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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수 Jun 09. 2019

홀로있음이 가능하려면 함께있음이 있어야 한다

2019.6.9 다시 읽는 마이클 아이건, 깊이와의 접촉, 1장

마이클 아이건의 구절들은 심금을 울린다

책 읽기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기, 내 속으로 돌아가기, 나를 느끼기,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와 같은 복잡한 활동이다. 사람을 묶어둔다.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상상 속에서 마음이 작동하게 한다. 집중되지 않으면 그냥 건조한 문자인데, 느낌이 열려서 들어가면 어떤 소우주에 들어와서 걷게 되는 느낌이다.


Contact with the depths

깊이와의 접촉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심연과의 만남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다.


아이건은 구별-연합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 정신에서 하나였다가 하나가 아니기를 반복하는 현상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종교적으로는 삼위일체와 같은 개념이긴한데, 그가 주목하는 것은 구별되었다가 연합되었다가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병리를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이 개념은 비온의 융햡경향성과 분열 경향성 이야기, 마테 블랑코의 대칭적 무의식과 비대칭적 의식 이야기와도 비슷하다고 소개한다. 또한 비온의 K 아는 것과 O 모르는 것, 제로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와도 비슷하다고 본다.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들의 구별과 연합으로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패턴을 여러 이론가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설명한다.


여기에서 아이건은 본인의 초창기 사례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에이브라는 알코올 중독자와의 상담을 소개한다. 에이브와의 상담에서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소리, 반응, 환경의 패턴과 다르게 아이건은 그에게 조용한 배경으로 있어 주었다고 하며, 이 아이건의 거리와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 치료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분석한다. 에이브는 재발을 반복하면서 상담을 왔는데, 그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침묵이 늘어갔고, 아이건과 함께 있는 과정에서의 침묵을 어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건도 그 침묵을 통해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과정을 탐색하고 분석하였다고 한다.


이 침묵의 현존, 배경으로서의 현존 속에서 에이브는 내면의 작업을 해갔고, 치료자의 침묵적 현존이 지원 혹은 지지로 느껴지면서 새로운 깊이에 도달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아이건도 자신이 빛이 되어주기도 배경이 되어주기도 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함께 하면서 치료자는 자기 자신을 점차 더 개방했지만 말로 더 교류가 있던 것은 아니었으며, 무의식적인 접촉과 더불어 삼투압을 통해 스며들듯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었다. 시간을 두면서 천천히 흡수하고 배설하고 흡수하고 배설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에이브는 이전과 다른 치료 경험을 통해 편안해지면서 더 작업을 진전시켰고 결국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회복된 삶을 살아갔다고 한다.


위니캇의 말을 아이건의 말로 바뀌어 표현한 문장 :

" 매 순간 바뀌는 유아를 위한 정서적 기후의 변동들은 유아의 존재 안으로 퍼져나가는 물결을 일으킨다"


아이에게 엄마의 기분은 기후와 같이 작동한다는 뜻이다.

아이의 외부세계와 내면세계는 서로를 흡수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며 지지하기도 하고 전복시키기도 하는 무의식적 삶의 일부를 형성한다

위니캇의 '일차적 홀로 있음'은 이 개념을 통해 세상과 환경이 아이에게 작용하는 방식을 다시 설명한다. 본질적인 홀로 있음이 되려면 그 뒤에는 유아가 알지 못하는 환경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 중독된다고 하는 것은 중독을 통해서 ''교정적인 홀로있음'을 시도하는 것이다. 일차적 홀로있음이 가능하려면 알려지지 않은 무한한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야 아무 걱정없이 홀로 작업을 하면서 지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아무 걱정  없이 스스로 있게 된다. 이 지원이 없으면 이 홀로 있음과 홀로 있음 속에서의 몰입적 활동은 불가능하다. 달리 말하면 발달이 어렵다.

아기였을 때의 홀로있음이 받는 환경적 지원은 필수적인 것이며 생애 전 기간에 걸쳐 우리의 홀로 있음의 느낌의 일부로 남는다.  중독된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상처받은 홀로 있음으로 인해 우리가 지불하는 대가이다.

말없는 접촉, 환경으로서의 접촉이 주는 효과는 아주 깊다. 전하지 않은 듯이 보이지만 환경이 전달하는 그 안의 작은 떨림이 있다. 떨리는 말들이 말없는 떨림과 접촉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있다.


안전한 환경이자, 알려지지 않은 무한한 지원으로서의 환경이 없으면 홀로있음도 불가능하며, 그 일차적 홀로있음이 되지 않으면 과업도 창조도 놀이도 불완전해진다. 늘 주변을 신경써야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되거나 혹은 그 환경을 세우기 위해 막대한 희생을 치르기도 해야 한다.


세상에는 너무나 귀중한데 있는 줄도 모르는 것들이 많다. 없어야 알 수 있는 것들, 있을 때는 있는 것 같지 않고 없으면 그제야 깨닫지만, 다시 생기면 잊는 것, 그래서 접촉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사는 것, 그 접촉을 기억하고 그 접촉의 심연에 닿는 사람들이 삶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 동시에 그 스며들어 있는 것의 존재를 알아야만 자각할 수 있다. 이미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느끼지 못하면 그것은 함께 하지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상처받은 함께 있음은 상처받은 홀로있음과 마찬가지이다.


치료자로 산다는 것은 때로 그 배경의 재연 경험을 해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있지만 없는 것처럼 있고, 느낌도 없이 스며들고, 다만 그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홀로있음을 경험하고, 그 느낌의 반복으로 진정 홀로 있을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접촉을 유지하는 것, 무한한 알려지지 않은 자원을 제공하면서 있는 것.


구별되기도 하고 구별되지 않기도 하는 것

연합되어 있지만 연합이지도 않은 것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닌 것

자기를 버려야 자기를 얻는 것, 자기를 얻으려면 자기가 있었어야 한다는 것

역설들..

홀로 있으려면 같이 있었으면서도 마치 혼자 있는 것같은 느낌 속에서 푹 빠져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 경험에 손상을 입으면 일차적 홀로 있음, 충분히 만족적인, 외부의 침입없이 온전히 혼자를 즐기는 경험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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