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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Aug 18. 2016

주먹밥을 주는 이유

주먹 대신 주먹밥? 그냥 아이들이 배고프니까 주먹밥

월급쟁이가 돈이 많으면 얼마나 많겠습니까? 돈이 많아서 아이들에게 주먹밥을 주었던 건 아니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강의하고 받은 '강의료'를 좀 더 의미있게 쓰고 싶었던 작은 생각. 그 생각을 하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학교 중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 좀 많은 학교를 떠올렸다.  


주먹밥은 아이들에게 한 끼의 끼니를 해결하기에 꽤 괜찮은 먹거리다. 청소년들이 간식으로 즐겨먹는 애용 음식으로는 아주 적합한 음식이다. 요즘 주먹밥은 가게마다 그 크기와 재료 그리고 종류가 많이 다양하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주먹크기보다는 훨씬 크다. 


요즘 주먹밥은 가격대가 2천 원에서 2천5백 원 정도한다. 김밥으로 치면 묵직한 참치나 쇠고기 김밥 한 개 내지는 보통 김밥 두 개 분량과 얼추 비슷합니다. 맛도 무척 다양하다. 대체로 자극적인 양념이 많이 들어가는 게 요즘 청소년들이 즐겨 먹는 주먹밥이다. 한번 먹어봤는 데 어른이 먹기엔 좀 많이 자극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주먹밥을 주게 된 시기는 4년 전 신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었다. 내가 담당하게 된 '조금 센 학교'를 방문하다 우연히 특이한 광격을 본 것이다. 학교 정문 옆에는 작은 주먹밥 가게가 있었는 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등교하기전 꼭 이 주먹밥집에 들어 주먹밥을 먹고 가는 것이었다. 그 풍경이라는 게, 마치 전쟁터 구호창구에서 배급을 기다리는 피난민 같을 정도였다. 대부분은 자리가 없어 가게밖 문앞까지 장사진을 치를 정도였다. 더러는 점심용으로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학교는 모르게 했다.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해서.


쑥스럽기도 하고. 해명하는 것도 좀 우스운 것 같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같은 위대한 생각은 더더욱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학교가 알게 되면 오히려 불편한 마음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어찌 됐건 학교 옆 주먹밥집 사장님과 나는 작전에 들어갔다.




주먹밥 집에 나의 장부를 만들고 누가 먹고 갔는 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먹고 난 다음에는 정성껏 기재를 해달라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3월부터 배가 고픈데 돈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매달 주먹밥 100개를 제공했다. 하루에 주먹밥 제공은 20개를 넘지 않았다. 그리고 먹을 수 있는 시간대도 평상시 등교시간보다는 훨씬 빠른 7시에서 8시 사이로 정해 놨다. 


 배부르면 학교폭력을 하지 않을 거다.


범죄도 저지르지 않을 거다. 더구나 경찰관이 주시는 주먹밥을 먹었다면 그 경찰관을 봐서라도 나쁜 짓은 하지 않을 거다. 나는 이 생각을 믿었다. 나의 생각은 크게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 있었다. 그래서 대단한 생각보다는 평범하지만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생각들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주먹밥을 아이들에게 주었던 이유도 단순했다. 학교폭력이 제법 많이 일어나는 학교였고, 아이들의 모습에서 많이 차갑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속은 안그럴텐데. 그러다 학교 교장선생님께 부탁하여 학교 사정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요청받아 학교를 조금 깊숙히 파악했다. 그 중에 나의 눈에 들어 온건 이 학교 학생들의 60%이상이 가정형편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고서 아침 주먹밥집 진풍경을 다시 보았더니 먹는 친구와 먹는 걸 구경하는 또는 달바붙어 뺏어먹는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먹밥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당시에는 그랬다. 배고프니까 돈을 뜯는 거고, 배고파서 짜증 나니까 괴롭히는 거고, 보호받지 못한 스트레스를 보호받고 싶은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폭력을 쓰는 것. 이 모든 게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내 생각은 왕성한 청소년에게 '배고픔'은 나쁜 짓을 하기에 충분한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주는 주먹밥은 대부분 학교에서 불량스럽거나 나쁜 짓을 했거나 너무 안 좋은 나쁜 짓을 한 친구들이 대부분 먹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원한 건 절대 아니다. 잘 노는(?) 친구들이 그렇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해줄 거라곤 정말 기대도 안 했고, 이 주먹밥으로 오랫동안 나쁜 짓을 해왔던 친구들이 하루아침에 바뀔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냥 한창 먹을 나이에 조금이라도 먹이고 싶었다. 


주먹을 제공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무뚝뚝하고 거칠어 보였던 친구들로부터 문자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런 다정한 문자를 어른에게 보내기는 대부분 처음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이런데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이다. 그래서 더욱 감동이었다. 그중에는 수업시간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가 하면 폭력을 재미로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뒷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소위 오늘만 사는 친구들도 내게 문자를 보내주었다. 

 "잘 먹었습니다. 아저씨."

학교를 안 나오는 친구, 학교를 그만둔 친구, 사고 꽤나 치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가정방문을 해본적이 있다. 거리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오후가 되었던 저녁이 되었던 가급적 그 친구들이 원하는 시간을 잡으면 되니까. 가정방문을 하면 이 친구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이 아니라 거의 모든 학생들이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을 눈으로 직접보게 되면 마음은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이런 친구들에게 절대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관심도 없는 학업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도 하지도 않는다. 그냥 주먹밥만 준다. 그러다 마음에 진동이라도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일단은 그 친구들과 신뢰를 형성하는 게 내가 정말 주먹밥을 주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개학을 했다. 개학 첫날 주먹밥 사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새벽 7시경에 그 친구가 와서 주먹밥을 먹고 갔다고 했다. 그 친구란 학교에서 나쁜 짓으로 이름 꽤나 날리는 친구를 말한다. 그래서 몇 달 동안 그 친구가 밥을 먹는 지 안먹는 지를 지켜봤다. 그런데 몇달 째 먹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무도 없는 7시에 와서 조용히 장부에 이름을 달고 주먹밥을 먹고 갔다고 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학교에서 학생부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반가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지난해보다 학생들이 예의도 바르고 무엇보다 선생님한테 대드는 경향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주먹밥만이 학생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의 열정이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에게 변화가 생겼다는 것과 그 변화가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 나를 흐뭇하게 했다. 멈추지 않고 진행 중이라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까.  결국 내가 이 친구들에게 원했던 건 바로 변화였으니까. 어찌 보면 그들도 내 생각처럼 달라지는 걸 간절히 원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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