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한 현대극의 시작
'현대극'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현대무용'이라고 하면 난해한 팔다리의 움직임이 먼저 떠오르듯이, 현대극도 따뜻하고 정겨운 이미지보다는 어쩐지 차갑고 친근하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무엇 때문에 '현대적인 것'이 이렇듯 거리감이 느껴지는 예술을 상징하게 되었을까요?
이번 시간에는 현대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두 가지 사조인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알아보겠습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양한 예술 형태를 아우르는 통칭적 용어이며, 20세기 이후의 작품에 적용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모더니즘은 사실주의에 반대되는 모든 표현 방식을 일컫는데요. 20세기 이전까지 종교적 또는 철학적 이유에서 하나의 관점만이 절대적으로 여겨졌다면 20세기 이후부터는 상대적 관점이 부상하면서 특정 관점의 절대성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주의도 모더니즘에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지난 포스트에서 살펴보았듯 사실주의는 다윈과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상대적 관점의 도입이라는 철학적 전환을 이루어내었기 때문이에요. 이렇듯 모더니즘이라는 것은 아주 넓고 불분명한 개념입니다.
모더니즘의 전반적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제가 되는 대상 자체보다 예술적 표현 요소들에 관심
정확도보다는 각 표현 요소의 효과적 사용이 중요
다양한 표현 방식이나 사조들 중 주제에 맞는 것으로 자유롭게 선택 가능
전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표현하느냐보다는 이에 더해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야기를 전달할 때 과감한 생략이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주관적인 인식을 극대화해서 표현하는 것이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형태를 재생산하는 것보다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이죠. 피카소의 그림은 모더니즘이 가지는 다양한 관점의 인정과 과감한 생략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artuk.org/discover/artworks/weeping-woman-femme-en-pleurs-201236)
그렇다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떻게 다를까요? 포스트(후기)라는 접두사에서 알 수 있듯 모더니즘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도 사실 모더니즘에 포함되는 하위 장르이긴 한데요. 포스트모더니즘만이 가지는 특징이 강하기 때문에 두 사조를 비교하면서 이해해봅시다.
우선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살펴봅시다.
장르의 구분이 불명확
의미보다는 경험이 중요
열린 해석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술 장르의 구분을 없애고 파괴하고자 합니다. 미술, 음악, 연극, 무용, 문학 등의 표현방식들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죠. 실생활 예시를 들자면 전통 가옥에서 햄버거를 파는 것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이렇듯 서로 다른 것을 섞어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기보다는 이들을 원형 그대로 함께 배치하고 낯섦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따라서 작가들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고전적인 것들을 활용합니다.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moma.org/explore/inside_out/2013/11/01/lettering-magritte/)
이러한 파스티셰(pastiche)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기법입니다. 모방된 여러 스타일이 혼재되어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인 파스티셰는 패러디와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혼재와 혼종의 상태를 말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상을 원래의 문맥에서 뜯어내어 새로운 환경에 배치하는 것이 특징이며 대상이 가진 '원래의 문맥' 또한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의 결과라고 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해할 것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작가의 의미나 의도를 제시하는 것이 관객의 경험을 제한할 수 있고, 어떤 해석이나 경험도 모두 유의미하다고 보기 때문에 다른 사조들보다 유독 난해하며 불친절합니다. 관객 또한 하나의 이질적인 매체이고 이들이 자신의 관점과 경험을 가지고 작품을 만날 때 그 각각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낯섦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경험입니다.
이제 둘을 비교해 볼까요?
모더니즘은 대체적으로 관객이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리라 기대하고 따라서 작품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 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조 중에서 자신의 주제를 제일 잘 표현할 사조를 선택할 수 있지만, 한 번 정했다면 극의 구성, 이미지, 디자인, 내용이 이에 맞추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이들이 어우러지는 하모니를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사실주의를 선택했다면 무대 배경과 인물 및 스토리가 유전과 환경을 잘 나타내며 주제는 사회고발적이어야 잘 만들었다는 평을 받을 수 있는 것이겠죠. 앞에서 본 피카소의 그림 또한 하나의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위해 일관적인 화법이 사용되었고요.
이에 반해 포스트모더니즘은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https://robertwilson.com/shakespeares-sonnets)
미국의 연출가 로버트 윌슨(1941~)의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의 장면들입니다. "셰익스피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엘리자베스 시대 복식과 이에 맞지 않는 19세기 자전거, 그리고 현대의 모니터와 주유기계 등을 함께 배치하여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프리모던(전근대),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한눈에 효과적으로 비교 대조하여 보여주는데요. 전근대가 고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절대적 진리를 표현하는 점이라면 모더니즘부터는 움직임이 추가됩니다.
