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근처 일본 라멘집이 코로나로 인해 운영의 어려움을 겪다가 문을 닫은 자리에 훠궈 집이 새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쁘지 않은 음식점이었는데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바로 옆에 있는 "Gogi(고기)"라는, 한국인은 가지 않는 한식집의 건재를 보며, 캘리포니아 남가주에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다양성과 정체성의 연극이 음식 산업에 집약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Gogi'는 University Town Center라는 학교 근처 번화가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Build Your Own(내 거 만들기), 즉 고객이 각자 원하는 조합을 요청하는 음식점 형태를 통해 미국 다양성 담론의 특징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우선 제가 그동안 관찰한 캘리포니아 한식의 이모저모를 나열해 보겠습니다.
- "한식"이라고 하면 이곳 사람들은 코리안 바베큐를 가장 많이 떠올린다. 코리안 바베큐는 '올유캔잇(all-you-can-eat)'이라는 형태를 차용한 고기구이집인데, 뷔페식으로 일정 금액을 내면 온갖 종류의 고기 중 마음대로 선택해서 제공받을 수 있다.
- 유명한 한식 셰프로는 로이 초이(Roy Choi)가 있는데,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그는 한식과 타코를 혼합한 퓨전 음식을 제공하는 Kogi('고기'에서 왔지만 이곳 사람들은 '코지'라고 읽는다)라는 푸드트럭으로 유명하다.
- 지난번 공연을 보러 갔던 게펜 극장(Geffen Playhouse) 근방에서 압도적으로 평이 좋은 음식점은 Gogobop(고고밥)이라는 한식집이었는데, 한식과 멕시코식을 혼합하면서도 한식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내세우는 집이었다. 서브웨이가 하듯이, 눈앞에 펼쳐진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정해진 수만큼 즉석에서 선택하면 용기 하나에 모두 담아 소스를 뿌려 비벼 먹는 형태로 운영된다.
소개해드린 사례에서 무언가 공통점이 느껴지셨을까요?
지금 소개한 음식점들은 모두 하나에 대한 장인정신보다는 다양한 선택지의 제공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선택된 요소들을 한데 모아 섞어먹는 방법을 택합니다.
앞서 언급한 'Gogi(고기)'라는 집의 메뉴판을 잠깐 보실게요.
(출처: https://www.californiagogi.com/irvinemenu)
정해진 메뉴도 제공하긴 하지만, Choose(선택하세요)라는 단어의 강조와 반복 등장을 보면 고객 각자가 원하는 고기, 밥, 반찬의 종류를 선택해 조합해 내는 것이 Gogi의 마케팅 포인트임을 알 수 있습니다.
Gogi가 도시락처럼 한 식판에 음식을 따로따로 담는 형태를 지닌다면, Gogobop처럼 한 그릇에 모두 섞어먹는 형태의 음식은 어떻게 일관성이나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요? 그만큼 인기가 있을 때에는 무언가 기억에 남는 특징이 있어야 할 테니까요.
그 비법은 소스에 있었습니다. 한식으로는 잡채, 숙주나물 등의 메뉴가, 멕시코식으로는 아보카도, 옥수수 등의 메뉴를 준비해 놓고, 그 모든 것을 한 그릇에 합치면 소스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매운 소스를 뿌려달라고 했더니 고추장 맛을 담은 소스를 뿌려주었고, 소스의 자극적인 맛이 각각 간이 되어 있는 메뉴의 맛을 뒤덮으며 하나의 정체성을 부여했습니다.
이런저런 재료들을 양껏 담아주고 위에 고추장 소스를 뿌려준 고고밥 메뉴 모습입니다.
한식과 멕시코식의 조합, 그에 따라 더욱 넓어진 선택지, 그리고 각각 따로 조리해 둔 메뉴들을 그때그때 모아 더 큰 자극으로 덮어 융합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미국에서 이야기하고 추구하는 다양성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과거 미국에서 평등을 추구한답시고 백인 위주의 사회에 다른 사회 구성원들을 동화(assimilate)시키는 정책을 취해, 멜팅 팟(melting pot, 용광로)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비난받았었죠. 이에 대한 대책으로 요즘 유행하는 다양성 담론은 각 개인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회의 언어가 그들에 맞춰 다양화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요. 다양한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화의 색채로부터 창의성과 새로운 에너지를 기대합니다.
여러 물체를 본래의 문맥에서 분리하여 이질적인 것을 병치한다는 사실만으로 인식의 전환, 창의성, 새로움을 기대한다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파스티셰를, 그럼에도 이를 하나로 어우르려는 소스의 존재는 모더니즘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음식점이 자신만의 맛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각 고객의 니즈에 맞춰 음식을 제공한다는 개념, 여러 재료를 하나로 녹여내는(melt)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변형 없이 제공된다는 점, 또 선택지의 수가 많을수록 이상적으로 보인다는 점이 지금의 다양성 담론과 발맞추고 있습니다.
