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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Mar 22. 2017

뜬금없이 임신이 되냐고 물어본다.

급하게 전화가 왔다.

이제는 익숙해진, 뜬금없고 무례한 아이들의 발신전화. 그렇게도 문자나 메신저로 먼저 의사를 물어보고 전화하라고 했건만 소용없는 놈들이다. 흠...


하지만 이번 전화는 급할 만도 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아니다. 하기야 평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그리 복잡한 일이 별로 없다. 어찌 보면 어중간하게 알고 지내거나 SNS와 같은 소셜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사실 상담 대부분을 차지한다. 어찌 됐건 누가 상담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많이 다급했는지 말하는 본새가 이쁘지는 않았다. 


임신이 되나요?


"대장님, 급하게 물어볼 게 있어서요?"
"여쭤볼 게 있어서요"
"네, 여쭤볼 게 있어서요"
"그래, 무슨 일인데?"
"제가 지금 여자 친구랑 관계를 했는데 여자 친구가 생리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임신되는지 안 되는지 걱정을 해서요. 저도 걱정이 되고요."


전화를 거는 장소가 대충은 짐작이 갔다. 통화음이 시끄럽고, 귀를 기울였더니 작게나마 음악소리도 들리고, 음정이 울리는 것이 딱 '노래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관계를 가지고서 대화를 하다 그제야 큰일 났다 싶어 전화한 듯 보였다.  


"관계를 언제 했는데?"
"방금 했어요 여자 친구 바꿔드릴까요?"
"아냐 아냐 여자 친구를 왜 바꿔?"
"대장님, 임신되는 거 아니죠?"
"일단은 대장님이 정확하게 알아보고 바로 연락 줄게. 일단 내가 알기로는 생리 마지막이라면 임신이 안 되는 게 맞는데 너희들은 어리니까 확실하게 안된다는 말은 못해. 우선은 지금 시간이 늦어서 산부인과도 못 가니까 정확하게 알아보고 연락 줄게."


이 상황에서 어떻게 여자 친구를 바꿔 준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다고 여자 친구이라는 이놈도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전화기를 받아서는 태연하게 내게 '안녕하세요? 아저씨'라는 말을 한다. 하여튼 이놈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생리 주기 마지막이라면 임신은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생리주기가 끝나면 배란기가 되기까지 일주일은 임신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도 정확한 처방을 위해 평소 친하게 지내는 보건 선생님께 연락드렸다. 주말이라 너무 미안했다. 


"맞아요, 그런데 학생이라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안심할 수는 없어요. 일단 내일 수업 마치고서 꼭 병원 가서 진단받으라고 해야 해요."
"진료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못돼도 20만 원가량은 들어갈 거예요"
"적은 돈이 아니네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이 맞았다. 


다행이었다. 

주말인 관계로 녀석과의 대화는 월요일 방과 후 시간에 이루어졌다.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어느새 목소리가 밝아져 있었다. 방과 후 둘은 만나서 병원을 갔다고 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피임약을 복용했다고 태연하게 내게 말해주었다. 덧붙이고 싶지 않아도 꼭 해야 하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무슨 말이었냐고요?



"관계를 할 때는 반드시 콘돔을 착용해야 한다."라는 말. 거기에 안심이 되지 않아 최근 유행하고 있는 생리주기 알려주는 어플까지 링크를 걸어주었다. 


이런 전화를 받아도 놀라지 않는 이유가 슬프다. 


아니 순응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하고 버티고 있는 내가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느껴진다. 결론은 또 가정에서 비롯된 것인데 말이다. 한 연구 결과를 보면, 내가 경험한 청소년들을 보아도 통계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정이 불우할수록 청소년들의 성경험 그래프는 올라간다. 이유야 안 들어도 뻔하지 않을까? 그들은 사랑을 터무니없이 못 받았으니까. 어찌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보태주고 있는 거라고 우기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사실상 사랑을 받기 위해 성관계를 한다 라는 논리는 궤변이다. 


청소년들의 성관계에 있어서 결정권은 남학생이 아닌 여학생에게 있다. 적어도 상담한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남학생들이야 늘 야한 생각을 달고 살고 틈만 나면 수작을 부려볼까 고민하고 있는 놈들이다.(물론 표현이 과했다. 인정한다.) 그런데 여학생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철저하게 순결을 지키겠다는 학생과 한 부류는 사랑하는데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다.  딱히 첫 번째 부류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두 번째 부류, 그러니까 성을 허락하는 부류와 관련해서는 생각나는 사례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레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이야기는 여학생에게 성을 허락한 사실 자체가 매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한번 성관계를 맺게 된 여학생은 횟수와는 상관없다는 논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이 열 번, 백번과 다를 게 없다는 꽤 간단한 공식으로 성을 허락한다는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학생들에게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잘못된 생각이고 위험한 생각이다.


청소년들에게 제공되는 성교육에 대해 딴지를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부르짖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나라면 무엇보다 "너의 몸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가르칠 것이다. 결국 성은 예민한 신체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고, 그러한 결과가 신체적, 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게 뻔하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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