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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Aug 18. 2016

고마워~ 아이스크림 자판기

청소년 사용 설명서 - 학교에 '아이스크림 자판기' 가 들어왔다.

말도 안 된다. 학교에 '아이스크림 자판기' 라니.   


여고생들에게  페이스북은 생활을 기록하는 도구이다. 부모님 세대와 비교하자면 지금의 청소년들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게 예전의 일기를 쓰는 거와 같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의 청소년들은 매일 일기를 성실히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 페이스북에 여고생들은 어떤 이야기를 많이 올릴까? 당연히 음식이다. 열개 중 6개는 내가 오늘 먹은 맛있는 요리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올린다. 그다음이 셀카고 또 그다음이 친구들과 놀러 간 사진이다. 



청소년들에게 비싸고 근사한 요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음식이면 된다. 라면이어도 되고 떡볶이여도 된다. 어느 날엔 편의점 대형 요구르트가 올라올 때도 있고, 시험기간에는 강력한 커피우유가 올라오기도 한다. 물론 퓨전음식은 흔히 보는 콘텐츠다. 말 그대로 청소년, 그중에서 여고생들에게 음식은 행복이고 나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힐링 그 자체다. 주문한 요리가 나오면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각도를 잡고 일단 찍고 본다. 찍지 않고 먹는다는 건 그 어떤 음식에 대한 예절이 아니다. 아주 큰일 나는 일이다. 


이처럼 여고생들은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렇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여고생들이 자신의 학교에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들어왔다고 생각해보자. 여고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꺄~~~~ 악~~~~~~ 이러한 반응은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여고생들에게는 단순히 편리한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여고생들에게 '아이스크림 자판기'는 내가 사랑하는 남자 친구이자 절대적으로 좋아하는 연예인이자 내게 더없는 행복을 주는 존재, 그 이상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꽤 많이 가보았다. 물론 강의 때문에.

그리고 학교를 둘러보는 게 나 나름의 강의 후 디저트다. 방문한 학교의 특징을 찾기 위해 학교를 거닐어 보는 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런 나도 지금껏, 남. 여 중. 고등학교를 막론하고 교내에 '아이스크림 자판기' 가 있는 학교를 본 적은 없다. 물론, 매점을 운영하는 학교에는 매점 한편에 음료자판기, 커피자판기 또는 스낵 자판기까지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자판기'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시중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자판기는 아니다.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설치되던 날, 학교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처음 설치되는 날, 학교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고 내가 아는 선생님께서 웃으며 말씀해주셨다. 당연한 일이지만. 집중력 떨어지고 학교를 기피하고 싶을 정도로 무더운 날씨를 감안하면 그냥 냉장고 비슷한 물체만 보더라도 달려들어 껴안을 기세다. 그런데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학교에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들어왔다. 이건 더 이상 설명을 할 수 없을 만큼 유쾌하고 행복한 일이다. 


어찌 보면, '아이스크림 자판기' 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호들갑을 떨까?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이렇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이 '아이스크림 자판기'는 '혁신'이다. 물론 교장선생님의 결단이 있어야 가능했으니 교장선생님 또한 혁신적인 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대충 예상해봐도 다른 학교가 '아이스크림 자판기'를 들여놓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것도 거의 모든 학교가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없다면 그럴만한 공통된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학교는 '아이스크림 자판기'를 설치할 수 있었을까? 


학교에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흔하지 않은 이유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학교에 들어오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물론 선생님들께서 해주신 이야기들인데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들이다. 무엇보다 아이스크림은 쉬는 시간에 여고생들이 5분 안에 후딱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런데 먹고 나서 문제가 혹여 아이스크림에 문제가 생기면 학교가 매우 곤란해진다. 자칫 학생들의 병원비는 물론 안전사고가 발생했으니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위험까지 있다. 굳이 없어도 되는 데 말이다.  


그뿐인가?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공부에 방해된다고 해서 당장 치울 것을 요구하는 학부모의 편견도 꽤 끈질기게 설득시켜 드려야 한다. 게다가 돈도 없는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가 학생들에게 소비를 조장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 이문을 남기는 것 아니냐는 삐뚤어진 시선 때문에 굳이 안 해도 되는 위험부담까지 안고 가야 한다. 학교가. 그래서 대부분의 학교는 '아이스크림 자판기'를 들여놓지 않는다. 


아이스크림 자판기 앞에서 학생 안전부장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설치된 배경이 매우 궁금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도 간단 명료했다. "학생들이 너무 좋아하잖아요"


아이스크림 자판기를 설치한 이유를 물었다. 
"학생들이 너무 좋아하잖아요"


그렇다. 달리 그다음으로 물어볼 질문이 없었다. 우리는 '굳이'라는 말을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안 해도 되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굳이 그러지는 말자." "굳이 하려거든 너 혼자 해." 나의 경우를 예를 들어도 난 언제나 주변인들에게 '굳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굳이 네 돈 들여 왜 밥을 먹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청소년들을 위하는 마음에는 '굳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이스크림 자판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청소년들을 위한 일에는 '굳이'가 들어가지 않으면 진정으로 그들을 도와줄 수 없는 상황들이 많다는 생각도. 


어느 학생이 학교에 비치된 '아이스크림 자판기'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당연히 공유가 시작되고 자기 학교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단번에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학교가 마치 가장 행복한 학교가 되어버렸다. 비단 여학생들만의 피드백은 아니었다. 


글을 마치면, 학교로 달려가서 학생들과 아이스크림을 먹을 생각이다. 오늘은 탱크 보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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