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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박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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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Jun 19. 2022

한국이 일제강점기를 기억하는 이유가 최근이라서라고?

미국에서 마주친 동북공정

유학생활 중 마주한 이런저런 일상의 단상들에 대해 가볍게 일기처럼 적어보고자 매거진을 새로 만들었다. 마음만큼 가볍게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방학을 맞은 지금 수업 내용 이외에 관심 있는 내용들을 올려보고자 한다.




어느 날 한 중국인 박사생이 내게 자기 나라의 역사에 대해 사과했다.

그녀의 사과는 중국의 지식인으로서 가지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중국의 한국 식민지배 역사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여러 가지로 참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우선, 무슨 식민지배 역사? 그리고 왜 나에게 사과를?


나중에 다른 중국인 박사생들에게 물어봤을 때 그들도 어이없어하며 식민지배가 아니라 '선물'을 빌미로 한 강대국으로서의 세력 과시가 있었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긴 했다. 그래서 그냥 해프닝으로 생각하고 넘겼는데, 이후 비슷한 일을 또 겪으면서 이게 가벼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박사과정 1년 차 때의 일이다. 학문적으로 방황하면서 여러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었다. 내가 한국의 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니, 교수님이


한국이 일제강점기에 유독 강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이유는 최근이기 때문이 아니니? 그 부분을 좀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구나.


라고 하셨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아예 이 말의 의도조차 이해하지 못한 나는 교수님께 무슨 말씀인지 더 여쭈어 보았고, 교수님은 "한국이 중국의 식민지 시절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일본보다 오래된 과거라서 그런 것이니, 두 식민의 양상을 함께 보면서 이해하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 같다"라고 하셨다.


솔직히 말해서 이 말이 여느 백인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흔한 서양의 무지로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교수님은 내가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이었고, 심지어 새로 부임한 젊은 교수님이자 노스웨스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유대인 교수님이셨다. 그나마 한 가지 고려할 사항은 이 분이 일본 공연을 전공하였기 때문에 아마도 일본의 입장에서 쓰인 동아시아 역사를 접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 말에 상당히 놀란 나는 좀 더 더듬이를 세우고 동아시아 식민 역사에 대해 현재 미국 학계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관찰했다. 충격적이게도 나는 한국이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유사한 형태의 식민 시절을 거쳤다는 의견이 공통된 지식으로 꽤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물론 압도적으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은 학계의 동향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미국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죄책감도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서 미국이 반성해야 할 역사의 일부분이었고, 이 생각은 일본 쪽에서도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피해국으로 PR 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일례로 일본의 '부토'라는 춤은 세계대전 패전과 원자폭탄의 충격으로 인한 인간 삶의 회의를 드러내는 그로테스크한 춤인데, 서양에서는 아주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 춤이 나타내는 근본적인 피해자적 표현 때문에 한국에서는 공연되지 않는다.


학계의 꾸준한 유행인 후기식민주의, 탈식민주의 등의 담론도 일본의 식민 역사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잠잠하다. 최근 떠오르는 K-pop은 "새로운 일본"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 서양에서 일본이 가지는 문화적 영향력은 뿌리 깊고 오래되었으며, 열렬한 일본 옹호자는 차고 넘친다. 이에 따라 아직도 학계에서는 일본을 피해자/가해자 사이에서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마음을 못 정한 분위기다.


그리고 이 틈을 타 중국의 동북공정이 이루어다. 이것이 중국으로 인해 시작되었든 어찌 되었든, 중국이 한국을 식민 지배했다, 특히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다-라는 개념은,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한 서양 학자들에게도 몇몇 젊은 중국 지식인들에게도 이미 기정 사실화된 모양이다. 심지어 이 배운 젊은이들이 어떠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갈 정도로. 그래서 한국인을 보자마자 밑도 끝도 없이 사과부터 할 정도로.


물론 학계는 넓고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든 나올 수 있고 이미 나왔기도 하지만, 내 생각보다 동북공정의 영향력이 크단 것을 피부로 느낀 일이었다. 본격적으로 역사학 쪽으로 살펴본다면 또 다른 양상이 보이겠지만, 어떠한 일반 지식/공통 지식으로 존재하는 한국은 '그저 일제강점기가 최근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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