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수 Aug 25. 2016

아이들은 이런 걸 원했다.

내가 원하는 학교폭력 예방 교육.

방학 전.

"경위님, 2학기 학교폭력 예방 강의 좀 해주세요."
"맛있게 준비하겠습니다."


방학 후.

" 선생님, 이번 강의는 연극 공연으로 하고 싶습니다."
" 너무 좋습니다."


지금까지 강의 횟수를 셈하면 거의 500회는 넘을 것이다. "강의의 우선순위는 뭘까?"라는 이 질문은 언제나 강의 요청을 받으면 하는 질문이다. 끈질기다 싶을 정도로 질문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결과는 똑같다. 행동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굳이 이야기를 안 해도.


고민 고민했다. 이번 강의는 인천지역 '영종도' 섬에 있는 고등학교. 인원은 500명. 1, 2학년 전체 학생들이란다. 강의를 하려면 그전에 파악하는 것이 있다. 중요하고 기본적인 수순이다. 강의 주제. 지역. 대상. 성별. 학년 그리고 콘텐츠다. 주제는 학교폭력을 할 것인지, 성범죄예방을 할 것인지, 진로강의를 할 것인지 등이고, 대상은 초등학생 고학년, 저학년,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등이고, 학년은 몇 학년으로 할 것인지 남학생인지 여학생인지 등이고, 콘텐츠는 PPT를 활용한 설명식인지 영상을 보여주는 시청식인지, 문제를 풀어보는 퀴즈식인지, 토론을 해보는 토크식인지, 연극을 보여주는 공연식인지.



콘텐츠다.

내가 학생이라면 금방 답은 나온다. 이번 강의를 예를 들어볼까? 주제는 학교폭력 예방 교육이다. 학교는 남녀공학 인문계열 고등학교다. 지역은 인천지역에 있는 영종도라는 섬에 위치해 있다. 섬이라고 하지만 국제공항과 신도시가 있을 정도로 꽤나 큰 섬이다. 그래도 섬이라는 특수성은 있다. 성별은 남, 여학생, 인원은 500명이고, 학년은 1, 2학년이다. 그리고 콘텐츠는?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는 대부분 '컨택'의 어려움이다. 예를 들어 내가 연극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학교폭력' 희곡이 없고, 또 이를 연기해 줄 극단이 컨택이 안되면 결국 못한다. 그래서 다양한 콘텐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도 이를 실현하기에는 컨택의 어려움 때문에 사실상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


재능기부를 해준 대학로 연극 극단 '독립프로덕션 광기'


꼭 하고 싶었는 데 운이 좋았다. 어렵게 이야기했는 데 재능기부를 선뜻하겠다고 나서 준 대학로 '극단'도. 하고 싶다고 해도 배우가 없으면 못하는 데 다행히 결원이 안 생긴 것도. 또 학교도 융통성이 없으면 계획했던 대로밖에 할 수 없는 데 믿고 공감해준 선택도. 모두 운이 좋았다.


나도 그랬다. 수업이 아니면 무엇이든지 다 좋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강당으로 들어서는 학생들의 표정이 좋다. 모르고 와서 그런지 무대 세트를 보고 궁금해하는 표정들과 방학 동안 못 봐서 그런지 나를 보고 손하트를 발사해주는 친구들까지. 오늘 우리는 유쾌한 공통점이 있다. 한 친구가 손하트 3종 세트를 날려줘서 하마터면 응급실에 실려갈 뻔했다.  


학생들의 관람석은 강당 바닥이고, 인원은 500명이나 되니 간격을 좁혀 앉았다. 단상에서 공연을 하겠다는 걸 무대 밑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기왕이면 학생들과 배우가 가깝도록. 마치 마당놀이처럼. 괜찮겠네요. 그럼 학생들이 더 몰입하고 더 재밌게  연극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50분. 수업시간에 맞춰 공연시간도 맞췄다. 연극은 재미있었다. 최근 청소년이라면 누구나가 경험했던 사례들로 희곡을 썼고, 음향도 좋았다. 나머지야 소극장에서 볼 수 있는 소품과 조명 같은 것들이 아쉽긴 했지만 학교 강당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훌했다. 이번 공연은 무엇보다 스토리 전개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학생들의 호응만 맞아준다면 내가 원했던 교육 후기는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성공인데요. 선생님."
"학생들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딴짓하면 어떡하나 특히 뒤에 앉은 친구들은 더 할 거라 생각했는데 딴짓하는 친구들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학생들의 공연예절이 수준급입니다. 선생님."
"아마 대부분이 연극을 처음 봤을 겁니다. 여기는 특히 섬이라 시내까지 나가기가 너무 멀어서 말이죠."


교육 후기는 제대로 나왔다.


결국, 아이들은 이런 걸 원했다. 나 또한 내가 원한 강의는 이런 거였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갖고 와서 학생들과 콘텐츠가 함께 어울리는 그림. 그래서 콘텐츠가 끝나더라도 계속해서 학습이 되는 여운. 다양한 콘텐츠의 활용은 이러한 현상을 안겨줄 수 있다는 확신을 이번 공연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거 알고 있는데 자비를 들여서까지 재능기부를 해준 젊은 극단. 독립프로덕션 '광기' 대표님과 배우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다음 강의 콘텐츠는 바이올린이다. 벌써부터 예고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친구들이 몇 명 떠오른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보조배터리를 왜 주문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