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미국인 연극 2 - <엠 버터플라이>가 그리는 상상 속 세상
지난 포스트에서는 '인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떤 개념을 가지고 사람을 보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다르게 보인다는 점을 알아보았습니다. 생각과 언어, 개념이 우리가 파악하는 세상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죠. 이번 포스트에서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들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상당히 좁고 편협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 그것이 때로는 파괴적인 비극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988년 초연된 이래로 계속해서 상연되고, 학교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 극작을 대표하는 클래식이 된 연극이죠. <엠 버터플라이(M. Butterfly)>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속 오리엔탈리즘을 해체하는 극입니다. <나비부인>에서 정숙한 일본 여성 조초 상은 미국 해군 대위 핀커턴의 정부가 되어 그에게 순정을 바치고 아이를 낳지만, 핀커턴에게 버려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엠 버터플라이>에 등장하는 남자 인물들은 <나비부인>을 회상하며 "모든 남자가 겉으로는 핀커턴을 비난하면서 속으로는 그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입을 모읍니다. 그러면 우선 <엠 버터플라이>의 줄거리를 간단히 살펴볼게요.
극은 르네 갈리마르라는 전 프랑스 외교관이 감옥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갈리마르가 해설자가 되어 자신이 수감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형태를 띠는데요. 재밌는 점은 이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그의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갈리마르의 상상 속 재구성 과정에서 그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다시 보고, 그의 친구 마크와 대화를 나누며 여자관계에 서툴렀던 청년 시절 기억을 더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극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경극 배우 송 릴링을 만나죠.
갈리마르에게 거부감을 선사했던, 당당하고 솔직해서 지나치게 남성적으로 느껴졌던 서양 여자와는 정반대의, 자존심을 세우려 해 보지만 본질적으로 가녀리고 순종적인 모습이 결국엔 튀어나와 버리는 송에게 갈리마르는 사랑에 빠집니다.
극의 배경은 베트남전 당시 중국에 위치한 프랑스 대사관으로, 갈리마르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죠. 고지식하고 샌님 같은 갈리마르에게 중국인 정부가 생기자 그의 상사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갈리마르에게 보직을 맡깁니다. 갈리마르는 송에게서 동양이 사실 서양의 지배를 바라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프랑스가 베트남전을 더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금방 베트남의 항복을 받아낼 것이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베트남의 거센 항전이 이어지며 갈리마르의 분석은 틀린 것으로 판명이 나고, 갈리마르의 좌천과 함께 송 릴링 또한 중국의 변화하는 정치 상황에 따라 수감이 됩니다. 육체노동 강조와 엄격한 이성애의 추구라는 중국의 문화혁명 정신에 송 릴링의 호화로운 삶은 위배될 수밖에 없었죠.
극의 반전 아닌 반전은 송이 남자라는 사실입니다. 경극에서 여자 배역은 여장남자가 맡는 것이 관례였는데 갈리마르는 이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송은 중국의 스파이 역할을 하고 있었고, 갈리마르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하여 중요한 정보를 빼돌렸습니다. 결국 국가 기밀을 넘긴 혐의로 갈리마르는 수감되게 되고, 송은 법정에 서서 증언을 하게 됩니다. 갈리마르가 송의 성별을 정말 몰랐는지에 대한 질문에 송은 두루뭉술한 대답과 함께, 자신은 동양인이기 때문에 절대로 완전한 남성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극 내내 화려한 경극 의상을 입고 여성성을 연기하던 송은 이제 아르마니 정장을 입고 나타나 남성성을 과시하고, 갈리마르는 그 앞에서 사랑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0107468/)
한편 갈리마르를 자신의 연기 인생 최고의 업적이라고 자랑하던 송은 갈리마르가 그의 실체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에게 완전한 나신을 보여주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진실을 마주하면 자신에게 더 감탄할 것이라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갈리마르는 자신의 경험이 그저 상상일 뿐이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송이 아닌 자신이 나비부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갈리마르는 나비부인으로 분장하고 배를 갈라 자결합니다.