(이미지 출처: https://owlcation.com/humanities/Postmodernism-Explained)
법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모더니즘 작품을 공연할 경우 연출이 작가의 의도를 배반했을 때 작가가 연출가를 고소하여 승소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와 연출 방식이 합치해야 옳다는 관점이죠. 한편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은 판권만 지불한다면 얼마든지 만들어내는 사람 마음대로 연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연출가들이 기성극을 새롭게 해석하도록 장려합니다. 또한 기존에는 극작가와 연출가만이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가졌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에서는 장면 연출가나 무대, 조명, 음악 등등 디자이너도 작품에 대해 공동 창작자로서의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20세기는 한편 세계대전으로 점철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1914-1918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1939-1945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죠.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벌어진 이 엄청난 규모의 대살육전은 세상에 대한 서양의 철학적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습니다. 인간 존재의 이유 상실, 신의 부재, 허무함 등의 전후 상황들은 어둡고 암울하며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예술로 표현이 됩니다. 공연의 경우 일종의 '반연극'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의 시도들이 종류별로 등장하죠. 대표적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로 알려진 부조리극과 일본의 춤인 '부토'가 이에 속합니다.
세계대전 패전의 충격과 상실감을 다룬 춤인 일본의 부토는 한국에서는 공연되거나 공감받기 어렵지만, 몸에 하얀 칠을 하고 그로테스크한 표정과 몸짓을 사용하는 것이 강렬하고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위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 부토에서 인간은 인간다움/인간성을 상실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무용수들은 몸을 여러 형태로 비틀며 기괴하고 고통스러운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이렇듯 세계대전과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을 겪으며 유럽 예술계는 큰 변화를 맞는데요. 이러한 문맥에서 발생한 다양한 실험적인 새로운 공연 형태를 일컫는 몇 가지 개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아방가르드
아방가르드는 본래 프랑스 군대 용어로 맨 앞에서 전투를 이끄는 최전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880년-1930년간 극장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시도들을 아방가르드라고 일컫게 되었는데요. 한국에서는 전위예술이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기존의 틀과 맞서 싸우며 앞으로 치고 나가는 실험정신을 중요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표현방식을 탐구하는 경향을 보였고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적 면모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아방가르드 '운동'이라고 이름이 붙을 만큼 예술가들이 의식적으로 극장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 포스트드라마 연극
'포스트드라마 연극'이라는 용어는 1999년 독일의 연극학자 한스 티스-레만이 만들어서 개념화한 것인데요. '희곡'이라고 번역되는 '드라마'라는 단어는 서양 연극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대본 중심의 연극을 일컫기 때문에, 대본과 글이 더 이상 우위를 점하지 않는 현대극의 특성을 가리키기 위해 만든 용어입니다. '후기'라는 의미의 '포스트'가 붙어 '후기 희곡적 연극'이라고 직역할 수 있겠습니다. 역시 현대의 다양한 연극 형태를 포괄하는 용어이지만, 최근 한국에도 도입되고 있는 '이머시브 연극'이라는 관객 참여극을 포함시키는 개념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머시브 공연의 대표작은 펀치 드렁크의 <슬립 노 모어>로, 뉴욕의 4층짜리 호텔 건물 전체가 공연장이 되며 관객은 호텔 안에 들어서면서부터 공연 속으로 입장하여 배우들과 함께 이야기 속에서 숨 쉬며 교감하게 됩니다. 현대극답게 메세지의 전달보다는 관객에게 무대 위의 현장감을 선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슬립 노 모어>는 대사 없는 무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본의 중요성이 확연히 사그라들고 그 자리를 생생한 경험과 이미지, 그리고 관객이 채웁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공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관객은 호텔 안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어떤 장면을 볼 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backstage.com/magazine/article/now-casting-sleep-no-more-dance-auditions-male-67662/)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다양한 탈기성극, 반연극적인 현대극의 반항적 실험들을 알아보았는데요. 과학의 발달과 전쟁으로 절대적 가치가 붕괴되면서 불안정해지고 길을 잃은 인간의 현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현대 예술이었습니다. 만일 전쟁 대신 굉장히 긍정적인 전 지구적 일이 철학적 변환을 불러왔다면 현대극이 어떤 형태를 띠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다양한 공연 형태가 공존하는 현대에는 스토리에 몰입하고 싶을 때엔 기성극을 즐기고, 또 현장감이나 감각적 자극이 필요할 때에는 현대극을 찾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습니다. 몸의 움직임이나 감각의 활용이 제한적인 현대인의 삶에 현대극이 줄 수 있는 것이 많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