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꼬마뱀. 눈을 뜨니 강화마루 바닥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꿈틀거리면서 느릿느릿 주변을 돌아보려는데 웬 펀치를 맞고 정신이 어질어질해졌다. 몸을 숨길 곳을 찾아본다. 소파 아래로 머리를 들이밀어 보지만 너무 좁다. 꼬리부터 자그마한 발톱에 끌려나와서 내동댕이쳐졌다. 속도가 중요하다. 눈앞에 보이는 상자에 무작정 기어들어가본다. 나의 떨림을 알아챘는지 또 거대한 발이 나를 덮친다.
내가 날 수 있었던가?! 휙 날아오른 나는 맞은편에 보이는 커다란 기둥을 기어올라가기 시작한다. 할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아슬아슬하게 그들의 손길을 피했다. 잠깐 내려다보니 고양이 두 마리가 꼬리를 까딱거리며 나를 노리고 있다. 안 그래도 아찔한데.. 기둥 끝까지 올라와서 한숨을 돌린다.
이게 무슨 소리지? 박박 박박박박. 저렇게 다리가 짧은 놈이 손톱을 기둥에 박아대며 기어오르고 있다. 곧 닿을 것만 같다.
그들은 이미 붙잡은 나를 앞발로 슬슬슬 건드린다. 두 마리에게 번갈아가며 이리 맞고 저리 맞은 탓에 머리가 띵하다. 이렇게 갈 순 없다. 조금이라도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가보려 한다.
하느님 부처님 조상님 감사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내 몸은 날아올라 소파 꼭대기에 닿았다. 혹시 여기가 천국은 아니겠지. 그들이 송곳니를 드러내고 나를 씹어먹기 직전이었다. 몇번 냐앙 냐앙 거리다 둘다 고개를 돌리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공을 굴리기 시작한다.
오늘 나는 장난꾸러기 딱새*. 엉켜있는 고양이 두 마리 앞에 깔짝대며 약을 올려봤다. 얼룩고양이의 동공이 커진다. 슬금슬금 뛰어와서 앞발을 휘둘러보지만 어림없지. 5센티밖에 안되지만 민첩함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나다! 다시 눈을 끔벅거리며 잠들 기세길래 고이 접힌 차렵이불 위에서 화려한 나의 춤사위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 이불 맘에 드는걸. 속으로 파고들어보니 보드랍게 몸에 착착 감기는 기분이 든다. 잠을 사랑하는 집주인 녀석이 모달 이불을 장만했나보다.
몇 번 몸을 뒤척이니 이불 너머로 쿡 쿡 고양이 앞발이 파고든다. 하여간 이불 속에서 뭔가 꿈틀대기만 하면 잡아보고 싶어서 안달이다. 고녀석의 발을 피해 여기저기 돌아다녀본다. 용용 죽겠지. 이불 밖으로 빼꼼 깃털 한짝을 내밀어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때가 실은 가장 위험할 때다. 숨을 참고 몸을 낮춘 채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나만 바라보고 있을 거다.
샤샤샥 몸을 빼내서 이불 위에 놓인 베개 위에서 팔락거려본다. 녀석은 뛰어들 듯 하더니 다시 몸을 낮추고 나를 노려본다. 나도 숨을 죽인다. 여기서 조금 멈췄다가 살짝 움직이는 순간, 발톱을 세우고 달려들곤 하는데, 그때 바로 싹 피하면 기분이 좋거든요.
바닥에 고이 접힌 요와 이불 사이, 베개와 이불 사이 틈을 찾아 정신없이 달린다. 몸을 살짝 숨기면 정신 못차리고 덤벼드는 녀석들. 아니 언제 두 마리가 됐지? 깃털만 살짝 보여줬다가, 모습을 숨기고 꿈틀거리는 모양만 보여줬다가 야단스럽게 돌아다니니 녀석들도 약이 바짝 올랐다. 방금도 날카로운 발톱에 깃털이 살짝 스쳤다. 날랜 나였기에 망정이지 피멍이 들 뻔했구나.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새하얀 고양이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이 녀석은 제대로 물면 놓질 않는다. 이미 여기 저기 물어뜯기고 있는데 얼룩이가 양 발을 들고 앙, 소리를 내듯 뛰어 덤벼든다. 성치 않은 몸으로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리며 비틀비틀 걸어간다. 날아오르긴 힘들 것 같지만 다시 나에게 덤벼드는 두 마리 고양이의 손길을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간다.
오늘은 얘네 둘 다 배가 고픈 건지 끝까지 나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다시 한번 오도도도 달려드는 두 마리의 스피드에 졌다.
"집주인, 주인놈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빨리 나를, 나를...."
아득한 의식 너머로 집주인놈의 목소리가 들린다.
"말랑아, 콩떡아, 오늘도 사냥 성공했네? 엄마 출근하고 올게 잘 놀고 있어~"
*실제로 딱새는 5cm 길이는 아니다. 그냥 집 주변에 많아서 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