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나라

by 미누


무늬만 무난한 아이


나는 별난 아이였다.

아니, 사실 그 반대였다. 나는 무난한 아이였다. 자라는 동안 크게 말썽은 피워본 적이 없었다. 무난한 선택을 해왔고, 무난한 옷, 무난한 인간관계.... 심지어 입맛까지 무난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반대였다. 무늬만 무난했던 거다. 늘 마음 안에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으니까.


'이번 해에는 어디도 가지 말자.'

올해에는 예상치 못한 지출이 많았다. 통장 잔고를 샘 하면서 나는 스스로 다짐했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집 근처를 탐험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스스로 철회한 뒤, 자연스레 여행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엄마. 이번에는 어디로 가?"

작년에 처음으로 필리핀을 같이 간 아이는 올해도 비행기를 타고 싶어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그래, 아이가 좋아하는데, 뭐 통장잔고야... 또 채우지...'

아이를 핑계 대며 사실은 내가 더 설레어서 동남아, 제주도, 강원도 밤잠을 반납하며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이번에는 집에서 가까운 거제도로 하루를 떠났다. 그러나 그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어 돌아왔다. 떠난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곳을 알아간다는 것, 난 어쩌면 탐험을 지속하고 싶어서 더 많이 돈을 벌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제 세상 곳곳에 한국사람이 없는 곳은 찾아볼 수 없다. 앉아서 티브이만 틀어도 온 세계 곳곳을 누벼 주기에 집구석에서 고생하지 않고도 갖가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게다가 이제 한국도 K열풍으로 인해 엄청난 위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 여행객을 반기고, 친해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내가 여행을 떠났을 그 무렵에는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다.


한국? 그게 어디 붙어있는...?

중국, 일본에 기대어 아시아의 어느 작은 나라... 그게 다였다.


한국말, 한국음식, 한국지리, 학교, 집, 늘 만나는 친구들....

어쩌면 나에게 여행이란 내가 타고 태어난 모든 것들을 자연스레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는지 모르겠다. 나의 identity를 다른 나라에서 테스트해 보는 실험실 같은 곳 말이다.

사과는 언제나 사과다. 사과가 배 밭에 간다고 해도 사과인 것처럼. 나도 그랬다. 외국에서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그 느낌이 이방인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다는 느낌, 그러니 어차피 너와 다른 내가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선택할 수 있는 일종의 권리이자 의무를 부여받은 것 같았다. 이는 그만큼 내가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인간이었던 것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사실 나는 20년 내내... 무늬만 무난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스무 살 이후부터 나는 해외에 나가 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의 계획이 좌절된 후 한국에 남은 내게 삶은 꼭 흑백티브이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칼라 티브이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뭘 해도 재미가 없었고, 뭘 해도 의미가 없었다. 그런 내게 돌파구는 여행이었다. 그래, 여행만이 내가 살 길이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항상 비슷한 시각, 당시에는 신도시였던, 내가 살던 동네를 정중앙으로 가로지르는 기다린 길을 나는 걷곤 했다. 밤의 산책은 대략 1시간이 넘었다. 저녁으로 먹은 음식들이 서서히 위를 통과하여 소화될 무렵 나는 차분해진 마음이 되어 내일의 여행을 기다렸다. 꼭 '어딘가'일 필요는 없었다. 그냥, 집이 아니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장소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더 이상 어린이도 청소년도 아닌, 성인의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인도, 그리고 인연 그리고 다른 인생들



'어떤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라고 내게 묻는 사람은 없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면, 24살에 떠난 인도여행이 아닐까 싶다. 그전에도 여행을 다녀온 곳은 있지만 인도처럼 강렬하게 혼자였고, 인도처럼 열렬하게 새롭진 않았던 것 같다.


'언니, 잘 살고 있어?'


에펠탑 사진과 함께 최근에 결혼한 사람과 산티아고를 다녀왔다며 H가 연락이 왔다. 늘 같은 나의 일상에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같은 그녀의 안부.


인도에서 만나 두 달을 꼬박 함께 다녔던 H는 내게는 어린 왕자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 나는 여행메이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주도적이었지만 강요하지 않았고, 언제나 자유로웠지만 안전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남자친구와 이별을 하고 왔다고 했다. 그 이별이 그녀를 세계에 데려다준 촉매제가 될 줄은 그녀도 몰랐겠지.


