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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Sep 30. 2023

별과 우주와 사막과 예술

대학원 수업 도중 교수님이 예술이 무엇이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제게 유일하게 이해가 가는 것이에요(It's the only thing that makes sense to me)"라고 했는데 그에 깊이 공감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때 '예술을 믿는 사람(believes in arts)'이라는 말이 곧장 떠오르곤 하는데 '믿는다'라는 표현이 종교적인 것이라기에 예술도 종교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예술에게 종교는 한 번도 상충되는 에너지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종교를 하나의 일관된 세계관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치면 과학도 자연스러운 현대의 세계관이고 종교가 된다. 예술은 다양한 세계관을 각자의 언어에 맞게 표현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또 상응하는 것이기에, 예술을 통해 내 세계를 열심히 구축하고 그것을 나누고 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독실한 종교인의 모습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종교라기 예술은 공동체성이 상당히 약하다. 우리 과 교수님들을 모아놓으면 모두 뾰족뾰족한 자아들이라서 그 에너지들이 부딪히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흥미롭다. 절대로 융합되지 않는 그 에너지의 만남은 어느 학교를 가든 예술계에 가면 똑같이 나타난다고 한다. 팀으로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예술인데 어쩌면 이렇게 하나가 되기 힘든지. 박사생들도 마찬가지다. 매년 한두 명만 뽑는 작은 프로그램이기에, 그리고 동아시아 출신 외국인이 많기에 각자 외로움을 가득 쌓아두고도 절대 공동체는 못 된다. 희한하게도 그 기저에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깔려있어 만날 때마다 애틋함 뿐인데도 우리는 절대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다. 그저 각자의 강렬한 세계를 끌어안고 그것을 적당히 나누면서 기뻐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큰 위로를 받다. 연구하다 보니 글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해서 손수현 배우의 <쓸데없는 짓이 어디 있나요>와 소리꾼 이자람의 <오늘도 자람>을 사두고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책장에 꽂힌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와 빼 읽고는 전에 없던 위로를 받았다. 그 안에 담긴 깊은 고독, 삶에 대한 치열한 감각적 사유, 그리고 이상 갈구와 현실 수용 사이의 끊임없는 줄다리기가,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연결감을 주었다. 이자람님은 "다른 이들은 이런 순간을 어떻게 버티는지 늘 궁금하다"(25)라고 적었는데 궁금할지언정 타인에게 물어보기보다는 먼저 자신을 공유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고등학생 때, 우연한 기회로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에 가게 되었었다. 집도 절도, 심지어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밤하늘인지도 모를 정도로 촘촘히 박혀 내게로 쏟아지던 그 강렬한 별빛은 두고두고 내 가슴에 남았다. 몇 해 전 친구가 준 편지에는 "가슴속에 별을 간직한 사람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대. 너의 가슴속 열정과 열망과 노력들이 등불이 되어 너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있을 거야"라는 말이 담겨있었다. 신형주의 <별>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었는데 그 긴 편지에서 이 부분이 가슴에 콕 박혔다. 별을 이야기한 노래들은 유독 마음을 울렸고, 아직도 매번 새롭게 들리는 노리플라이의 '별'에서 "쏟아지는 별"의 멜로디를 들을 때면 내 가장 깊숙한 내면이 건드려졌다.


지금처럼 밤이 환하거나 사방이 막히지 않았던 시절, 사학과였던 어머니는 멀리 답사를 갔다가 문득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고 한다. 그건 별이 '예뻐서' 보다는 그 순간 직관적으로 느낀 우주와 나의 연결 때문이었다고 한다.


얼마 전 그리스에서 온 친구에게 캘리포니아 바다를 보여주었는데 그 친구가 수평선을 보아 정말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수평선은 그에게 가능성, 무한함, 미래 등을 의미한다고 했는데 그는 자아가 우주와 연결된 그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마침 나는 제주도에서 인터뷰했던 한국무용수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었는데, 그 무용수도 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제주 이주민인데도 이제는 육지에 가면 답답해서 빨리 제주에 오고 싶다고. 작고 낮은 제주에선 어디서든 수평선이 보이는데 육지에 가면 사방이 막혀있어 갑갑하다고.


