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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Jun 02. 2022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

북아메리카 원주민과 인식적 말살

‘원주민’이라는 단어의 뜻 생각해보셨나요?
듣자마자 떠오르는 이미지는 선사 시대에서나 존재했을 것 같은, 자연 속에서 원초적 모습으로 살고 있는 '야만인'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어를 잘 살펴보면 ‘원래 거주하고 있었던 사람들’(原住民)이라는 뜻으로, 땅에 새로이 이주해 온 정착민과 구분하는 개념이죠. 즉 다음 사람에게 땅을 넘기고 사라져 간 ‘전주민’(前住民)이 아니라, 해당 땅과 가장 관계가 깊은 주민으로서 계속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원주민이라는 개념은 줄곧 과거의 존재들, 지금은 없거나 정말 이질적인 존재들이 된 것일까요?
 

그 대답을 오늘 포스트에서 따라가 보겠습니다. 내용이 너무 길어져 역사와 정치적 배경을 설명하는 1부와 이를 반영한 예술 작품들을 소개하는 2부로 나누었어요. 두 개가 서로 이어지는 내용이니 함께 보시는 것을 추천하겠습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과 인식적 말살


그동안 60년대에 일어난 다양성 운동이 현대의 연극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았는데요. 워낙 많은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면서 60년대는 인권 운동의 시대라고 불리기도 했죠.

이러한 인권 운동의 정말 중요하지만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부분을 오늘 다뤄보고자 합니다. 바로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연극입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경우 다른 소수자들이 연방 정부와 맺는 관계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어서 그 흔한 다양성 논의에 함께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실상 북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해서 미국은 인식적 말살 정책을 취하는데요. 그 말인즉슨 이들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해버림으로써 세상에 없는 것처럼 지워버리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이들을 보고도 보지 못하는, 그런 무서운 전략입니다. 따라서 다른 소수자 집단들이 연극을 통해 사회적 고정관념과 싸운다면 북아메리카 원주민은 연극을 통해 그 존재를 알리는 것에 집중하는 양상을 띱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은 인종일까?


우선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왜 미국의 다양성과 반인종차별 담론에 속하기 어려운지 알아보겠습니다. 사실 이들은 인종으로 인식되거나 분류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나라가 아닌 부족의 개념으로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있어서 다른 부족은 다른 나라만큼이나 그 운영 방식과 구조에 있어서 차이가 있고, 따라서 연방 정부와 전부 유사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동질감이 발생하는 하나의 인종과는 다른 세계관 속에 존재합니다.


부족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는 절차는 피부색이나 유전자와 같은 외형적 요소가 아닌 역사적 정치적 요소에 기인하는 것으로, 외형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인종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을 인종적으로 파악한다는 명목으로 블러드 퀀텀(blood quantum)이라는 DNA 테스트가 개발되어 적극적으로 사용되고는 있는데요. 실상 이 블러드 퀀텀은 북아메리카 원주민 고유의 DNA라는 인위적 기준을 만들어내어, 일정 매칭률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법적으로 부족민 신분을 박탈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원주민으로 인식되는 인원의 수를 줄이고자 도입된 절차인 것이죠.


블러드 퀀텀이 원주민으로 등록될 수 있는 조건을 제한하는, 보호가 아닌 말살 정책임을 풍자한 이미지입니다. "잠시만, 우리 사라지고 있어!"라고 적혀있습니다.

(출처: https://blogs.oregonstate.edu/inspiration/2016/11/02/blood-quantum-pass-fail-exam-no-questions/)




'현존'에 대한 '인식'이 시급하다


현재 미국에서는 연방 정부 인정부(Office of Federal Acknowledgment)라는 정부 부서에서 북아메리카 원주민 신분의 공식화, 문서화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1978년에 처음 생긴 이 부서는 인정 절차를 위해 7가지 기준을 필수적으로 만족시키도록 요구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부족이 인정받기 위해서라기에는 조건이 상당히 많아 보이는데요. 이 7가지 기준 또한 애매하고 계속 바뀌는 터라, 북아메리카 원주민을 더 빨리 인정해주기보다는 이를 지연시키기 위해 도입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복잡한 절차를 다 거치는 데에는 30년이 넘는 경우도 있고, 부서가 생긴 이후 40년간 356개의 집단이 인정을 요구했으나 269 집단이 공식 서류 제작에 실패했고, 서류를 준비한다고 하여도 최종 인정받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였습니다.


