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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Jun 03. 2022

모카신과 레드카펫

북아메리카 원주민 예술 2: 원주민의 눈으로 보는 세상

지난주 2022년 칸 영화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송강호 배우와 박찬욱 감독의 수상으로 기쁨을 가져다준 행사였죠.

하지만 북아메리카 원주민 차별 문제도 대두되었었는데요. 원주민 연출가 켈빈 레드버스(Kelvin Redvers)가 전통 신발인 모카신을 신은 상태로 레드카펫 입장을 거부당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원주민 문화에 대한 무지로도, 또 원주민 문화를 공식 석상에 비추지 않으려는 정치적 사건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데요. 뭐가 됐든 명백한 차별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P0Lli4bNi0

모카신을 신어 경호원에게 저지당하는 켈빈 레드버스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지난 포스트에 이어 모카신과 같은 원주민 예술의 중요한 모티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vs. 캐나다


원주민 예술활동을 소개하기 이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원주민 문제를 대하는 미국과 캐나다의 차이인데요. 두 나라 모두 현재 원주민에 대한 적극적 학살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나마 캐나다가 원주민 학살의 역사에 대해 더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방법을 택하여 최근에서야 원주민 학살 문제의 구체적 실상들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아직도 만연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 역사를 부정하거나 침묵하고 있어 그 실상이 한참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예술 영역에서도 캐나다가 훨씬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번 포스트에서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원주민 작품을 위주로 소개하겠습니다.




MMIW를 알리는 작품들


지난 포스트에서 설명한 60년대 스쿱과 원주민 기숙학교의 실상은 실화를 재구성한 팟캐스트 <클리오를 찾아서>(Finding Cleo) 시리즈가 상세히 고발합니다. 실종된 클리오라는 여자 아이를 사진과 이름만으로 찾아 나서는 수사물 형식을 취하는 이 팟캐스트는 캐나다 CBC 공영방송에서 지원하여 만들어진 것인데요. 원주민 리포터인 코니 워커가 직접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맞닥뜨리는 원주민 아이 학대와 60년대 납치의 현장, 기숙학교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클리오를 찾기가 보통 어렵지 않지만, 기적적으로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면서 청자는 조금씩 진실에 다가가게 됩니다. 마지막에 워커는 클리오의 것으로 추정되는 묘지를 발견하는데요. 수사를 통해 정황상의 이야기가 완결되자 클리오의 가족은 크게 감사합니다. 실상 이 정도조차 추적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클리오를 찾아서> 팟캐스트는 스포티파이에서 간편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open.spotify.com/show/6wHbN5SILS76LPZOlbad5F


<클리오를 찾아서>는 훌륭한 팟캐스트이지만 관객이 찾아가지 않으면 맞닥뜨리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죠. 관객을 찾아가 MMIW를 알리는 형태의 예술도 존재합니다. The REDress Project라는 프로젝트가 그중 하나인데요. 이 제목은 빨간 원피스 프로젝트로도, 바로잡기 프로젝트로도 해석 가능한 중의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설치형 미술인 REDress Project는 강렬한 빨간색의 원피스를 일상 공간에 걸어서 휑한 원피스 속 부재하는 원주민 여성의 신체를 표현합니다. 준비가 간단하고 일반인으로부터 원피스 기부를 받는다는 관객 참여의 의미도 있어서 다양한 곳에서 여러 번 진행된 프로젝트입니다.


<The REDress Project> 중 하나입니다. 강렬한 빨간색이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출처: https://www.merrittherald.com/merritt-observes-redress-project/)


조금 더 적극적인 관객 참여형 예술로는 자매들과 걷기(Walking With Our Sisters)라는 제목의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 신발인 모카신의 윗창 장식(뱀프, vamp)을 시민들로부터 기증받아 전시하는 것인데요. 제목이 ‘걷기’인 만큼 이 장식천들이 바닥에 가지런히 배치되어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원래는 모카신에 붙여야 신발이 완성되지만, 일부러 장식 천만 둠으로써 완성되지 않은 실종 여성들의 삶을 기리고, 그 여정이 계속될 것을, 그리고 우리가 그 계속되는 여정에 함께할 것을 약속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자매들과 걷기> 프로젝트는 매번 다른 형태로 뱀프를 배치하여 길의 형태를 다양하게 연출합니다.

(출처: https://www.alaskahighwaynews.ca/regional-news/taylor/walking-with-our-sisters-a-poignant-ceremony-for-the-missing-and-murdered-3500837)




원주민이 만드는 원주민 내러티브


원주민 예술은 MMIW 이외에 다른 중요한 문제들도 다룹니다. 그중 크게 두 가지를 소개할게요. 하나는 <화난 이누이트>(Angry Inuk)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인데요. 이 영화는 물개 사냥을 소재로 하여 어떻게 단순한 하나의 내러티브가 이누이트에 대한 인식적 학살을 효과적으로 이뤄내는지, 그리고 그게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설명합니다. 물개 사냥이라고 하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기 쉽죠. 현대의 다양한 동물 보호 단체들도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절대적 진리와 도덕에 호소하여 활동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 한 편은 생명에 있어서도 도덕적 옳고 그름이 쉽게 판가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4tfmdv5Z7w


