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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Mar 03. 2022

민스트럴 쇼

가장 미국적이기에 침묵당한 역사

"민스트럴 쇼는 유일한 미국 고유의 것이자 가장 성공적이었던 공연 형태이다."


근대 미국의 대중문화를 휩쓸었던 민스트럴 쇼에 대한 평가입니다.

간결하지만 미국 공연사에 시사하는 바가 많아 보입니다.

이는 옳은 평가일까요? 잘못된 평가일까요? 왜 이런 평가가 나오게 되었을까요?

미국 연극사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민스트럴 쇼에 대해 알아보면서 답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민스트럴 쇼, 익숙한 이름인가요? 아마도 아닐 거예요.


민스트럴 쇼는 19-20세기, 남북전쟁(1861-1865) 전후로 미국 전역에서 굉장한 인기를 누렸던 공연 형태입니다. 흑인을 희화화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핵심이었기 때문에 부끄러운 역사로 치부당하고, 미국 교육과정에서는 언급되지도 않습니다. 어쩌다 언급되더라도, 부끄러운 과거이니 너무 깊게 들여다보지 않겠다-라며 급히 넘겨지는 부분이죠. 그래서 아마 우리에게도 생소한 이름일 것입니다.


하지만 부끄러운 역사일수록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우선 어떤 공연이었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공연 형태


민스트럴 쇼는 두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파트에는 아홉 명 정도의 공연자가 반원 형태로 둘러앉아, 가운데에 앉은 진행자의 리드에 따라 촌극을 늘어놓게 됩니다. 이때 진행자는 양 끝에 앉은 두 '도우미' 배우들과 콩트를 주고받으며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도우미 중 한 명은 탬버린을 치기 때문에 "탬보씨", 다른 한 명은 타악기를 연주하기 때문에 "본즈(bones/뼈다귀)씨"라고 불립니다. 이들이 주고받는 콩트는 흑인을 비하하거나 희화화하는 내용이고, 이어지는 촌극은 노래, 춤, 악기 연주 등을 보여주는데, 역시 흑인의 음악이나 몸짓을 희화화하여 사용합니다.  


두 번째 파트는 올리오라고 불리며 당시 유행했던 또 다른 공연 형태인 벌레스크나 보드빌로 이루어지며, 흑인 희화가 중심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민스트럴 쇼'라고 하면 주로 올리오 전의 첫 파트를 일컫습니다.



2. 흑인 스테레오 타입의 형성


민스트럴 쇼는 코미디 쇼였고, 따라서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코미디 형태(코메디아 델아르떼)를 차용하여 전형적 인물들을 만들어냅니다. 즉, 여러 공연에서 계속 쓰이는 캐리커쳐적이고 희극적 인물들을 만든 것이죠. 어떤 타입이 있었는지 알아볼까요?


짐 크로우(최초로 만들어진 캐릭터)
집 쿤(허영심에 찬 해방 노예)
매미 (지혜롭고 거친 어머니적 존재)
엉클 톰(신실하고 자상한 삼촌/할아버지)
벅 (백인 여자를 탐내는 흑인 남자)
웬치(미인계를 쓰는 여장남자)
뮬라토(밝은 피부색의 흑인 노예)
피카니니(눈이 크고 머리가 삐죽삐죽한 어린 흑인 아이)

(이미지 출처: https://black-face.com/)


이 외에도 다양한 전형적 인물들이 있는데요. 이들의 단순하고 강렬한 이미지는 현재까지도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민스트럴 쇼가 아닌 작품들에 등장하는 희극적 흑인 캐릭터 대부분이 인물 유형에 기반을 둡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팬케이크 브랜드 Aunt Jemima가 2020년에 브랜드 로고와 이름을 바꾸어 Pearl Milling Company가 된 것도 그동안 매미 이미지를 활용하여 인기를 누려왔던 것이 문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고작 2년 전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민스트럴 쇼의 잔재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납니다.

 

스파이키 리의 영화 <뱀부즐드 Bamboozled>는 민스트럴 쇼의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배우지 못한다면 이 공연이 현대에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흑인의 지위는 크게 바뀐 게 없기 때문이에요. 과거 민스트럴 쇼가 흑인을 어떻게 희화하고 비하했는지, 영화에서 3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압축해서 보여주는데요. 함께 보면서 그 깊이를 느껴보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C45g3YP7JOk 


어떠신가요? 상당히 불편한 영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인종 전체를 비하하는 내용이 즐겁고 기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기괴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3. "행복한 노예"


그렇다면 이제 민스트럴 쇼의 발생 배경과 역할을 알아볼까요?


민스트럴 쇼에서 '흑인'과 '행복'이라는 주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영혼의 단짝과 같은 관계였습니다. 남북전쟁 발발 전, 미국은 노예제 문제로 갑론을박이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노예제가 있는 남부는 옹호를, 북부는 반대를 하는 것이었죠. 노예제가 폐지될까 불안한 상황에서 남부 백인들은 노예제 속에서 행복해하는 흑인의 모습을 보며 불안감을 달랬습니다. 더군다나 극 속에서 흑인들은 미숙한 인간, 즉 인간의 존엄성이 없는 존재라는 점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노예제의 타당성과 합리성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이에 더해 당시 미국에는 아일랜드에서 백인 노동자가 대거 이주해 온 상황이었습니다. 이민 온 백인 노동자들은 중산층이 될 수 없는 현실을 겪으며 사회적 불안정성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절대 하위를 어필하는 흑인 노예를 함께 비하하고 즐기는 것은 이들의 자존감을 효과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콘텐츠였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예제가 가장 불안정하던 시기 가장 흥행했던 장르가 바로 노예제를 찬양하는 민스트럴 쇼였던 것이죠.


