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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Apr 10. 2022

미국 연극의 정수, 심리적 사실주의극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는 왜 미국 연극을 대표할까

'사실적인' 것으로 꽤 단순해 보이는 사실주의극에도 사실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이 중 우리는 '심리적 사실주의극'으로 분류되는 미국 특유의 사실주의에 익숙한데요. 현대 연극계를 지배하는 연기 방식인 스타니슬라브스키의 '메소드' 도 심리적 사실주의극과 잘 맞아떨어지면서 가장 보편적인 연기 방식이 되었죠.


이번 포스트에서는 뮤지컬에 이어 미국 연극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또 다른 형태의 공연인 심리적 사실주의극을 알아보겠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심리적 사실주의극 (Psychological Realism)은 '심리'라는 주관적 시선이 반영된 사실주의극입니다. 지난 사실주의 포스트에서, 과학을 통해 증명 가능한 오감으로 파악된 세상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 사실주의의 원형임을 설명했었는데요. 심리는 객관적 측정이나 증명이 불가한 요소이기에, 심리의 표현이 중심이 되는 극은 사실주의가 변형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공을 초월하기도, 생각을 눈에 보이게 표현하기도 하는 조금 더 자유로운 극 형태죠.


20세기 초 주관적 표현의 영역을 탐구하며 부상한 유럽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1940년경 등장한 것이 이 심리적 사실주의극입니다. 심리적 사실주의극의 가장 큰 특징은 인물이 중심이 된다는 점인데요. '심리'라는 것은 특정 인물의 것이기 때문에 이 극들은 주인공의 심리와 감정을 관객이 잘 따라갈 수 있도록 합니다. 연기법에 있어서는 배우가 배역에 몰입하는 것이 인물의 심리를 가장 잘 드러내 줄 수 있기 때문에 배우의 재량이 공연을 빛내는 가장 큰 요소가 되고, 배우에게 있어서도 성취감과 만족도가 높은 장르입니다. 현재 우리가 즐기는 영화, 연극, 드라마 등에서 배우에게 가장 큰 관심이 쏠리는 경향이 바로 이 심리적 사실주의극의 유행에 기인합니다.


심리적 사실주의극이 안정적인 하나의 장르로 굳어질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등장한 뛰어난 극작가들 덕분입니다. 지금도 미국 연극의 대부라고 불리는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가 바로 심리적 사실주의극을 적극 활용한 당시 인물들입니다. 이들의 작품세계를 간단히 살펴보며 심리적 사실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지 이해해봅시다.




세 사람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표현주의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표현주의는 모더니즘의 한 갈래로, 심리적 사실주의가 받아들인 모더니즘이 바로 표현주의라는 특정 갈래이기 때문입니다.


표현주의는 1910년경 독일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간성이 상실되어가는 현대사회를  고발하는 성격을 띱니다. 기계화된 인간과 사회가 구성하는 세상이 뒤틀리고 기괴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삭막한 외부 환경이 거대하고 위협적으로 표현되면서 인간성의 상실에 대해 경고하는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유진 오닐의 <털달린 원숭이(The Hairy Ape>의 한 장면입니다. 노동자들이 철창 속 원숭이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thetheatretimes.com/hairy-ape-park-avenue-armory-nyc/)


유진 오닐(1888-1953)은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극작가로 손꼽힐 정도로 능력 있는 극작가였습니다.

<밤으로의 긴 여로>의 시인 둘째 아들에 자신을 투영했듯, 예민하고 섬세한 인상을 가진 유진 오닐입니다.