(출처: https://www.courttheatre.org/season-tickets/2013-2014-season/m-butterfly/)
한 가지 정말 중요한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극은 실화에 의거한 것인데요. 실제로 1986년, 버나드 부리스코(Bernard Bouriscot)라는 프랑스 외교관이 중국인 배우와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스파이에다 남자였다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연극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니, 상당히 생각이 많아지지 않나요? 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David Henry Hwang)은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동양-서양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안에서는 이러한 사건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상상으로 <엠 버터플라이>를 쓰게 됩니다.
<엠 버터플라이>는 극 내내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허뭅니다. 갈리마르라는 수감자의 기억 재구성으로 시작하는 구조는 전체 이야기의 진실성을 흐립니다. 송이 배우라는 사실도 그의 모든 대사와 행동의 진실성을 떨어트리죠. 또한 주제적으로는 동양과 서양에 대한 각종 고정관념을 해체합니다. 서양=남성, 동양=여성이라는 생각은 현실과 차이가 있으며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메시지가 갈리마르와 송의 관계, 베트남전의 경과를 통해 전달됩니다.
갈리마르와 송의 성별과 성적 지향도 왔다 갔다 하거나 확실하지 않은 상태로 남죠. 제목의 "엠 버터플라이(M. Butterfly)"는 마담인지 무슈인지 정확히 쓰지 않음으로써 성별 구분의 애매함을 표현합니다. 또 송과 갈리마르 모두 나비부인의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엠 버터플라이가 둘 중 누구를 지칭하는지도 불분명합니다.
(출처: https://thenationaldcprebroadway.org/the-barrier-breaker-m-butterfly/)
오리엔탈리즘
<엠 버터플라이>는 오리엔탈리즘을 전면적으로 해체합니다. <엠 버터플라이>를 이끄는 동서양의 이분법적 사고는 사실 오리엔탈리즘에서 오는데요. 오리엔탈리즘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1978년 책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체계화하고 후기식민주의적 담론의 지평을 연 혁신적인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기존에 존재하지만 이름이 없어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없었던 동양에 대한 서양의 인식을 분석합니다. 사이드는 오리엔트, 즉 동양이 하나의 개념적 존재로서 서양의 정체성 형성을 위해 동원된 것이며, 진실과는 무관함을 설명합니다. 서양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만든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타자화하고 이에 온갖 이질적이고 부정적인 성질을 부여합니다. 이는 서양의 자아를 그 반대로 규정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죠. 반대 개념이 있을수록 자아는 더 안정적이고 단단하게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이분법적 사고가 주는 안정감을 제대로 활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https://thecompanion.in/orientalism-paving-the-way-for-post-colonial-studies)
브레히트 기억하시나요? 연극성이 극대화된, 서사극이라는 공연 장르를 개념화한 것으로 유명하죠. 브레히트는 관객이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구조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하여 이를 비판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도록 유도했습니다. 인종과 동양/서양의 구분의 인위성을 짚어내는 <엠 버터플라이>는 서사극적 장치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실은 인위적인 것이며 하나의 연극과 다름없음을 보여줍니다. <엠 버터플라이>가 활용한 서사극적 요소를 몇 가지 살펴볼까요?
에피소드적 구성: 갈리마르의 이야기와 송의 이야기가 각각 따로 제시된다. 기억의 조각을 따라가기 때문에 이야기가 분절적으로 제시된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흐림: 갈리마르는 관객에게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말하며 무대를 선보이고, 송은 법정에 서서 증언하기 전 관객에게 자신의 변신이 시간이 걸리니 쉬고 오라며 인터미션을 선언한다. 그는 무대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극의 시간과 관객의 시간을 하나로 맞춘다.
