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illy May 31. 2016

민시, 2016년 6월

-손발-

손발


이 시를 떠올렸을 때가 아마 스무살,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시집 하나 달랑 들고 대입 실기 시험장에 도착했을 때 였을 겁니다.

 주변을 보니, 다른 친구들은 각종 유인물과 참고서적등, 수많은 자료를 꺼내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준비하는 시간동안 저는, 가져간 기형도 시인의 시를 몇 편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에 과연 시가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가 싶었고, 주변 친구들이 신기했습니다. 자만했고 불안감 같은 건 없었습니다. 물론 그 결과는, 예비번호가 전부였습니다. 


 그 때는 그 예비번호에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준비하지 않고 그정도면 잘한거라면서, 어떻게든 떨어진 자존심을 들어올렸습니다. 최종 발표가 난 그날 밤, 자기전에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내 합리화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던 친구들의 노력조차 가벼이 생각했는가에 대해. 제 첫 시짓기 시험을 반성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당시 그 예대의 시 주제는 '손' 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주제를 쥐어주고 시를 써보는 것은 처음이라 꽤나 재밌었습니다. 구상하는데만 한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한참을 난감해하다가, 주제를 '손과 발'로 확장해서 써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바로 떠오른 문장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였습니다. 이 말이 당시의 제 맘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시험장의 분위기에서 잠시나마 유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뻗어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정한 소재는, '진짜로 손발이 필요없어서 떼어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2주 전, 기억을 더듬거리며 써봤습니다. 시험이 끝난 뒤에 적어놓았던 메모를 다시 열어봤고, 신기했습니다.진짜로 손과 발이 없는, 손과 발을 떼어낸다는 발상이 아직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새롭게 보였습니다. 만물이 나쁜 면만 있는 것이 아닌데, 아마 떼어내고 나면 후회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일면만 보고 떼어내 버리는 시의 주인공이 바보같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떼버리면, 앞으로 밥은 어떻게 먹고 놀러는 어떻게 갈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후회하는 내용을 뒤에 추가했습니다. 


'당장' 어떤 한쪽만 보고는 부정적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순간의 짧은 생각으로, 이후 크게 후회할 행동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

 이 작은 시를, 지금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Copyright ⓒ 2016 민시 All rights reserved 


#시 #자작시 #감성 #6월 #손 #발 #힐링 #변화 #부정 #긍정 #2016




 추신,

 그렇게 대학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만, 여전히 시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 실감하는 것은 시는 대입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족하든 넘치든 인생공부를 통해서만, 삶과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더 많이 겪어봐야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민시, 2016년 5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