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랑콩떡이를 처음으로 목욕시켰다. 길냥이들이라 한번 씻기고도 싶었지만 참고 있었다. 고양이들이 워낙 목욕을 싫어한다고 하니까 갓난애들에게 굳이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두둥 연휴 마지막날인 어제, 건강검진을 받았던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8월 28일에 검사하신 곰팡이 배지결과 양성으로 나왔습니다'
곰팡이를 배양한 시약병엔 말랑콩떡이 털에서 퍼런 곰팡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나도 냉장고에서 곰팡이 많이 키우는데, 너희는 털에서 키우고 있었구나.
믿고 싶지 않은 마음,병원을 조금이라도 피해보고 싶은 마음에 답장을 했다.
'8월 28일이요?'
길어도 2주쯤이면 결과가 나온다고 했었으니 병원측의 오타겠지만, 로또 맞을 확률로 이 연락이 잘못 온 것이길 기대하며.
역시나 의사샘의 오타였고 약용샴푸와 항진균제,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나도 병원에서 빼달라고 하는 항생제를 1키로도 안되는 고양이들에게 먹이려니 정말 마음에 불편하지만, 의사샘이 애들 체중에 맞게 잘 처방해주셨으려니 하고 믿을 수밖에.
그리고 집에 와서 뽀득뽀득... 은 아니고 전쟁 같은 목욕시간. 약용샴푸를 바르고 10분이나 두어야 한대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둘 다 욕실로 데려왔는데 정말 둘다 삐약삐약거리고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10분을 두자니 애들이 바들바들 떨면서 너무 추워하고, 혀로 핥아가며 그루밍하는 걸 막기가 어려워서 그냥 빨리 헹굼. 게다가 샴푸가 거품도 잘 안 나서 사실 목욕의 효과라도 있긴 했는지 의문이다. 주말쯤 곰팡이가 자라고 있는 부분만 정말 10분 지켜서 두고 제대로 헹궈줘볼까 생각한다.
그간 드라이기를 무서워하지 않게 하려고 말랑콩떡이가 있는 공간에서 내가 머리를 말린 적은 있었지만, 애들한테 바람을 들이댄 건 처음이라 드라이기도 몹시 무서워했다. 말랑이와 콩떡이를 번갈아가며 잠깐씩 드라이를 하니 그래도 애들 몸이 작아서 생각보단 금방 말라갔다.
이제 더이상 참아주지 않을 것 같을 때, 토퍼를 펴고 이불 속에 들어가있게 했더니 정말 편안한 자세로 쭉 뻗어 잔다. 원래 이렇게 저녁시간이면 자기들끼리 오종종 뛰어다니거나 집안 탐험을 했는데, 정말 많이 긴장하고 힘들었던 모양이다.
고냥이들에겐 무섭고 어설픈 집사에겐 아쉬운 경험이었던 첫 목욕. 곰팡이 때문에 앞으로도 전신이든 신체(묘체?) 일부든 씻어낼 일이 많을텐데 잘 적응해준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