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스마트폰에서 놀라운 걸 발견했어요
청소년들도 다 아는 이야기다. 우스개소리. 북한의 '김정은'이 한국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바로 '중2'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떡하지? 이제 '김정은'이 무서워 해야할 청소년은 '중2'가 아니라 '초딩4' 인데.
중2병에서 초4병으로
얼마전이다.
교육부에서 "2016년 1차 학교폭력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보는 이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던 건 바로 학년별 '학교폭력을 경험한 학생들' 비율이다. 생각치도 못했던 결과였고, 학교폭력 현장에 몸을 담고 있는 나로서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조사 결과, 초등학교 4-6학년이 그토록 막강했던 중학생(18%)을 누르고 그것도 매우 압도적인 차이로 무려 68% 비율로 1위에 올랐다.
나로서는 당장 학교폭력예방의 방향과 자료 수정이 급해졌다. 또 누구에게 예방활동을 할 것인가도 그 타깃을 달리해야할 상황에 놓였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를 둔 부모들의 역할도 커졌다. 청소년의 문제는 언제나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이의 가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겉잡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 또한 우리는 이미 '중2병' 시즌1에서 충분히 배웠다. 그러니 이 현상을 눈으로 획~하니 읽고 지나칠 일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일까?
평소 알고 지내던 고등학교 남학생으로부터 대화요청을 받았다. 청소년의 대화요청은 크게 두 종류다. 고등학생은 페**북 메신저, 중학생은 카**톡 메신저다. 평소 학교에서 마주쳐도 고개만 숙이고 지나가던 친구가 뜻밖에도 메신저로 대화요청을 해왔다. 첫마디부터 "통화되시나요?" 라고 물었지만 하필이면 배터리가 없어 일단 대화창에 내용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페**북 메신저는 대화창에 글을 작성하고 있으면 '작성중'이라는 문구 표시가 뜬다. 그런데 '작성중' 표시가 한참이다. 분명 할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고, 많다는 건 내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예상이 거의 빗나간 적은 없다.
상담을 요청한 친구는 자신이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의 동생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상담을 하게된 전말은 여자친구와 여동생과의 사소한 대화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언니, 내 스마트폰 안봤으면 좋겠어."
"내가 네 폰을 왜 봐? "
"그렇지? 언니가 내 폰을 볼리가 없지. 하하 난 언니를 믿어."
"머야~"
하고.
여동생이 수상하다.
그런데 언니는 잠을 잘려는 순간, 문득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여동생이 수상하다. 여동생이 뜬금없이 왜 스마트폰을 보지 말라고 했을까? 굳이 이야기를 안해도 평소 여동생 스마트폰에는 관심도 없는데. 이상한거 맞는거지? 라고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여동생이 자는 틈을 노려 스마트폰을 보았다. 카**톡 대화창을 보는 순간 언니는 소름이 돋았다. 결국 대화창을 확인하고 언니는 남자친구에게 이야기를 했고 남자친구는 내게 연락한 것이었다.
잘 나가는 초등학생의 기준은?
요즘 잘 나가는 초등학생의 기준은 뭘까? 최근 초등학생들을 두고 사회적으로 가장 고민에 빠져있는 대목. 바로 잘나가는 친구로 인정받을려면 페**북 '좋아요'가 많아야 한다. 예를들면, 인**그램은 좋아요가 200명, 페**북은 300명, 카**스토리는 500명은 '좋아요' 가 있어야 소위 잘 나가는 초딩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더구나 그 중에서도 '양언니'나 '양오빠' 같은 아는 중딩 언니, 중딩 오빠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클래스는 더 올라간다. 그래서 카**톡이나 카**스토리에서 운영하는 '오픈채팅' 같은 것을 통해 또는, 익명으로 운영되는 인기있는 랜덤채팅을 통해 요즘 초등학생들은 중딩,고딩 언니 오빠들과 친구를 맺는다.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심지어 초등학생들 중에는 페**북 좋아요를 위해 '좋아요 계모임'까지도 만들어서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여동생은 지극히 평범한 3학년이다. 나이로 치면 만 9살이다. 그런 여동생이 얼마전 모바일 채팅방에서 어느 중학생 오빠를 만났다. 당연히 중학생 오빠는 여동생에게 호감을 보였고, 이쁘다. 착하다. 너같은 초등학생은 처음이다 등 온갖 친절한 문구로 여동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본색을 드러낸 것이 바로 '야챗'. 즉, 야한채팅이다.