생각해 보면 핀란드 교환학생 시절에도 난 오로라보다 오버나이트 페리를 타고 아무도 없는 갑판에 나가 망망대해의 밤바다를 보는 것이 훨씬 좋았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깊은 바다의 검은 파도를 보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곤 했다.


캘리포니아는 원래 사막 지대라 사막을 느낄 수 있는 국립공원들이 많은데, 그 사막에서는 밤에 환각 버섯을 섭취하는 것이 유행이다. 환각 버섯은 마약으로 분류돼 사용이 금지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암암리에 구해서 이용한다. 사실 환각 버섯은 물아일체의 경지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하여 다른 마약들과는 조금 다르게 인식되는 부분이 있다(참고로 서부 사막에서 펼쳐지는 Burning Man이라는 행사도 사막이 가능케 하는 영혼과 우주의 연결성을 기반으로 한다). 현대 문명과 인간들과의 부대낌은 우주와의 연결에 집중할 수 없게 해서 환각 버섯이란 매개체를 필요케 했지만, 천지사방으로 뻥 뚫린 정말 고요한 사막에서는 환각 버섯 없이 그 공기의 질감을 느껴봐야 하지 않을까?




어린 시절, 일기를 쓰는 것은 늘 부담이자 숙제로 다가왔는데, 있었던 일을 손가락이 부러져라 아무리 세세하게 써도 내가 진정 묘사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안 담긴다는 찝찝한 기분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기란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상담을 받으면서 여러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감정일기를 써보는 것을 추천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외부에서 일어난 일보다는 내 내면에 일어난 일을 위주로 적어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뻔한 얘기만 쓰게 되어 쓸데없는 것 같이 느껴졌는데 몇 번 쓰다 보니 가만히 앉아 생각할 땐 나오지 않던 답들이 글을 쓰면 술술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미 아는 것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씀으로써 나를 알게 된다는 점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내 마음을 따라가는 것이 내 속에 담긴 우주에 닿을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배웠고, 평생 이해하지 못했던 시라는 것도 이젠 조금 더 알 것 같아졌다.


글이란 그 형식이 잡혀버리는 순간 생생함을 잃는 것 같다고 느낀다. 브런치에 교육적 글을 담은 지도 꽤 되었다. 자꾸만 형식이 잡혀버리면서 내 마음이 닿지 않는 글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조금 덜 마음을 다하면 어떻겠냐마는 브런치야말로 수익성이나 타의 없이 내게 가장 와닿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해서 내 일기의 한 조각을 올려 본다. 일기도 내 말투와 에너지가 담긴 지루한 형식이지만 조금은 더 내 마음에 충실하지 않을까 싶다.  


취업 자료도 마무리되고 논문도 박사과정도 마무리되어 가는 요즘, 이제 연구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으니 문득 두려움이 다가온다. 이게 다인가 싶은 마음과 금방 매너리즘에 빠져버릴 것 같은 느낌. 그래봤자 보잘것없는 작은 일 하나 하는 거란 걸 알면서도 자꾸만 마음을 다하게 되고 그에 따라 기대도 커지는 것에 대한 경계.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점점 지쳐가는 마음과 동력, 체력의 한계. 굳이 매번 진심이지 않아도 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내가 소진된다는 것을 알기에 회의감과 좌절감에 빠져 있다가도, 내 안의 우주와 밖의 우주가 닿았을 때의 희열을 기억하면 포기가 안 된다. 기독교인 친구는 탐심이라는 언어로 표현했는데 끊임없는 자극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은 욕심쟁이인 것 같다. 영화 <라라랜드>에서는 화가, 시인, 연극쟁이들의 광적인 에너지가 세상에 아주 작은 돌을 던져 새로운 색을 열어준다고 한다(A bit of madness is key/ To give us new colors to see/ Who knows where it will lead us?/ And that's why they need us. / So bring on the rebels/ The ripples from pebbles/ The painters, and poets, and plays). 그 믿음으로 계속 불나방처럼 자신을 불태우는 게 예술가 아닌가 싶다.


굳이 예술계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종종 마음에 별을 품은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다른 예술가들로부터 위로를 받은 만큼 그들을 잘 알아보고 함께 별을 나눠볼 수 있기를 바라며 잔잔한 하루에서 만족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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