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수 Aug 19. 2016

보조배터리를 왜 주문했을까?

학교를 다니지 않는 친구들 위해 생각해 냈다.

" 대장님, 학교를 안 다니는 친구가 대장님 만나고 싶대요."
" 와~ 그래? 당장 만나야지."
" 그런데 친구가 꼭 물어봐 달라는데요. 자기도 상담센터 가서 상담받으면 보조배터리 받을 수 있냐고요"
" 당연히 받을 수 있지."


오늘도, 알고 있는 청소년을 통해 학교를 그만둔 친구를 만났다. 소개를 받은 탓에 그리 서먹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만나기 전 나의 페**북을 보고서야 만나도 괜찮은 경찰관 같다고 했단다. 페**북이 학생에게 신뢰를 준 모양이다. 기분이 꽤 좋다. 


상담은 밥상머리에서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두게 된 사연도 들을 수 있었고, 꿈이 없어 여전히 지루한 하루들을 보내고 있다는 넋두리도 들을 수 있었다. '말이 별로 없는 친구입니다'라고 했는 데 이 정도로 이야기를 해주니 무척이나 고마웠다. 학생도 고마웠지만 말을 늘어놓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준 '밥상'도 고마웠다.


그럼 한 가지만 부탁하자. 
뭔데요?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
그리고 밥은 꼭 먹고 다녀야 한다. 


이것이 학교를 그만둔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떼'를 쓰는 이유다. 반드시 관철해야 하고, 일단 그들을 만났다면 물고 늘어져서라도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같이 밥을 먹는다. 일단은 밥은 먹고 다녀야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생각에는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추켜세워주고 그리고서 나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상담을 꼭 받아달라고 부탁한다. 딱 2시간만 상담받아봐. 그게 대장님이 너에게 밥을 사주는 이유고, 또 선물을 주는 이유다.라고. 


와~ 드디어 받네요. 정말 받고 싶었는 데. 
대장님과 약속할 수 있지? 상담센터 가서 검정고시도 도와달라고 하고 진로에 대해서도 뻘쭘해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고 오는 거다. 
네!!! 


이렇게 생각했다. 학교를 그만둔 친구들은 일반 학생들과 생각이 조금 다르다. 정확하게 말하면 생각이 많이 게으르다. 잘 움직일려고도 하지 않고 스스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이다. 만나보니 그랬다. 그래서 그들과 내가 약속의 징표로 무엇이 좋을까를 생각했다. 기왕이면 학생들이 좋아하고 이 정도면 미안해서라도 아니면 대장님 애쓰는 마음을 헤아려서라도 제 발로 상담센터를 찾아갈 수 있게 만드는 약속의 징표. 


그래서 보조배터리를 주문했다. 


그것도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마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심벌이 들어가 있는 꽤나 본새나는 보조배터리를 만들어봤다. 아주 심플한 게 내가 주문했지만 괜찮았다. 그런데 이 보조배터리가 2,700여 명의 청소년들로 가득 찬 나의 페**북에 게시되면서 예상치 못한 파장이 생겼다. 오죽하면 학교를 열심히 다니는 친구들도 보조배터리를 받으려고 메신저를 보냈다.  



갖고 싶어요~ 대장님!
안된다~ 넌 학교 다니잖아 ㅋ  
저 학교 그만두고 받고 싶어요~
떽~
  꼭 밥은 먹고 다녀라~


보조배터리 자체도 이쁘지만 어떤 친구들은 배터리 뒷면에 새겨진 문구가 더 멋지다고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꼭~ 밥은 먹고 다녀라.' 내가 꼭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문구로 넣었을 뿐인데 아이들에게는 그 말이 참 좋다고 했다. 밥을 사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알아서 밥을 꼭 먹고 다녀라고 했을 뿐인 데. 마음을 알았을까? 그렇게 게으른 친구들이? 


범죄 경험이 있는 청소년,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 아무런 꿈도 없이 멍 때리고 사는 청소년. 이들을 대할 때 나는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마주한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지 아니면 부모 없이 혼자서 살던지 그것도 아니면 4-5일에 한 번씩 들러주는 쿨한 부모랑 함께 사는 친구들이다. 보호를 받지 못하는 친구들의 당연한 모습이지 않을까? 물론 내가 그들의 부모가 아닌데도 그냥 어른으로서 그냥 미안하다는 생각이 나에게 진심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럼 그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처럼 숭고한 내 마음을 알고는 있을까? 이해하더라. 안 할 줄 알았는 데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게으른 친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무시하던 친구들이 먼저 만나자고 하더라. 그 정도라면 충분히 이해하는 거 맞다.  


물론, 보조배터리는 자비로 만들었다. 경찰서 예산에 이러한 걸 만들 수 있는 항목은 없다. 그건 어느 공공기관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이해한다. 그냥 내가 조금 엉뚱하다는 생각뿐이다. 결국 하다가 벽을 만나면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해왔다. '맞아, 내가 좀 엉뚱할 뿐이야." 그래도 나는 보조배터리를 선택했다. 사탕과 과자를 준비하면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공책을 주고, 샤프를 선물하면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여름이니까 부채를 선물하고, 수첩을 선물하면 상담센터에 상담을 받으러 갈까? 그렇게 게으르고 이기적인 놈들인데? 그러한 걸로 꽤 거리가 있는 상담센터를 스스로 찾아간다는 건 내 계산법에서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친구를 일컬어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학교 밖 청소년을 왜 발굴하고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지는 그 취지와 목적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기본교육을 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런데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박차고 학교 밖을 뛰쳐나간 친구들이다. 그들이 범죄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사회에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기 인생을 멋지게 펼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학교 밖 청소년'을 보호하는 목적이다. 그래서 학교로 복귀를 했으면 좋겠고, 그게 안되면 검정고시라도 획득해서 더 나은 학업이나 취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난는 그들이 움직여주기를 원했다. 


먼저 전문기관에 가서 상담도 쿨하게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상담센터까지 가게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물론 선물 없이 그들에게 가라고 할 수도 있다. 선물을 주지 않고 구구절절 필요성을 역설하고 제발 가달라고 애원하면 갈 수 있을까? 안 간다. 내가 경험한 친구들은 안 간다. 왜냐하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임감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고, 의무감이 있었다면 학교 가는 의무라도 있었을 거다. 그럼 학교 밖 청소년이 되지 않았겠지? 당연히 잘못된 것 맞지만 이 시점에서 누구의 잘못인지까지 이야기하면 이 글은 장편 다큐멘터리가 될지도 모른다. 


보조배터리는 약속 그 이상의 의미 


먼저 받았으니 안 가면 안 될 것 같은 미안함. 보조배터리와 그들의 게으름을 바꿨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건 그들과의 '관계 형성'이다. 이제 그들과 나는 친구가 되었으니 적어도 나쁜 짓을 하거나 나쁜 짓에 휘말릴 때도 내가 생각날 것이다. 결국,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얻어서 기쁘다. 다행히 지금까지 선물 받고 상담센터로 가서 상담을 받겠다던 친구들은 모두 상담을 받았다. 일부 몇 명은 상담 약속을 잡았다고 했으니 전원 상담을 받은 셈이다. 


이제 그들이 변화기를 기다려야 한다. 변화지 않는 친구들도 당연히 있을 거다. 그럼 또 그 친구들과 밥을 먹을 것이다. 야단은 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 확률적으로 보면 그들은 갈 확률보다 안 갈 확률이 절대적으로 높은 청소년들이니까. 


끝.










  










매거진의 이전글 주먹밥을 주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