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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May 25. 2022

팔아넘기거나 내가 팔려가거나

사회 변혁 연극 1: 중남미계 미국인 연극과 치카노 운동

정복과 식민의 역사를 가진 땅에서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는 것이 아주 중요하죠. 이때 투쟁에 동참하기는커녕 동족을 저버리고 정복자의 편에 선 사람들은 배신자로 인식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들은 친일파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고요.


오늘은 멕시코계 미국인의 투쟁의 역사와, 60년대에 본격적으로 일어났던 제국주의 및 친미파에 대한 저항을 루이스 발데즈(Luis Valdez, 1940~)<팔리는 것들>(Los Vendidos)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치카노 운동 Chicano Movement


치카노 운동을 살펴보기 이전에, 중남미계 미국인에 대한 호칭부터 알아볼까요? '아시아계 미국인'이라고 통칭되는 동양인보다 한층 더 애매한 범주가 중남미계 미국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지칭할 때는 언어적 구분인 히스패닉계 미국인(Hispanic American), 지역적 구분인 라틴계 미국인(Latin American), 또는 최근에 다양성을 인식하여 등장한 표현인 라틴엑스(LatinX)를 모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 안에서도 크게 멕시코, 푸에르토 리코, 쿠바계 등으로 나뉘고, 이 중 가장 큰 집단인 멕시코계는 성별에 따라 치카노 또는 치카나라고 불리니, 중남미계 미국인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헷갈리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들에 대한 호칭이 처음에 치카노/치카나로 시작하여 히스패닉으로, 그리고 라티노/라티나를 지나 라틴X로 변해왔습니다.


치카노라는 이름이 먼저 사용된 데에는 여러 배경이 있는데요. 이 단어는 맨 처음에 이민 2세대 멕시코계 미국인을 비하하는 단어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60년대 중남미계 미국인 인권 운동은 치카노를 슬로건으로 내걸면서 이 단어를 민족 자결권과 자긍심의 상징으로 바꾸었습니다. 인종 차별을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맞서면서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오겠다는 결심을 보이는 움직임이었죠.


치카노 운동은 중남미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고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운동으로, 필라델피아, 시카고, 뉴욕 등 동부에서는 푸에르토 리코계 미국인을 위주로, 서부와 남부에서는 멕시코계 미국인을 위주로 하여 미국 전역에서 일어났습니다. 치카노 운동은 60년대에 다른 운동들에 휩쓸려 엉겁결에 일어났다기보다는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왔던 것이 적절한 시기를 만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846년-1848년간 벌어진 미국-멕시코 전쟁 이후부터 계속 쌓여온 문제가 한 세기가 지나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기 때문이에요. 미국-멕시코 전쟁은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he Treaty of Guadalupe Hidalgo)으로 종결되는데요. 이 조약으로 멕시코는 어마어마한 영토를 미국에게 넘기게 됩니다. 현재 미국 서부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등과 남부의 텍사스가 이에 속했으니, 정말 큰 전쟁이자 조약이었죠.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은 이렇게 미국으로 넘어간 땅에 거주하던 멕시코 주민들이 계속 그 자리에 머물 경우 미국 시민으로 인정하고 권리를 완전히 보장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한 세기 동안 미국은 온갖 차별, 교육 분리, 선거권 제한, 인종 정형화 등 기본적인 인권조차 지키지 않는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멕시코계 미국인 노동자들에게 최저 임금이 보장되지 않음에 따른 노동 착취와 2세대 자녀 시민권 부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치카노 운동은 파업을 주도하는 등 노동자 문제에 특히 관심을 보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G8Cwl7bhpk

치카노 운동 사진 중 하나인데요. 우리가 국경을 넘은 것이 아니라 국경이 우리를 넘었다는 표어가 미국-멕시코 갈등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고 있습니다.


치카노 운동의 특징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평화 운동이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캘리포니아에서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여러 소수자 운동, 특히 제3국 집단들과 연계하여 미국의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에 대항하였습니다. 젊은 세대가 평화 시위를 주도하면서 치카노 운동은 단순한 저항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을 통해 젊은 세대 중남미계 미국인은 스스로의 역사와 차별적 구조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해 의식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평화 시위라는 형태는 예술적인 표현의 창구를 크게 열었습니다. 치카노 운동의 맥락에서 다양한 교육적, 저항적 예술이 등장하였는데, 연극도 이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팔리는 것들>의 저자 루이스 발데즈는 연극을 통해 치카노 운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젊은 세대의 평화시위, 그리고 선거권을 강조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출처: https://www.cnn.com/style/article/la-raza-autry-museum-los-angeles/index.html)