만일 최종적으로 인정된다고 하면 이것은 일종의 지방자치권허락받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주권(통치권, sovereignty)을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연방 정부와 북아메리카 원주민은 관리하고 관리받는 관계가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상생 및 공존하는 관계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연방 정부의 정당한 일원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다른 소수자 집단들과는 정치적 어젠다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https://www.bia.gov/as-ia/ofa

연방 정부 인정부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이제까지 인정 거부된 부족의 수가 인정된 부족의 수보다 훨씬 많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MMIW: 실종 및 살해된 원주민 여성


그렇다면 이제 60, 70년대 다른 인권운동에 힘입어 부상하기 시작한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예술을 살펴볼 차례인데요. 우선 북아메리카 원주민 연극 중 유명한 작품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톰슨 하이웨이, <레즈 시스터즈>(1986) Tomson Highway, The Rez Sisters

모니크 모지카, <포카혼타스 공주와 푸른 점>(1991) Monique Mojica, Princess Pocahontas and the Blue Spots

마리 클레멘츠, <부자연스럽고 우연한 여자들>(2005) Marie Clementz, The Unnatural and Accidental Women


제목만 봐도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지 않나요? 모두 여성을 주제로 하고 있지요. 끊임없이 지워지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존재를 되찾기 위해서는 사라진 여성을 되찾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인권 운동의 중요한 키워드 MMIW와도 상응하는데요. Missing and Murdered Indigenous Women을 줄인 이 말은, 한국어로 하면 "실종 및 살해된 원주민 여성"을 뜻합니다. 대체 원주민 여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MMIW 로고입니다.

(출처: https://auburnexaminer.com/mmiw-have-you-seen-me/)


대부분의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은 모계 사회였습니다. 즉, 자녀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부족 신분을 물려받고, 부족 공동체를 위한 중요한 결정을 여성 일원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계 사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서양 정착민은 원주민 부족을 인정(recognize)하면서 부계 사회 질서를 이들에게 강제로 도입시킵니다. 겉으로는 상생과 공존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서양 사회적 질서에 이들을 동화(assimilate)시켜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려는 의도가 이러한 정책에 담겨 있습니다. 또한 모계 질서를 끊음으로써 원주민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부족 내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장치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의도는 적중하였습니다. 원주민 여성은 법적인 보호를 빼앗기면서 연방 정부에게 1차로, 연방 정부가 부여한 정치적 결정권을 새로이 얻게 된 원주민 남성에게 2차로 약자가 되어 갖은 범죄와 폭력의 대상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현재 추산된 것만 해도 6000명이 넘는 원주민 여성이 실종되거나 살해되었고, 성매매, 성추행 및 성폭행의 피해자 중 원주민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상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추산된 숫자는 600에서 6000에 이를 정도로 일관성이 없는데요. 그만큼 시체를 찾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 추적이 불가능한 사람의 수가 정말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주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범죄들은 정부가 의식적으로 격려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정부 차원의 사과와 시정이 필요한 문제가 됩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거주지인 캐나다와 미국은 적극적으로 원주민 말살정책을 시행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60년대 스쿱(The Sixties Scoop)으로, 아이스크림을 뜰 때 쓰는 도구인 '스쿱'의 이미지로 당시 대대적으로 진행된 원주민 아동의 정부 차원 납치 행위를 표현합니다. 미국과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 아동을 강제로 친부모에게서 분리하여 백인 가정에 입양시키거나 원주민 기숙학교에 입학시켜 백인으로의 정신 개조를 실시하였습니다. 원주민 학생들은 부모와 정부의 보호가 전무한 상태에서 수많은 학대와 범죄의 대상이 되었고, 사상적으로는 원주민 문화에 대한 혐오와 캐나다/미국에 대한 무조건적 애국을 주입받았습니다. 분리된 부모와 자녀는 서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되었고요. 형제자매끼리도 전부 분리하여 다른 지역에 보내져 원주민 가족들은 산산조각 나게 됩니다. 많은 원주민 아이들이 입양 가정이나 학교를 탈출하고 자신의 집에 돌아가려다 실종되고 살해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자 아이들이 남자아이에 비해 압도적으로 더 많이 사라졌고요. 이러한 일들이 자행된 것이 인권 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인 데다 마지막 기숙학교가 문을 닫은 것이 90년대이니, 이 문제는 충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인 가정에게는 60년대 스쿱이 아이에 대한 구원이라고 광고하여 입양 신청을 얻어냈습니다. "당신의 손에서 이제 안전합니다!"와 "불모지에서 이곳으로..."라고 적혀 있습니다.

(출처: https://activehistory.ca/2017/10/selling-the-sixties-scoop-saskatchewans-adopt-indian-and-metis-project/)


원주민 기숙학교 사진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상당히 통제적인 분위기에서 활동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American_Indian_boarding_schools)




정말 끔찍하고 심정적으로 힘든 역사입니다. 저는 이 부분 수업 준비를 하면서 전날 밤 잠을 잘 수가 없었는데요. 수업을 하면서도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수업에 몰두하기가 어려웠어요. 직접 자료를 찾아보고 마주하는 역사의 생생함이 감정과 신체를 압도했던 것 같습니다. 이 아픈 역사를 함께 들어주고 어려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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