사실 음식점 메뉴의 값에는 전문가가 고심하여 선택한 재료의 조합과 그 재료들을 하나로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기술에 대한 금액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이런 형태의 음식점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었는데요. 훠궈집의 론칭 광고를 보면서 문득, Gogi와 Gogobop이 내세우는 Build Your Own, '내 거 만들기'가 미국에 실질적으로 엄청난 어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멘집 자리에 새로 들어온 훠궈집의 광고판입니다. 넣을 재료와 육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고 있습니다.
훠궈집이 들어오는 위치는 학교 근처의 유일한 번화가인데요. 문득 둘러보니 이곳에 오랜 기간 버티고 선 음식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내 거 만들기' 형태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훠궈(중국식), 포케(하와이식), 부리또(멕시코식), 피자(이탈리아식), 아사히 보울(브라질식), 케밥(중동식) 등의 집인데요. 한 가지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욕구도 볼 수 있고, 이 모든 음식점이 '내 거 만들기' 형태로 인기를 얻었다는 점도 눈여겨보게 됩니다.
Gogi 옆 포케 집입니다. 벽에 크게 그려진 음식 설명을 보면, 탄수화물/샐러드, 단백질, 토핑을 마음껏 선택하여 조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대학교 캠퍼스 근처기 때문에 더욱 이런 음식점이 각광받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간편하고 빠르면서 적당한 맛의 보장과, 푸짐한 양 대비 압도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에너지 소모가 많고 금전적으로 넉넉지 않은 대학생들에게 맞춤형의 음식 서비스이니까요. 하나하나에 대한 장인정신은 없을지라도, 모두 펼쳐놓고 내키는 대로 조합할 수 있다는 무궁무진한 비빔의 가능성도 제한된 환경에서의 작은 재미를 부여합니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다양성 담론이 좋은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가 이것을 고정적 진리가 아닌 담론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그만큼 다양성에 있어서는 옳고 그름을 가리기가 어렵고, 따라서 어떠한 방식을 선택하든 맹점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엘에이에 대한 애착을 가득 담아 만든 영화 <라라랜드>에는 엘에이의 정체성이 역사를 존중하지 않고 아무거나 다 섞어버리는 것이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장인정신이 내포하는 오랜 기간의 훈련이나 지혜, 기술의 전수 없이, 각 음식의 역사적 맥락을 지운 채 소스를 통해 '범벅'하는 형식은, 각 메뉴의 뾰족하고 섬세한 그 특유의 맛이나 향을 지양합니다. 적당히 무난한 맛으로 최종 합의되는 것이지요. 미국에서 크게 유행 중인 하와이식 포케 또한 즉석 조합 식품으로 인기를 끌지만, 하와이 출신 친구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양념에 오래 재워두고 조리 과정을 거쳐 제공되는, 특색 있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내 입맛에 맞으면 된다는 개인적 특성의 강화를 추구하는 동안,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의 틀에서 벗어나 외부의 세계관에, 그 언어에 맞추어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는 과정은 존중되기 어렵습니다. 소통이나 이해의 노력보다는 오로지 내 세계에 충실한 것이 지금의 다양성의 모습인 것이지요.
여러 재료를 합쳐서 그냥 먹는 패스트푸드, 그를 대표하는 샌드위치나 햄버거, 그리고 그 형태로 변형되어 수입된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들. 어쩌면 동화를 지양하는 과정에서 더 큰 틀의 미국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제히 패스트푸드로 재탄생하며 미국적인 정체성을 얻고 있지요. 어느 순간 세계화를 의식하면서 한국의 대표 음식으로 마케팅된 비빔밥도 적당히 조합하기 좋다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 문화가 미국으로 오면서 미국화되고 미국의 정체성을 얻으며 재탄생한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다양성 담론이 종종 전 세계적으로 적용 가능한 보편적 원리로 착각되곤 한다는 점이 현재 담론에 대한 맹목적 추구를 경계하게 합니다. 미국적 맥락에서의 다양성이라는 전제를 두고 그 미국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내 거 만들기' 형태의 식당이 가진 압도적 가격 경쟁력과 맛 경쟁력 때문에 꽤나 자주 이용합니다. 실제로 역사가 깊지 않고 고유의 문화도 없는 미국에 오래 있다 보니, 그 어느 문화적 영역에서도 섬세함, 예민함, 깊이 같은 것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존재에서 오는 문화적 스펙트럼을 얕게나마 경험하는 것이, 그리고 그들의 마구잡이식 조합이, 유일하게 신선함과 재미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영역입니다. 그것이 미국이 가진 아주 특별한 강점임을 느끼기도 합니다. 지금의 다양성 담론에 한계를 느끼면서도 달리 더 나은 방향성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