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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May 28. 2022

관객이여, 자리에서 일어나라

사회 변혁 연극 2: 아우구스또 보알의 민중연극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보러 갔다가 다리가 아파 몸을 뒤척이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졸았던 경우가 있나요?


저는 자주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공연 연구를 직업으로 하다 보니 공연을 보러 가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것보다 좁고 불편한 자리에 오랜 시간 망부석처럼 앉아서 많은 내용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데에서 과부하가 오는 것 같아요.


이번 시간에는 이렇듯 가만히 앉아 공연 내용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근대적 공연 형태에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모색한 '억압된 자들의 연극'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회변혁연극과 민중연극
Theatre for Social Change & Theatre of the Oppressed


지난 포스트에서는 루이스 발데즈의 <팔리는 것들>을 통해 지역 사회 연극이자 정치적 의도를 가진 단막극 '악토'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정치성이 다분한 악토는 사회변혁연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회변혁연극(Theatre for Social Change)노골적으로 정치적 저항의 의도를 가지는 연극을 통칭하는 이름입니다.


사회변연극이라고 하면 브라질의 연극인 아우구스또 보알(Augusto Boal, 1931-2009)이 만든 민중연극을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에는 민중연극이라고 알려진 이 극은 직역하면 억압된 자들의 연극(Theatre of the Oppressed)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억압된'이라는 표현 때문에 이름만 들어서는 소수자를 위한 연극, 다양성을 위한 연극이라는 오해를 받기 쉬운데요. '억압된 자'가 지칭하는 대상은 사실 관객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4의 벽이 존재하는 서양 연극의 형태는 관객이 조용히 숨을 죽이고 내용을 받아들이는 일방적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극장 내 권력관계를 전복시키고 관객의 참여 여지를 높이고자 고안된 연극이 '억압된 자들의 연극'이니, 한국에서의 이름 '민중연극'이 어쩌면 이런 의도를 더 잘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민중'이라는 개념이 정치적 의도를 반영하듯, '억압된 자'는 단순 관객을 넘어서 규제와 검열이 내재화되어 이에 저항이 어려운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이렇게 보면 악토도 민중연극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관객과 같은 눈높이에서 활동을 유도하는 아우구스또 보알의 모습입니다.

(출처: https://www.culturematters.org.uk/index.php/arts/theatre/item/2455-the-theatre-of-the-oppressed)


이렇듯 관중=억압된 자=민중이라는 개념이 떠오르게 된 배경에는 브라질의 정치적 상황이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브라질은 심각한 빈부격차 문제로 서민의 고통이 극에 달해 있었고, 60년대에는 군부 쿠데타로 극강의 탄압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엄격한 검열 속에서 예술의 자유는 사라졌고, 보알도 이 시기 동안 정치적 망명을 다녀야 했습니다. 보알이 체계화한 민중연극은 이렇듯 브라질 내에서 불가했던 연구를 망명 시기에 구체화하고 실현한 것입니다. 브라질은 1985년에 와서야 민간정부를 세우고 3년 뒤 새 헌법을 만들게 되었는데, 독재의 잔재를 없애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검열을 피하고자 만든 보알의 다양한 연극적 시도들이 오랜 기간 유용했을 것 같습니다.

 



스펙트-액터: 관(觀俳優)


사회 변혁하면 브레히트를 빼놓을 수 없죠. 민중연극 역시 브레히트에게 큰 영향을 받았기에 서사극과 민중연극 사이에는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서사극이 지적, 이성적 영역에서 관객을 능동화하려고 했다면 보알은 이들을 신체적으로 활성화시키려고 한 것이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민중연극의 활동 중심적 특징을 반영한 개념은 영어로 관객을 말하는 스펙테이터(spectator)를 변형한 스펙트-액터(spect-actor)입니다. '보다'는 뜻의 스펙트(spect)와 '배우'라는 뜻의 액터(actor)가 합쳐진 단어죠. 스펙트-액터는 억압의 현장을 관찰한 후 직접 그 상황에 참여하여 다양한 해결 방법을 시도해보게 됩니다. 


민중연극은 그림에서와 같이 관객에게 조명을 비춰줍니다.

(출처: https://www.rs21.org.uk/2019/07/05/revolutionary-reflections-theatre-of-the-oppressed-as-a-political-method/)


보알은 현실이 고정적이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그중 몇 가지 대표적 형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토론연극(Forum Theatre): 현실의 권력관계가 그대로 적용되어 좌절스러운 결말을 맞는 짧은 극을 올린다. 주인공은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한다. 이후 스펙트-액터는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라 다양한 해결 방법을 시도해본다.

비가시적 연극(Invisible Theatre): 공공장소에서 일상의 일환처럼 제시되지만 사실은 준비된 공연인 경우이다. 관객은 자신이 설계된 상황을 본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특히 검열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공연은 소란스러운 장면을 연출하여 창작팀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대중의 적극적 개입을 유도한다.

이미지 연극(Image Theatre): 트라우마와 같이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고안된 형태이다. 다른 사람들의 몸을 조각하듯 움직여 자신의 내면 문제를 표현하다. 이후 이 이미지들을 변형하고 활성화시켜서 해결 방법을 모색한다.

'머릿속 경찰' 또는 욕망의 무지개('Cop in the head' or Rainbow of Desire): 극의 치유적 요소를 활용한다. 내재화된 억압을 발견하고 분석하여 이에 대응하는 것으로,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이에 반박하기보다는 순응했던 경우를 되짚어본다. 자신을 억압하는 머릿속 목소리를 알아보고 그 원인을 분석한 뒤 다시 해당 장면을 연기하며 억압을 극복하는 시도를 해본다.


이와 같이 민중연극은 연습을 통해 완성도 높은 최종적 작품을 만들어내는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 중심의 연극입니다. 이때 부정확성, 불명확성, 간접성 등은 치유를 향한 중요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영상을 보면서 대략적인 분위기를 살펴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i1HfSiMxCU


영상에 나타난 것과 같이 민중연극은 보는 것 중심의 기존 연극과 달리 객석에 환히 불이 켜진 상태로 소규모로 진행되며, 조커라고 불리는 진행자가 필수적으로 존재합니다. 조커는 바람잡이 역할을 하여 관객의 긴장을 풀고 참여를 유도하기도 하고, 관객의 다양한 시도에서 중요한 점을 짚어주며  토론을 이끌어가기도 합니다.


다시 <팔리는 것들>로 돌아가 봅시다. 극이 짧은 단막극의 형태를 가짐으로써 얻는 효과는 무엇일까요? 시공간적, 금전적 접근성을 높이는 것 이외에도, 명확하게 문제제기를 한 후 이것이 관객들 사이의 토론과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게 하는 효과를 가집니다. 이처럼 아마추어 연극인 위주로 구성된 지역 사회 연극(community theatre)의 과정 중심 극예술 형태는, 작은 변화라도 불러오고자 하는 사회변혁연극과 효과적으로 연결됩니다.




보알의 민중연극에 정말 다양한 종류가 있음을 확인하셨을 텐데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연극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이 활동들은 연극 외의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곤 합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억압된 내용을 안전하게 다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심리치료에 활발히 쓰이고 있고요.

 

가장 암울한 시기에 꽃핀 민중연극과 사회 변혁 연극은 불가능한 현실에 맞설 창구는 언제든 존재한다는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무엇보다 보알과 발데즈 같은 훌륭한 연극인들이 사회 변혁에 앞장서는 모습은 후세대들이 두고두고 힘을 받을 수 있는 유산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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