다큐멘터리는 동물 보호 단체들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실제와 무관한 멸종 위기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추적해 입증합니다. 또한 있지도 않은 멸종에 대한 대책으로 생겨난 다양한 물개 보호 정책들이 실제로 이누이트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는데요. 동물 보호 단체들도 그러한 사실을 알지만, 이를 이미 잘 해결되었다고 공표하여 대중으로부터 이누이트 문제를 외면 내지는 물개 보호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냅니다. 외면도 물개 보호도 이누이트를 마치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존재로 못 박아 인식적, 실질적으로 말살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켄트 몽크만과 미스 치프 이글 테스티클


마지막으로 소개할 원주민 예술은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크리 예술가 켄트 몽크만(Kent Monkman)의 작품들입니다. 몽크만은 주로 백인 정착민들의 풍경화를 모티브로 이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는데요. 정착민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을 빈 땅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존재만을 그렸다면, 몽크만은 이 풍경에 원주민의 존재를 더하고 정착민과의 관계 또한 그려냅니다. 이러한 작업은 과거를 교정함으로써 현재에도 원주민의 존재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합니다. 몽크만의 대표작으로는 <여대장의 젖은 꿈>(Miss Chief’s Wet Dream)과 <목선의 원주민들>(Wooden Boat People) 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원주민 예술의 주요 모티브를 많이 살펴볼 수 있는 <아빠들>(The Daddies)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켄트 몽크만의 <아빠들>입니다.

(출처: http://www.firstnationsdrum.com/2020/08/moa-presents-kent-monkmans-exhibition-on-canadas-colonial-legacy-shame-and-prejudice-a-story-of-resilience/)


<아빠들>은 렉스 우즈(Rex Woods)의 원작 <(캐나다) 연방의 아버지들>(The Fathers of Confederation)을 재해석한 작품인데요. 캔버스 중앙에 놓여있던 빈 발받침에 원주민을 더하여 원작의 의미를 완전히 뒤집은 사례입니다. 그림에서 원주민은 등을 돌려 앉아 “아버지들”의 시선을 되돌려주고 있는데요. 이는 캐나다 연방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지워졌던 원주민의 존재를 되새기고, 지워진 원주민들 또한 수동적으로 당하기보다는 이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마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럼 이 작품에 나타난 주요 모티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원작인 <연방의 아버지들>입니다. <아빠들>과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른지 비교해보세요.

(출처: https://www.ourcommons.ca/About/HistoryArtsArchitecture/fine_arts/historical/609-e.htm)


가운데에 앉아 있는 존재는 미스 치프 이글 테스티클(Miss Chief Eagle Testicle)이라는 이름의 켄트 몽크만의 예술적 자아입니다. 미스 치프는 여러 원주민 설화에 등장하는 초자연적 존재인 '장난꾼'(trickster)인데요. 장난꾼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그때그때 모습을 바꾸고,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등 예측할 수가 없는 캐릭터입니다. 그는 이야기의 진행을 도와주기도 방해하기도 하지요. 몽크만의 작품에서 미스 치프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작품에 등장합니다. 이러한 미스 치프의 개입은 과거도 현재도 누구의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 항상 재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미스 치프는 또한 투 스피릿(Two-Spirit)이기도 합니다. 직역하면 두 개의 영혼을 가진 자인데요. 이는 원주민들 중 남자와 여자의 영혼이 공존하는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단순히 성 소수자를 지칭하기보다는 성 소수자 중에서도 특별한 영혼의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 그래서 부족의 현자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투 스피릿이라고 합니다. 몽크만의 예술적 초자아가 여성인 점, 그리고 이 ‘여성’이 남성의 가슴을 가지고 있다는 것, 성기는 천에 가려 보이지 않도록 하고, 항상 빨간 밑창의 르부탱 하이힐을 신는다는 요소들이 미스 치프가 투 스피릿임을 반영합니다.


<아빠들>에서 미스 치프는 알록달록한 천 위에 앉아있습니다. 원작에서는 칙칙한 색이었던 이 담요는 색이 새로 입혀지면서 관객의 시선을 끕니다. 담요는 원주민 대학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종종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하곤 하는데요. 일명 천연두 담요 (smallpox in the blankets)라고 하여, 정착민들이 원주민에게 감사의 의미로 선물한 담요가 천연두를 담고 있어 엄청난 수의 원주민이 사망하게 된 역사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감염이 의도적이었다는 충분한 정황 증거가 존재하지만 정착민의 인정 거부로 공식화되지 않고 있는 역사입니다.




원주민 인권 운동과 예술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오래 거주한 역사에서 나오는 성숙한 주권 의식을 반영합니다. 미국의 다양성 세계관에 휘둘리지 않고 연방 정부와 상생이라는 어젠다를 발전시켜나가며, 근시안적으로 변질되기 쉬운 다양성 담론의 시야를 혁신적으로 넓히는 역할을 합니다. 원주민 인권과 예술에 대해 한 명이라도 더 알고 힘을 보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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