교훈적 내용: 갈리마르와 송은 직접적으로 관객을 향해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에 문제가 있음을 반복해서 지적한다.
다양한 공연 형태의 공존: 오페라(푸치니의 <나비부인>), 연극(전체 공연), 경극(송이 공연하는 베이징 오페라)이 번갈아 등장한다.
이와 같은 서사극적 구성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효과적으로 해체하는데요. 동양에 대한 서양의 고정관념이, 실제 현실과 맞닿아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강력함을 지적하는 극의 의도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엠 버터플라이>는 오리엔탈리즘이나 인종차별에 대해, 이를 실제라고 착각해도 안 되고, 또 완전한 상상이라고 일축해버려도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미스 사이공(Miss Saigon)>이라는 또 다른 현대판 오페라 나비부인의 케이스를 보겠습니다. 1989년에 초연된, 굉장히 유명한 영국의 뮤지컬이죠. 베트남전 중 열일곱 살의 '순수한' 베트남 여성이 백인 군인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지만 결국 그에게 버려진다는 내용이 <나비부인>과 유사합니다. 지금도 자주 상연되는 극이지만 오래전부터 크게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엠 버터플라이>와는 다르게 <나비부인>의 오리엔탈리즘을 그대로 재생산하고, 패전한 미국을 영웅시하고 베트남을 사창가에 비유하는 등 극 내부적으로 이미 정치적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극 외부적인 캐스팅 문제까지 겹치면서 공연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도 하죠.
(출처: https://www.nytix.com/shows/miss-saigon)
캐스팅의 경우, 초연에서 동서양 혼혈로 설정된 포주 캐릭터를 분장한 백인 배우가 연기하면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민스트럴 쇼에서의 블랙페이스와 다름없는, 인종차별을 용이하게 만드는 옐로페이스였기에 용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었죠.
주연을 맡은 레아 살롱가(Lea Salonga)와 관련한 문제도 있었습니다. 서양 프로듀서들이 동양인 외모에 디즈니 뮤지컬 창법을 구사하는 배우를 찾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끝에 레아 살롱가라는 인물을 발굴해내는데요. <미스 사이공>으로 인상적 데뷔를 한 레아 살롱가는 이후 대배우가 되어 아직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레아 살롱가가 미국인도, 영국인도 아닌 필리핀 사람이라는 것이었는데요. 베트남 인물을 필리핀 배우가 대신 연기하는 것이 동양 내 유대를 강화한다는 긍정적 의견도, 차이를 무시하고 동양을 획일화하는 오리엔탈리즘을 강화한다는 부정적 의견도 있어 끊이지 않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미스 사이공> 공연을 한다면 캐스팅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출처: https://newyorklifestylesmagazine.com/articles/2018/03/11.html)
아시아계 미국인 연극의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는 <엠 버터플라이>를 살펴보았는데요. 완성도 높은 작품이지만 여러 가지 한계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계 미국인이 만든 극이다 보니, 송이 스파이 활동을 하는 부분의 장면이 교포의 상상 속 중국이라, 역시 중국에 대한 서양적 고정관념을 그대로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또한 송이 출연하는 경극 장면은 경극에 대한 진지한 조사나 재현 없이 엉성하게 "중국적"인 분위기만 주고 끝나기 일쑤입니다. 그 와중에 공연 홍보는 이 화려한 경극 장면을 활용하고, 공연을 본 관객도 경극 덕분에 볼거리가 많았다는 리뷰를 남기곤 합니다. 여전히 브로드웨이에서는 종종 <엠 버터플라이>와 <미스 사이공>이 나란히 올라가기도 합니다.
클래식이 된 <엠 버터플라이>는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이제는 지겹게 여겨지는데요. 질릴 정도로 흥행이 계속된다는 것은 이 극이 아직도 사회에 충격을 던지고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1988년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이분화,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은 그다지 해체되지 않고 굳건히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인위적 인식과 싸우기 위해 연극이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