팔리는 것들 Los Vendidos


<팔리는 것들>은 짧은 단막극으로, '정직한 산초'의 가게에 주지사의 비서 지메네즈가 방문하여 관리직에 고용, 다양성을 대표할만한 그럴듯한 모습의 직원을 구매하려는 내용을 그립니다. 산초는 지메네즈가 찾는 조건에 따라 다양한 모델을 선보이는데, 모델 하나하나가 백인 사회에서 정형화된 중남미계 미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는 가성비 모델인 농부, 할 줄 아는 영어는 욕밖에 없지만 엉덩이를 걷어차기에 안성맞춤인 파추코, 솜브레로를 쓰고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혁명가 등 여러 모델을 보여주지만 지메네즈가 찾는 정확한 모델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지메네즈와 산초는 이들을 폭스바겐에 비교하며 물건 대하듯 합니다.


산초는 마침내 지메네즈가 찾는 요구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모델을 찾는데요. '에릭'이라는 이름의 멕시코계 미국인 모델입니다. 에릭은 깨끗하고 좋은 냄새가 나며 안경을 쓰고 정장을 입고 있죠. 유창한 영어로 미국 만세(God Bless America)를 외치는 멕시코계 미국인은 피부가 어두운 톤일 뿐 완전히 백인화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지메네즈는 정확히 원하던 모델임에 만족해하며 비싼 돈을 지불합니다. 하지만 돈을 받자마자 에릭은 스페인어로 치카노 운동 만세를 외치며 오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다른 모델들도 함께 치카노 만세를 외치며 지메네즈를 향해 다가오고, 겁에 질린 지메네즈는 그대로 도망칩니다.


지메네즈가 도망치자 마치 기계와 같던 모델들은 하나둘씩 인간으로 살아나고, 인간인 것처럼 존재했던 산초는 그 자리에 멈춥니다. 살아난 인간들은 이번 건이 오래 걸렸다며 수입을 나눠 가지고 산초의 사양에 만족해하며 퇴근합니다.

인간성을 상실한 기계의 모습으로 중남미계 미국인을 표현한 2019년 롱비치 주립대의 <팔리는 것들> 포스터입니다.

(출처: https://cla.csulb.edu/departments/chls/event/los-vendidos/2019-02-13/)




스팽글리시 Spanglish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본적 다양성을 내재하고 있는 중남미계 미국인의 문화 중 특징적인 것이 스팽글리시입니다. 중남미계 미국인 연극의 언어는 스팽글리시를 주로 사용하는데요. 공식적 기록에는 1948년에 최초로 등장하는 이 단어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혼합하여 사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모두 지칭합니다. 이렇듯 두 언어가 혼재된 언어 습관은 표준 영어의 우위를 고집하는 백인 정착민들에게 틀린 것, 나쁜 것으로 치부되어 오랜 시간 비난받았습니다. 하지만 치카노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는 중남미계 미국인 극작가들은 스팽글리시를 창조적인 힘이 풍부한 자신들만의 문화로 재정의하면서 적극적으로 극작에 활용했습니다. <팔리는 것들>에서도 언어는 극의 정치적 메시지 전달에 핵심적 역할을 합니다.


"그래, 우리 스팽글리시 사용한다. 그래서 뭐?"라는 내용의 포스터입니다.

(출처: https://www.worldoutspoken.com/articles-blog/spanglish-its-who-we-are)


그렇다면 <팔리는 것들>에서는 언어를 어떻게 활용할까요?

지메네즈은 등장하자마자 자신을 멕시코식인 '히메네즈'가 아닌 '지메네즈'라고 불러줄 것을 요구한다.

인물들의 영어 발화 내용과 스페인어 발화 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영어는 미국 동화론자를 만족시킬만한 온순한 내용을, 스페인어는 치카노 운동의 정신을 반영하는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제목 로스 벤디도스(Los Vendidos)는 중의적 표현으로, 물건을 팔고자 하는 연극 내용을 반영한 '팔리는 것들'이기도, 당시 친미파로 동족임에도 미국에 동화되고자하는 무리를 일컫는 '배신자(팔아넘긴자)'의 의미이기도 하다.


스팽글리시가 표현의 다양성과 현실의 다면성을 잘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어적 외에도 예술적으로 다면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있는데요. 이를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합니다.




