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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May 27. 2017

아버지를 가정폭력으로 신고합니다.

대장님, 더 이상은 못 참겠습니다. 

최근 청소년들과 SNS 상담을 하다 보면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신음하는 친구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의 일방적이고 독재적인 힘과 욕설 앞에서 저학년 친구들은 당하고만 있고,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그 아버지의 멱살을 잡는 사례가 많아졌다.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거 인정한다. 

마치 피천득의 '인연'에 나오는 구절처럼, 만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라는 문구도 아니고. 


이렇게 해서 또 그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2013년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만든. 올해로 어느새 5기를 맞은 청소년 단체. 청. 바. 지.(청소년이 바라는 지구대 줄임말) 동아리를 첫해 시작하면서 당시 활동했던 특성화고 남학생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인사를 받았다. 


"대장님, 저 기억하시겠어요? 청바지 동아리 했던 박**입니다."
"당연히 알지. 이게 얼마만이니?" 


3년 만이다.

청바지 동아리를 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했던 학생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두어 번 고민상담을 해 준 기억도 있고, 훤칠한 키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멋을 부리지 않은 헤어스타일을 지녔던 학생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말투가 부드러운 친구였던 것 같다. 


여전히 말투는 공손했다. 그동안 대장님 소식은 페이스북에서 자주 보고 있다고. 지나가는 택시에도 대장님 얼굴이 나와 있어서 많이 유명해졌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는 자주 연락도 못 드리고 이렇게 무슨 일이 있어서야 연락드리는 것에 대해 꽤 많이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3년 만에 연락 온 게 청소년 기준에서는 오랜 시간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나를 찾은 이유는 인사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야기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가족 살림을 아버지께서 도맡아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바깥일은 반대로 어머니께서 경제적인 역할을 도맡아 하셨다고 했다. 보통의 가정과는 조금 다른 형태였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그런 살림만 하시던 아버지께서 작년부터 술만 드시면 집에 있는 집기류를 집어던지고 심지어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행동으로 최근 2년 동안 텔레비전을 세 번이나 바꾸었을 지경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더 큰 문제는 아버지의 폭력이 어머니와 자신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막내 여동생에게까지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도 참을 수 있다고 했고, 자신도 이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회사에 다니는 입장이라 아버지의 폭행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막내 여동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특성화고에 다니고 있어서  취업공부도 해야 하는 데 여동생의 정신적인 상처가 너무 걱정된다고 했다.    



끝내 해광은 울음을 보였다. 

애써 침착하게 이야기를 잘한다 싶었는 데 끝까지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마음이 애잔했다. 마주 보고 있었다면 등이라도 두드려 주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울음이 감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 잠시 숨을 고르고 내게 침착하게 원하는 것을 말했다. 그래서.


"대장님, 아버지를 가정폭력으로 처벌하고 싶습니다."


처벌을 위한 절차를 이야기하자면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간단하다. 아버지의 폭력이 있을 때마다 가정폭력으로 112를 눌러 신고하면 된다. 그러면 체포된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것이고, 그 결과로 처벌이나 처분이 내려지게 될 것이다. 처분 뒤에는 관할 경찰서에서 가정폭력 가정으로 별도 지정하여 지속적인 보호까지 지원해준다. 사안에 따라 가정과 분리를 내리는 처분도 있어 심각한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신고를 해서 사법제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 학생의 아버지는 경제생활을 안 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아비는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자존감이 무너져 재생할 수 없는 상태까지 온 것으로 나는 보았다. 게다가 40대 후반의 나이를 고려하면 자존감 상실에서 오는 우울증도 한몫 거들었던 것으로 보였다. 평상시에는 평범한 아버지였다가 술만 마시면 괴물로 바뀌는 성향도 아버지의 우울증이 세차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아버지랑 단둘이 깊이 있게 이야기 한 적 있을까?
"아뇨, 제가 아버지랑 이야기하는 걸 싫어해서요..."
"그럼 한 번만 하자. 최대한 빨리 아버지와 너 둘만의 대화가 있었으면 좋겠어. 정확하게 말하면 아버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히 있을 거야. 그 이야기를 한 번만 들어주면 어떨까?"
"죄송한데 자신이 없어요." 


대화는 필수적이다.

아버지의 폭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버지와의 진솔한 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야 네가 후회하지 않는다고. 아들이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고민. 아버지는 그 고민을 풀 수가 없어 술에 의지했을 것이고, 그런 술은 분명 아버지를 아주 세게 변화시키는 돌연변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는 어찌 보면 처벌과 배려를 결정하는 중요한 대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대화를 통해 정말 아버지가 가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안했고, 학생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적어도 나중에 있을 법한 감정적인 부산물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대화는 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물론 그렇게 대화를 하고도 진전이 없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여동생을 위해서라도 112로 신고를 하는 것으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다행히 학생은 나의 제안을 이해해주었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아버지와 대화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서 학생은 내게 작은 부탁이 하나 더 있다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자신이 몇 년 전 대장님한테 상담을 받고 힘을 얻은 것처럼 지금 걱정하고 있는 여동생에게도 상담을 해주면 안 되겠냐고. 안될 건 없지. 상담을 하기 전에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오늘이라도 여동생을 만나면 나의 연락처를 알려주라고 했다. 사실은 나도 마음이 크게 쓰이는 사람은 학생도, 어머니도 아닌 막내 여동생였으니까.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메시지를 받았다. 오빠한테 소개받은 여동생이라고 했다. 그런데 미지는 공교롭게도 나의 연락처에 지난해부터 저장되어 있던 친구였다. 메시지를 보는 순간 너무 반가워서 바로 전화를 했고, 그 친구도 오빠한테 내 이름을 듣고 나서 무척 놀랐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했고,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앞으로 여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 내게는 중요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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