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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Sep 21. 2016

이렇게 결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애를 썼는데 아들은 학교를 그만두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네요.


통화는 길어졌다.

어머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안하다고만 했다. 안 그래도 아버님께서 이런 결정을 하고서 전화를 드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몇 번을 말씀하셨다고 했다. 난 괜찮은데.



"어쩌다가 그런 결정을 하신 건가요? "
"갑자기 그렇게 되었네요."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던 건 아니고요?
"네, 특별한 일은 없었고 단지 아들에게 더 큰일이 생길까 걱정이 돼서 충분히 이야기를 한 끝에 결정하게 되었네요."


많이 미안하셨던 지 아주 오래전 이야기도 해주셨고, 최근에 계기가 되었던 일도 들려주셨다. 정말 많이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굳이 내게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해주셨다.

최근에 어머님께서 점집에서 아들의 사주를 봤던 모양이다. 원래는 여동생의 사주를 보려고 갔다가 어머님께서 아들도 한 번 봐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감옥 갈 운세야. 대뜸 고등학교 3학년 되면 감옥 간다는 점괘가 나왔다고 했다.


조심하라는 거다. 내가 보기엔.

그런데 부모님은 그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아들이 요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던 건 사실이다. 학교를 적응하지 못해 대안학교를 들어가고, 대안학교를 들어가서도 여자 친구와 제법 사귀는가 싶더니 사귄 지 세 달 만에 이별하고 이별 후유증으로 부모님을 무던히도 괴롭혔다. 마치 꽤 높은 담벼락을 걸어가는 아이처럼 휘청거리는 생활을 보냈던 것이 어머니에게 큰 작용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스님을 만난 이야기까지 해주셨다.

맞다, 부모님은 불교를 믿는다고 하셨다. 아들이 세 살 때, 집 앞을 지나가는 스님이 업혀 있는 아들을 보고는 아들 하나를 더 낳아야 합니다 라고 했단다. 왜냐고 물었더니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하고 빌어 먹지 못하니 아들 하나를 더 낳아야 이 아이가 괜찮다고 했단다. 그리고 스님은 지나갔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늘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점괘를 받아 들었을 때 옛날 그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님과 의논을 했단다. 결국은 아들이 선택하는 길로 가자는 생각을 갖고 물었더니 아들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단다. 일단 아들이 더 큰일이 생기면 안 되는 거니까. 그게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페**북을 통해 알았다. 버스표 한 장.


학교를 그만두고 이틀이 지났을 거다. 학생이 페**북에 대전 버스표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대전으로 떠난다는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그 아래로 친구들의 댓글이 이어졌다. 건강하게 잘 지내 친구야.


나도 학생에게 전화했다.


"어디냐?"
"대전입니다 대장님"
"대전에는 무슨 일로?"
"삼촌 일 도와주고 있어요."
"학교는?"
"그만두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아니오, 학교를 다녀도 재미가 없고 삼촌이 행사 전문 일을 하는 데 배워보려고요."


생각보다 덤덤해 보였다.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미안해하는 것도 같았다. 그래도 티는 나지 않았다. 원래 그런 스타일이니까. 알기 때문에 서운하지도 않았다. 그럴 수 있다.


학생은 고1 신입생 때 알았다. 건들건들. 인상은 아주 굵어 보이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다 라고 생각 들었을 때 학교에서 크게 사고를 쳤다. 그 덕분에 가까워졌지만. 그때부터 멘토링을 해왔다.


원칙,
무슨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연락할 것.


다행히 이후로 사고는 없었다. 늘 불안 불안했지만 사건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리고 2학년이 되었고, 2학년을 가서도 불안 불안하다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한 번은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나와 함께 어머님을 감동시켜드리는 깜짝 이벤트까지 진행한 적이 있다. 어머니께서 눈물바다가 되었을 정도로 자신이 만든 이벤트에 뿌듯해한 적도 있었다. 솔직히 감동적인 이벤트였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상담을 했다. 사람 만들어 본답시고 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집까지 가서 데리고 나와서라도 학교를 갔다.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해서 같이 밥을 사준 적도 있다. 어머님을 위해 감동 이벤트도 해봤다. 이별 휴우증때문에 부모님을 괴롭힌다고 해서 여자 친구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주면 안 되겠냐고까지 해봤다. 학교를 그만둔다고 해서 대안학교를 알아봤다. 그런데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 건 아니다.


그 생각은 위험하다. 내가 노력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건 고마운 거다. 하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서운해하면 안 된다 라고 주문을 외운다. 그리고 냉정하게 다음 플랜을 대비한다.


"일 배우다가 다시 못하겠다고 집에 온다고 하면 어떨지 걱정이에요."
"당연히 올라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셔야죠. 어머님. 다시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뭐라 하시면 안 되고요."
"그래야죠."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래도 삼촌이 옆에서 보호해 준다고 하니 다행이다. 글을 끝내려는 데 아버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죄송합니다. 경위님. 정말 애 많이 쓰주셨는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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