마술적 사실주의 Magical Realism


중남미계 미국인의 예술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마술적 사실주의(Magic Realism)라고 불리는 예술 사조로, 서로 상충하는 관점의 공존, 현실에 대한 이성적 인식과 이 현실의 일부로서 초자연적인 것이 존재하는는 것 등이 이에 속합니다. 이처럼 마술적 사실주의는 판타지와 달리 평범한 현대 세계를 배경으로 환상적 요소들이 일상적인 것처럼 존재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마술적 사실주의가 그려내는 세상은 주로 도시와 시골 또는 서양과 원주민의 혼재가 불협화음을 빚어내는 곳이고, 여기서 주로 국경, 혼합, 변화와 같은 주제가 다뤄집니다. 이는 정상을 규정하는 여러 기준들에 균열을 일으키고, 기존의 이성적 세계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규범, 비정상으로 치부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듭니다.


그렇다면 <팔리는 것들>에 드러나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면모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환상적 요소: 인간 같은 로봇을 파는 가게의 존재

환상적 요소의 일상성과 정치적 메세지: 미국 정부에서 다양성을 위해 필요한 로봇을 으레 골라왔다는 암시(인간과 로봇의 경계 흐림)

상충적 현실: 정형화된 인물들의 정형성 탈피, 영어와 스페인어 사이의 갭(언어에 따라 다른 현실의 공존)

일상에 환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들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는 것과도 같죠. 정확히 어떤 가게인지, 선보여지는 모델들은 로봇인지 무엇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는다는 점은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제 현실 백인 사회에서 중남미계 미국인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멕시코와 미국 사이 국경선에서의 초상화>라는 제목의 프리다 칼로 작품입니다. 비현실적 표현으로 혼종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처: https://www.1000museums.com/frida-kahlo-art-magical-realism/)




엘 떼아뜨로 깜페시노 El Teatro Campesino


지역 사회 연극이라는 개념을 통해 <팔리는 것들>을 더 잘 이해해보겠습니다. 커뮤니티 씨어터(community theater)라고 불리는 지역사회 연극은 주로 아마추어 연극인들이 올리는 극을 지칭합니다.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그들에 대한 극인만큼 주로 해당 지역인들에게 의미가 있는 내용을 만들어 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존극을 그대로 올린다고해도 다른 전문인력의 도움이나 지원 없이 만들 경우 커뮤니티 씨어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엘 떼아뜨로 깜페시노를 창단한 루이스 발데즈입니다.

(출처: https://tdps.berkeley.edu/luis-valdez)


<팔리는 것들>의 극작가 루이스 발데즈와 그가 만든 극단 엘 떼아뜨로 깜페시노(El Teatro Campesino, 직역: 농부 연희단)는 지역 사회 연극이라는 형태를 통해 치카노 운동에 힘을 보탰는데요. 1965년에 만들어진 이 극단은 이주 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힘썼습니다. 특히 포도 수확자 파업 당시 대중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하였고요. 엘 떼아뜨로 깜페시노는 더 많은 지역 사회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무대 요구조건을 최소화한 극을 만들고 캘리포니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농장, 밭, 대학교, 교회, 마을 회관 등에서 극을 올렸습니다. <팔리는 것들> 역시 무대 장치가 전혀 필요하지 않아 어디서든 공연될 수 있죠.


<팔리는 것들>은 극단이 만들어지고 2년 뒤인 1967년에 올린 극으로, 당시 극단이 주로 사용했던 악토(acto)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토는 즉흥성에 기반한 짧은 정치적 단막극으로, 배역 2개와 갈등 상황의 존재가 최소한의 요구조건입니다. 갈등 상황이 필수적인 이유는 악토를 통해 배우와 관객이 함께 문제의 해법을 찾아나가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경험에 기반하여 즉흥적으로 만드는 이 극은 중남미계 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적 현실을 담고 있었습니다. 지역 사회 연극의 정치적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려주는 극 형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팔리는 것들>은 짧지만 꽤 큰 임팩트와 의미를 가진 연극이었습니다. 간단한 극 안에 정형화된 중남미계 미국인들의 비인간화 문제, 친미파 문제, 치카노 운동에 대한 지지와 전복행위까지 깔끔하게 담겨있죠.


이렇듯 지역 사회 연극은 필요한 시기에 연극의 정치적 힘을 극대화시키곤합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브라질의 민중연극을 살펴보면서 사회 변혁 연극이라는 개념을 더 본격적으로 다루고, <팔리는 것들>의 이야기도 이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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