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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Oct 22. 2017

수제 케이크는 누가 보냈을까?

청소년 사용설명서 - 포돌이 수제 케이크를 보낸 학생을 찾습니다

청소년 업무를 한다는 것은 '주말이 뭐예요?"라든가 "주말이 먹는 건가요?"라든가 하는 썰렁한 농담을 너무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10월 21일. 올해로 72살이 되는 '경찰의 날'은 토요일이었다. 맞다. 토요일은 토요일이지 나처럼 청소년 업무를 하는 사람에게 '주말 : 쉬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전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만이 있다는 것도 아니다. 


토요일 아침, 

지역 사회복지 기관에서 진행하는 기부를 위한 '프리마켓'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경찰서로 출근해서 함께 활동하는 청소년들을 만나 행사장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주말인데도 웃으며 아이들과 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은 계절에서 먼저 찾는 나만의 패턴이 있다. 손에 잡히는 가을바람과 파아란 하늘. 뭐 이런 시각과 촉각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끌어낸다. 좀 하다 보니 꽤 익숙하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행사를 마치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사무실을 찾았을 때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연분홍 케이크 상자를 마주했다. 마침 당직하던 수사팀 반장님이 지나가면서 말을 건넨다. 어느 여학생이 서 주임한테 주려고 여태껏 기다렸다가 결국 못 만나고 케이크만 놓고 가겠다고 해서 자리를 알려줬다는 것이다. 누구였는 지 물어봤지만 이미 SNS 메신저로 연락을 해놔서 알고 있을 거라고 해서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연락 온 거 없었는데.


상자를 여는 순간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학생의 수줍고 서투른 손때가 묻어 있는 수제 케이크였다. 그것도 경찰의 날이라고 '포돌이' 그림을 생크림으로 직접 그려서 만든 케이크.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수제 케이크. 와우... 와우...


그렇게 멍하니 서 있다가 바로 케이크를 건네받은 반장님에게 달려갔다. 케이크를 가지고 온 여학생의 생김새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여고생 같았고 착하고 이쁘게 생겼단다. 이런... 내 참... 수사관이라면 당연히 신장이 어떻게 되고 체격은 어떻게 되며 얼굴은 어떤 형이고 혹시라도 특정할 수 있는 특징이 있는지 그 정도의 설명을 기대했건만. 그냥 


"착하고 이쁜 친구던데?" 

 

케이크 상자 안에는 카드도 없었다. 아마도 수줍음이 많아서 자신을 밝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서프라이즈를 위해서 일부러 자신을 밝히지 않고 나중에 짠~ 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왜냐하면 청소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놈들이니까.


청소년 동아리를 운영하, 청소년 경찰학교를 운영하고 거기에 열개가 넘는 학교를 담당하면서 평소에 같이 만나서 활동하거나 아니면 SNS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만 해도 수천 명이 넘는다. 아마도 그중에 한 명일 것이다. 그런데 반장님이 미운 건 내가 아는 그 수천 명의 남. 여학생들은 모두 착하고 이쁘기 때문이다. 도저히 특정할 수가 없어서  그냥 연락 오기만을 기다렸다.


생각은 오래전에 했을지도 모르겠다.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학생은 아침부터 분주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제 케이크를 만드는 곳에 미리 예약하고 가서 '포돌이' 디자인을 그려가며 노력했을 것이고, 시행착오 끝에 이렇게 이쁜 수제 케이크를 만들었을 것이다. 작업시간만 해도 2시간은 족히 됐을 것이다. 


이 케이크가 무엇을 말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어찌 보면 신기할 정도로 타이밍이 잘 맞는다는 생각도 든다. 누가 말해주지 않았는데도 항상 피로가 절정일 때면 청소년들은 이런 감동을 준다. 정말 신기하게도. 

앞으로도 나는 똑같을 것이다. 

그들이 먼저고 그들을 위한 경찰관이 될 것이다. 그냥 거창하거나 화려한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옳다고 말해주고 숨지 말라고 할 것이다. 네가 해낸 거라고 말해 줄 것이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줄 것이다. 그리고 넌 정말 잘 될 거야 라고 말해 줄 것이다. 


그나저나 이 케이크를 어떻게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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