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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Mar 24. 2017

청소년은 거북이다.

울음을 터뜨린 남학생

얼마나 답답했으면 전화를 했을까? 시계는 밤 12시를 갓 넘기고 있었다. 그저께 당직을 하고 다음날 쉬지도 못한 탓에 오늘은 평소보다 좀 일찍 잠이 들었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손을 더듬거리며 머리맡에 쭈그러진 휴대폰을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발신자가 누구인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방안은 어두워서 휴대폰을 잡고 있는 내 손만 뿌옇게 보일 정도였다. 누가 들어도 내 목소리는 많이 탁해 있었다.


"여보세요?"
"누구니?"
"주무셨어요? 대장님."
"아니야, 괜찮아. 무슨 일 있니?"
"흑흑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학생도.

나는 듣고만 있었고, 학생은 울기만 했다. 이유가 있을 거니까 울었을 거다. 이럴 땐 듣고만 있어도 위로가 된다는 걸 경험에서 배워 잘 알고 있다. 3분 정도 지났다.


"무슨 일 있구나?"
"아빠한테 맞았어요."
"왜?"
"친구랑 전화하고 있었는데 늦은 시간에 전화한다고 때렸어요."
"그거 때문에 때렸다고?"
"흑흑흑.........,......."
다시 울음이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울면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말이 눈물에 잠겨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다시 3분이 지나고 이야기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똑같은 상황이었지만 말이 울음 속에 잠기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걱정할 건 아니었다. 그냥 아버지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거다. 거기에 운이 안 좋게도 학생이 아버지의 화를 돋운 것이다. 


학생은 늦은 시간에 통화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늦은 시간에 통화한다고 자기 뺨을 두어 차례 때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러워서 너무 분해서 울었다고 했다. 아버님과 통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학생의 말은 학생의 항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에게는 누적되어 온 것에 대한 불만이 오늘 폭발했을지도 모른다. 추측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은  현재 정신적으로 경계선에 있는 친구다. 이상한 징후가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상의 친구들처럼 속도가 평균적인 것도 아니다. 전체적으로 속도가 좀 느린 친구다. 학생은 그동안 부모와의 마찰이 심했다. 물론 부모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았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수많은 시도와 노력을 해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달라지는 게 없었다는 것이다. 아들의 이기주의. 그래서 밤늦게 통화하는 것을 여러 차례 주의를 줬음에도 계속해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화가 나 손찌검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다고 했다. 


청소년은 거북이다.


이 학생은 좀 거북이다. 느릴 뿐 길을 잃은 친구는 아니다. 지난해 통장을 잃어버렸다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지구대에 분실 신고하고 은행 가서 재발급받으면 돼."
"재발급은 어떻게 하는데요?"
"신분증이 없으니 학생증 들고 엄마한테 주민등록등본 발급받아 달라고 해서 가져가면 돼."


인터넷을 찾아보면 더 자세하게 알려준다. 분실 신고를 어떻게 하는지 모를 수 있다. 재발급을 어떻게 하는지 모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알아보려는 노력이다. 궁금하면 찾아보면 된다. 요즘 인터넷은 모르는 게 없으니까.  요즘 청소년은 게으르다. 정확하게 말하면 게으르기 때문에 스스로 찾아보려는 능동력이 약하다. 어려운 거 아닌데 그게 아이들에게는 어렵다. 어렵다는 생각 자체도 어렵다.


자녀에게 물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늦은 시간 들어온 아들에게 혹은 딸에게 간식을 내어주며 잠깐의 여유를 이용해서 통장을 분실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자. 말이 끝나자마자 휴대폰으로 찾아보면 안심해도 된다. 하지만 글쎄...라고 두 눈 멀뚱히 쳐다보며 모르겠다고 하면 간식을 뺏어도 된다. 휴대폰으로 찾아보라고 화를 내도 된다.


전화를 한 학생은 게으름 때문에 자주 집에서 찬밥신세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음이 게으르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듣지는 않고 자신의 불평만 말한다. 그래도 아버님, 손지검을 하시는 건 안될 일입니다. 결국 그 게으름은 누구로부터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손지검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아실 겁니다. 부탁인데 때리시는 건 절대 안 됩니다. 정말 부탁입니다. 충분히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다음날.

학생은 학교에서 전화를 했다. 어제 자기가 우는 바람에 자기가 말한 것을 못 알아 들었을 것 같다며 다시 이야기를 하겠다고 한다.


"괜찮아, 충분히 알아 들었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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