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런 생각은 누구한테 배웠을까?
대체 이런 생각은 어디서 누구한테 배웠을까?
답이 안 나온다. 청소년 그들 말로 '핵노답'이다. 어디서부터 어떠한 방법으로 그들을 가르쳐야 온전한 청소년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나는 예의 없고 단순하고 심지어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는 청소년의 행동보다 더 걱정되는 건 바로 어른으로부터 배운 잘못된 편법과 오만 그리고 쉽게 생각하는 편리적 마인드다. 잠재적이고도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충분히 높은 잘못된 가치관과 성향을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 학교와 경찰. 과연 이 둘에게 맡겨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에 공감하지 않는가?
자동이다.
스마트폰에서 페**북 메신저가 울리면 자다가도 손을 더듬어 내용을 본다. 오늘 새벽에도 당연히 그랬다. 눈을 반쯤 뜬 채 담당학교 학생이 급한 듯 '대장님~' 하고 보낸 메신저를 보냈다. 무슨 일이냐? 시간을 보니 새벽 자정을 넘긴 시간. 이 시간에 오는 메신저는, 특히 남학생이라면 대부분 사건사고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소파에 앉았다.
청소년의 머릿속에는 이미 계산기가 있다.
놀라운 건 아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청소년 중에 좀 잘 나간다는, 좀 논다는, 좀 생각이 없다는 청소년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계산기가 들어 있다. 결국엔 돈이 필요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굳이 궁핍하지 않은데도 흥청망청 쓸 목적으로 일단 뜯어낼 수 있는 건 뜯어내고 보자는 식의 계산기가 작동한다. 순수하게 억울한 피해를 입었으니 뜯어내고 보자는 식은 그나마 좀 낫다. 이러한 생각이 결국엔 범죄에 이용되고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폭력을 이끌어 내고, 성범죄를 이끌어 내는 사례를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너무도 흔하게 보고 있지 않은가? 안타깝지만, 내가 더 안타까워하는 건 적어도 세상을 순수하게 바라봐야 할 나이에 벌써부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더 안타깝고, 이보다 더 안타까운 건 과연 이러한 수법은 대체 누구에게서 배웠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더 괴롭다. 과연 이 친구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누구 때문일까? 비록 야단을 치고 훈계를 했지만. 완전한 교육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에 의심은 있다.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단 한 번에 이루어지는 교육효과는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청소년들은 여러 부류로 나누어져 있다. 그만큼 상담도 교육도 그 부류에 맞는 스타일을 고집해야 한다. 부드러운 친구들에게 강한 어조를 사용해서는 야단의 수준이 넘치게 되니 적절하지 못하다. 또한 센 친구들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야단을 치는 건 수준에 못 미치게 되니 교육의 효과가 많이 떨어진다. 알아듣기 쉽게 교육을 해야 한다라는 것이 내가 청소년 교육에 임하는 자세다.
그래서 나는 착한 말도 잘하지만 나쁜 말도 잘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