당연히 협박도 없었고, 강요도 없었다. 오직 부탁과 애원만으로 중딩오빠에게 상반신을 벗은 사진을 보냈다. 어른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것은 어른의 입장에서 이해를 해서는 안된다. 초등학생 3학년이라면 어느 누구나 '계획된 꼬임'에 넘어갈 수 있는 나이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예전같으면 평범하지 않을 사건들이 요즘이니까 평범하다. TV와 인터넷 그리고 소셜에서도 이 정도의 스토리는 대중앞에 내놓을 수 있는 콘텐츠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부터다. 이 파렴치한 오빠는 사진으로도 부족해서 여동생을 직접 만날려고 했다. 자기는 지금 강원도에 살고 있는 데 여동생이 원한다면 당장 달려갈 수 있다는거다. 그냥 말같지도 않은 '사랑'을 내세워 그렇게 먼 거리를 찾아가는 것 또한 초등학생에게는 '감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분명 그것을 노렸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오라고 했을거다. 어디로? 여동생 집으로.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사실이다. 나도. 고민을 의뢰했던 언니도 이 대목에서 크게 놀랐다.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더한 것은 여동생이 그 오빠에게 친절하게 집주소까지 알려줬다는 것이다. 동호수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집앞에 와서 어느 지점에 있으면 자신이 창문을 열어 확인을 시켜주겠다는 것은 동호수를 가르쳐 준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결국은 성범죄자였다.
중딩 오빠의 목표는 딱 한 가지다. 성적인 터치이거나 그 이상이거나. 내가 강원도에서 2시간이나 걸려 찾아왔으니 자기 소원을 들어달라는 것.좀 유치해보이고 얕은 수법으로 보이지만 내가 보기에 초등학생인 여동생에게는 가장 적합한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니 여동생도 그 오빠에게 직접 찾아오겠다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까지 약속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고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무척 당황스럽다.
연구를 했던 모양이었다. 여동생과 그 오빠가 서로 알아보는 방법치곤 나름 재치가 있어 보였다. 이런거다. 중딩오빠가 여동생 집에 도착하면 창문으로 종이를 던져 오빠가 받기로 했다. 그래서 밖에서 오빠가 종이를 받으면 다시 카**톡으로 받았다는 것을 확인 후 만나기로 했다. 결국 여동생은 창밖으로 종이를 던졌다. 그리고 던지자마자 얼른 좁은 창틈 사이로 종이를 줍는 중딩오빠를 보았다.
채팅한 오빠는 중학생이 아니라 아저씨였다.
근데 머지? 모자를 눌러써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중학생 오빠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등학생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여동생의 눈에는 내가 던진 종이를 주었단 남자는 아저씨로 보였다. 이 것도 반전이다. 기분나쁜 반전. 결국 아저씨로 보였던 것 때문에 여동생은 오빠를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나가지 않았으니, 잘 끝난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말 잘 끝난 것일까? 어떤 문제가 남아있을까? 이대로 마무리를 지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꺼림직한건 두 가지다. 상반신 사진을 보내준 것과 범인이 집주소를 안다는 것.
이대로 마무리 되어서는 안된다. 고민하지 않아도 스토리에서 꺼림직한 요소들이 보인다. 확연히 보인다. 먼저 여동생이 보낸 상반신 사진을 어떻게 했는 지 알 수가 없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유포가 될지 걱정이다. 두 번째는 집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집을 알고 있다는 건 언제든지 다시 접촉을 해 올 수 있고 스토킹까지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중학생 오빠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언니는 부모님이 알기를 꺼려했다. 그건 언니 입장이라면 당연하다. 하지만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라고 했다. 이 문제는 여동생이 야단맞고 안맞고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 문제이고, 여동생 성장에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선은 여동생의 잘못을 비켜놓고 풀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결국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성폭력 수사팀'에 최대한 빨리 신고를 할 수 있도록, 부족하면 언제든지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래야 이 사건이 종결된다.
결국 여동생이 중딩오빠와 대화를 원했던 건 바로 SNS '좋아요' 수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다시말해 어린 마음에 잘나가는 초등학생이 되고 싶었던거다. 여동생은 참 착해 보였다.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언니 말도 잘 따른다. 학교에서 공부도 곧잘 하는 친구다. 그래서 더욱 이번 사건을 잘 풀어야했다. 결국 우리의 바램은 여동생을 잘 지켜주는 것이니까. 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