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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Aug 13. 2016

자녀가 듣고 있는 데 참 잘하십니다.

 "진짜 꼭 이렇게 하셔야겠습니까?"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일까? 아들이 고3이다. 이제 수능이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단 말이다. 그런데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집에서 부모는 꼭 그렇게 해야 했을까? 큰소리로 바람을 왜 피웠냐는 등, 당장 이혼을 하자는 등, 재산분할을 어떻게 할 거냐는 등의 그딴 말을 꼭 해야 하는 가 말이다.


정. 말. 열. 받.는.다.


반듯한 친구다. 반듯한 학생이었던 친구가 1년 만에 연락이 와서 안부인사인 줄 알았더니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열에 아홉은 고3이라면 수능 스트레스 때문에 연락이 온다. 그냥 이야기만 들어줘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상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생의 첫 문장이 심상치 않았다. 


"6월에 어머니께서 아버지 휴대폰을 보고 난 후였는데요..."


내용은 간단했다. 아버지가 바람피우는 걸 어머니께 들켰던 모양이다. 그래서 낯선 여자의 문자를 해명하라고 했는 데 두 달째 해명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물론 그 중간에 학생이 모르는 다툼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오늘 최악의 국면을 맞았던 것 같았다. 거실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커져 있었고, '이혼'과 '재산분할'이라는 단어가 어머니 입에서 연신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했다. 

저는 뭘 어찌해야 하나요?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정확히 말하면 고3으로서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수험생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뿐, 그 외에  할 수 있는 건 미안하지만 없다고 했다. 


상담을 마치고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식보다 못한 부모들이지 않은가 말이다. 대체 그들 인생에 아들의 성장과 꿈은 안중에도 없다는 식이다. 아무리 부모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하려고 해도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흥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가 이렇게 흥분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 '가출'이지만 '탈출'이라고 말하는 청소년, 거리에서 '문신' 좀 드러내 놓고 본새를 뽐내는 청소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가정방문을 해보면 대부분이 아니라 모든 청소년들이 부모들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버림을 받은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찰서에서 만나는 부모들은 버림받은 줄도 모르면서 자식이 들으라고 할 만큼 했다는 등, 이제는 알아서 처벌하던지 마음대로 하라는 등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지껄여 댄다. 그럼 나는 더 흥분해서 자식을 키우는데 포기가 어디 있습니까? 기껏 자식을 1년 애썼다고 하면서 할 만큼 했다고 하는 겁니까?라고 부모님께 대들기도 한다. 


결국 청소년은 화를 풀기 위해 변한다.


청소년들은 쉽게 분노를 노출하지 않는다. 더구나 집에서 얻은 분노라면 더더욱 쉽게  표현하지 않는 것이 청소년들의 특성이다. 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다. 청소년들은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오르면 화를 쏟아 낼 데를 찾는다. 그것이 청소년들의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고, 결국 누구를 괴롭히고, 때리고, 훔치고, 범죄를 저지르는 단계까지 변화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기적인 부모들을 보면 흥분한다. 


누가 싸우지 말래요? 자녀들이 안보는 곳 많잖아요? 시간도 많잖아요? 그런데 꼭 자녀가 보고 듣고 있는 곳에서 그렇게 대놓고 하셔야겠습니까? 아이들도 이혼하고 그렇게 살라고 대놓고 교육을 하셔야겠습니까? 제발 그러지는 좀 말죠. 제발 어른이라고 너무 함부로 하지는 말자고요. 이미 자녀는 부모에게 정서적으로 수십대를 얻어맞고 쓰러져 가고 있다는 걸 제발 좀 생각하자고요. 제발 좀. 


또 혼자서 구시렁 댄다. 이게 습관이 되면 안 되는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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