대엔 영 관심을 보이지도 않고 방 안에 둔 화장실도 쓰지 않았다.

   화장실 영역 다툼을 하는 건가 싶어서, 문간방에 있던 화장실을 잘 보이게 거실 맞은편으로 옮겼다. 이미 모래가 들어있어서 꽤 무거웠다. 끙차끙차. 하지만

너희가 잘 지내기만 한다면 내 팔쯤이야. 그러고 나서 아침에 봤는데, 옮겨둔 화장실에선 볼일을 하나도 안 봤다. 기존 화장실에만 오줌 똥을 나란히 두세 개씩 남겨둠.

   만약 화장실 때문에 싸움을 한 거라면 저렇게 용변을 볼 여유가 없지 않았을까. 문제가 생기는 걸 피하고 싶어서 내가 지금 상황을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려는 걸까. 오늘하루 지켜본 아이들은 둘이 꽁냥꽁냥 잘 놀았다. 베란다에서 햇빛을 받으며 발라당 누워잘 때도  둘이 꼭 붙어 있는 품이 더 귀여웠다. 그루밍을 할 때 말랑이가 콩떡이 얼굴을 핥아주는 걸 보곤 가슴이 뭉클해졌다. 온몸을  핥아가며 몸을 깨끗이하는 고양이가 직접 핥을 수 없는 부분, 얼굴. 그 부분을 핥아주는 건 애정표현이라 배웠는데 그 아름다운  장면을 눈앞에서 보게 되다니, 이게 냥이 두 마리를 키우는 기쁨이구나.

   게다가 오늘은 그런 화장실 다툼으로 의심되는 상황은 안 보였다. 지금도 시끄러운 집사를 피해 소파 뒤에서 둘이 엉켜 자는  말랑콩떡이. 사람이 사춘기가 지나면서 점점 독립심을 키워가듯, 아직 아기고양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다. 얘들이 부디 천천히 자라다오!

이전 05화 5. 엄마 쟤 흙 먹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