북부에서는 노예제를 반대했지만, 실제로 흑인을 만나 교류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민스트럴 쇼를 통해 노예제를 배우고 흑인 문화를 배웠습니다. 따라서 노예제 폐지를 외치면서도 잘못된 인종 관념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들 역시 민스트럴 쇼를 소비하고 전형적 인물들을 확대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제가 폐지되고 나서도 민스트럴 쇼는 한동안 사라지지 않습니다. 남부 사람들에게 행복했던 과거를 상기할 수 있는 매체로서 오랜 기간 각광을 받기 때문이에요. 이때 무대 위 흑인 캐릭터들은 더없이 행복한 모습으로 노예로서의 행복한 삶을 부르짖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불안정한 사회적 자아에 빠르고 쉽게 안정성을 제공해주는 민스트럴 쇼의 엄청난 인기는, 과연 미국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일까요?


UC 샌디에이고의 프랭크 윌더슨 교수는 "아프로 페시미즘(Afropessimism)"이라는 개념을 통해 흑인 비하가 흑인을 제외한 모두에게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의 핵심 질문과 대답을 아래에 옮겨보겠습니다.


    왜 인종이 우리의 도덕적 정치적 세계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는가? 왜 노예제는 - 정치적, 지적, 문화적 형태 모두에서 - 순환하는 고리처럼 계속해서 흑인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가? 왜 흑인 혐오 폭력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만연한 것인가?

    흑인 혐오적 정복과 폭력의 팽배함에서 볼 수 있듯 노예제의 사회적 산물은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문명을 작동시키는 동력 그 자체이다. 주인-노예의 역학 없이는 세계 문명을 지지하고 있는 기본 틀이 무너지게 된다. (필자 의역)

    Why does race seem to color almost every feature of our moral and political universe? Why does a perpetual cycle of slavery—in all its political, intellectual, and cultural forms—continue to define the Black experience? And why is anti-Black violence such a predominant feature not only in the United States but around the world?

    The social construct of slavery, as seen through pervasive anti-Black subjugation and violence, is hardly a relic of the past but the very engine that powers our civilization, and that without this master-slave dynamic, the calculus bolstering world civilization would collapse.




현재 미국이 인종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은 '지움'이 주가 됩니다. 삼가고, 언급하지 않고, 덮는 것이죠.


미국에서는 흑인이 아닌 사람이 n-word를 사용하는 것과 흑인 분장을 하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블랙페이스(blackface)라고 일컬어지는 흑인 분장은 태운 코르크 또는 구두닦이를 얼굴에 발라 흑인을 표현하는 것으로 민스트럴 쇼의 꽃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백인도, 흑인도, 블랙페이스를 하고 민스트럴 무대에 올랐습니다.

 

블랙페이스를 통해 흑인성 그 자체가 굉장히 연극적인 개념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백인들은 원하는 만큼 자신이 되고 싶은 흑인의 이미지가 될 수 있었고, 흑인들은 블랙페이스를 통해 실제 흑인으로서의 경험과 희화화된 흑인의 모습을 분리하였기 때문입니다.


역시 기괴한 현상이 아닐 수 없죠. 한 인종의 세계와 경험 체계를 마치 누구나 쓰고 버릴 수 있는 장난감처럼 만드는 것이 이 블랙페이스입니다. 따라서 현대 미국에서 블랙페이스는 n-word와 마찬가지로 터부시 되지만, 그럼에도 심심치 않게 할로윈 등 즐기기 위한 자리에 백인들의 블랙페이스가 등장하여 논란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닌데요. 백인을 연기할 때는 화이트페이스를 하지 않으면서 흑인을 연기할 때는 블랙페이스를 종종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흑인이 검은 분장을 통해서만 표현 가능하다는 개념이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블랙페이스와 민스트럴 쇼가 아직까지 지배하고 있는 흑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어떻게 깨부술 수 있을까요?


한 예로 팝가수 자넬 모네의 Q.U.E.E.N 뮤직 비디오를 살펴봅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EddixS-UoU

뮤직비디오에서 흑인들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백인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다가, 고정된 형태에서 서서히 깨어나 박물관을 자신들의 공간으로 만듭니다. 블랙페이스의 반대인 화이트페이스도 등장합니다. 검정과 하양으로 다채롭게 이루어진 뮤직비디오의 세계는 두 색이 반드시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자, 그러면 다시 처음의 문장으로 돌아와 봅시다.

"민스트럴 쇼는 유일한 미국 고유의 것이자 가장 성공적이었던 공연 형태이다."

이 문장이 시사하는 바와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시사하는 바는 그만큼 미국의 정체성은 흑인과 노예제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 더 이상 그 역사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겠죠.

 

문제점은 이렇게 '진정 미국스러운 유일한 공연'조차 '미국 고유'의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민스트럴 쇼를 이루었던 모든 노래, 춤, 농담은 노예들이 실제 노동 현장에서 사용했던 음악과 춤과 문화를 그대로 베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인들이 흑인 노예를 보고 들으면서 슬프고 고통스러운 부분을 모두 잘라내고 밝고 희망적인 부분만 훔쳐서 쓴 것이기 때문에 고유성이나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민스트럴 쇼를 배우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흑인에 대한 이미지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무엇을 통해 그런 이미지가 형성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비하적 이미지가 있었다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왜 그렇게 쉬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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