 오닐은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기 때문에 심리적 사실주의극만을 추구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실험을 통해 미국 연극에 모더니즘이 들어오게 되었으므로, 심리적 사실주의의 출범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죠. 대표적으로는 개인사를 반영한 가족 비극인 <밤으로의 긴 여로>가 있고, <털 달린 원숭이>는 산업화된 사회에서 기계화된 노동자의 모습을 서커스단의 고릴라에 비유합니다. 다른 유명작으로는 <느릅나무 밑의 욕망>(1924),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1931) 등이 있고요.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는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던 티론 가족은 여름 별장에 모인 어느 날 바다 안개가 점점 짙어지면서 서로를 마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 안개는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가족의 위치를 표현합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biography.com/writer/eugene-oneill)




유쾌한 인상의 테네시 윌리엄스입니다. 실제로 그의 극도 강렬하고 번뜩이는 에너지를 가진 것이 특징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gayinfluence.blogspot.com/2015/09/tennessee-williams.html)


테네시 윌리엄스(1911-1983)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47)로 잘 알려진 극작가입니다. 다른 유명작으로는 <유리동물원>(1944),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1955) 등이 있죠. 윌리엄스는 성소수자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그의 작품에는 성소수자로서의 욕망과 행동들이 겉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으면서 주요 사건들의 기저에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도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트라우마에 전남편의 성 정체성이 큰 역할을 합니다. 이 작품 전설적인 엘리 카잔 감독이 영화화하면서 비안 리가 여자 주인공을 맡고 말론 브란도가 메소드 연기의 정수를 보여주며 더욱 유명해졌죠. 극은 몰락한 남부 귀족인 블랑쉬의 가식과 위선이, 나락으로 떨어진 현실과 강제로 마주하는 상황에서도 이와 타협하지 못하고 파멸에 이르는 비극을 그립니다. 느릿한 블루스 음악이 뉴올리언즈의 분위기를 표현하고, 인물의 욕구와 열정들이 감각적으로 강렬하게 부딪히며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극에서는 블랑쉬의 심리가 불안정해질 때마다 총소리와 폴카 음악이 배경에 깔리는데요. 그녀의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당시 흘러나오던 음악과 가장 강렬했던 총소리로 표현된 것입니다. 장면을 같이 볼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eoj2ywRLJRw&list=PLDC6Rsl8bpW0OstEYHfbfA6FcN0ulYf4V&index=4

블랑쉬가 그녀의 구혼자 미치에게 과거의 상처를 설명합니다. 연극적이고 가식적인 몸짓과 말투가 눈에 띄죠. 총소리와 함께 배경음악이 멈추고 바르소비아나 폴카 음악이 뒤따릅니다.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아서 밀러의 모습입니다.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아서 밀러(1915-2005)는 마릴린 먼로의 세 번째 남편으로 알려지기도 한 인물입니다. <시련> 또는 <도가니>로 번역되는 The Crucible (1953)은 살렘의 마녀재판에 얽힌 사회의 병폐와 도덕문제를 깊이 짚어내죠. 그의 대표작이자 한국에서도 자주 상연되는 <세일즈맨의 죽음>(1949)은 표현주의적 면모를 많이 지닌 극입니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모험과 행복이라는 이상을 표방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냉정한 물질만능주의로 인간의 가치를 재단하고 인간성 상실을 부추긴다는 점을 꼬집는 극으로, 그 괴리 속에서  한 가장이 몰락하고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집 안에서 진행되지만, 무대 세트는 안정적으로 인물들을 보호해주는 집이 아닌 얼기설기 엮인 지붕의 모습으로 집의 보호자로서 가장의 역할이 위협받는 상황을 그려냅니다.

<세일즈맨의 죽음> 초연 무대입니다. 뻥 뚫린 지붕이 낮게 내려앉아 인물을 짓누르는 느낌이 듭니다.

(이미지 출처: https://playbill.com/article/photo-archive-arthur-millers-death-of-a-salesman-com-187766)




지난 포스트와 이번 포스트를 통해 미국 공연의 대표격인 뮤지컬과 심리적 사실주의극을 살펴보았습니다. 상당히 최근에 출범한 장르인데도 불구하고 현대의 대중문화를 거의 지배하는 공연 형태들이라는 점이 신기하죠. 한편 현대에 등장했으며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촉구하는 미국인데도 그 연극 역사의 기둥이 일관적으로 백인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연극 역사가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의식 아래 다양한 연극사들이 탐구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공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컨텐츠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백인 남성 위주의 것이라는 사실은 아직 연극의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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