자이푸르의 사막에 도착한 첫 날밤, 나는 알록달록한 인도 의상을 입고 게스트 하우에 등장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각자 혼자 온 우리는 한 팀이 또 다른 두 명과 함께 한 조가 사막 투어를 떠났다. 내 낙타를 끌어준 인도 남자는 나이가 나보다 훨씬 어렸지만 고생을 너무 해서인지 한 40은 되어 보였다. 이빨이 몇 개쯤 빠져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사막의 별이 담겨 있었다. 그가 이끄는 낙타를 타고 나는 그가 구워주는 난을 먹었다. 처음 만난 우리들은 별이 쏟아지는 사막의 밤에, 씁쓸한 모래 바람을 등지고 누웠다. 멀리 떠난 내 고국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나의 가족들은 내가 지금쯤 사막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고 누워 있는 것을 알까. 아마도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나는 피식 웃었었지. 그날의 사막 투어를 마치고, 나는 그녀를 따라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의 identity가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나의 자유로 오라'고.


우리는 그곳을 떠나 맥그로드 간즈라는 인도의 북부 지방으로 갔다. 한 여름에서, 한겨울이 되었다. 모피를 파는 인도라. 인조 모피를 입고 신혼여행 사진을 찍는 한 인도 부부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낄낄 대며 웃었었지. 그러나 오래 웃기엔 우리의 옷은 너무 얇아서 우리도 트럭에서 파는 싸구려 재질의 외투를 사기 위해 어서 이동해야 했지.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장면에도 웃기고, 신났었다. 빨랫줄과 물은 생명이었고, 밤에 두터운 여행가방을 풀었다가 찬 물에 샤워를 한 후 도마뱀이 나오는 작은 방에서 수다를 떨다 잠들고, 다음 날 다시 인도의 어느 도시를 향해 출발하는 우리를 반기는 것은. 며칠간 이어지는 기차, 그리고 한가득 사람들을 실어 떨어질 듯 떨어질 듯 아슬아슬 높고 좁은 산길을 헤치는 버스, 그리고 어디에 가도 기대보다 더 많은 사람들.

어쩌면 인도에서 만큼이나 관심과 각광을 받은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인도 사람들은 우리를 환대했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사기와 배신도 넘쳤다. 나는 여러 번 사기를 당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어서 무사히 집으로 올 수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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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에서의 2주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먹던 아침,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강, 골목골목 지나가다 보면 보이는 인도식 요구르트, 그리고 화덕에서 굽히는 난, 또 사람들. 그리고 소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곳의 풍경이 그려질 때가 있다. 내가 몇 년을 살았던 곳도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왜 인도의 어떤 거리,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들은 아직 선명한지 잘 모르겠다.


세상을 반바퀴 돌면 정반대의 사고와 관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겠지. 한국에서 나고 자라 생긴 한국적 사고, 그리고 내게 보여주던 세상의 모습, 사람들의 생각이 지구본처럼 휘휘 돌았다.


나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모든 옷을 다 버렸고, 신발에서 옷, 그리고 머리까지 인도에서 해결했다.

생각보다 그들의 문화, 생활에 동화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다들 그런 건 아니었다. 나와 함께 같이 출발한 한 언니는 일주일을 못 견디고 다시 한국으로 떠났다. 그 언니도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온 여행이라고 했는데, 한 사람은 바로 집에 가버렸고, 또 나중에 만난 H는 여행에 여행을 연장했다. 결국 H는 인도에서 만난 프랑스 남자와 함께 프랑스로 떠났고, 오래전 그 사람과도 헤어져 새로운 인연과 결혼을 했다.

프랑스에서 삶을 잘 꾸려가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정해진 길은 없다고 믿게 되었다. 그녀는 그때 그때 자신의 선택을 믿었고, 그래서 물론 고단한 것은 감수해야 했지만. 프랑스 에펠탑이 보이는 스튜디오에 살면서 일도 하고, 사랑도 얻었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도 아는 나이 즈음은 되었다.


"인도가 너무 그리워."


H가 프랑스에서의 삶에 정착한 후, 가끔 나에게 묻곤 했다. 인도가 그립지 않냐고.

10년 후에는 못 가본 인도 남부를 여행하자고 약속했는데. 나 또한 잠시 한 곳에 정박해 있는 중이다. 오래 떠나기엔 내가 지금 손을 봐야 할 곳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언젠가는 인도의 어느 곳에 분명 도착해 있기를. 단지 그때가 너무나도 늦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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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나는 또 다양한 곳을 떠나 헤맸다. 그런데 인도처럼 기억에 남는 여행은 별로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인도의 풍경과 문화도 그렇지만 거침없는 우리 여행 팀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행에서 만난 동반자와 뿔뿔이 흩어지고 난 후 나는 혼자 일주일정도를 여행했다. 혼자 밤 버스를 타고 간 아그라에 가서 어떤 미국 여행자를 만나 하루 같이 동행했었다. 혼자라서 매우 자유로울 줄만 알았는데, 마치 한쪽 날개가 똑 떨어져 나간 것처럼 허전했다. 귀국을 위해 델리에서 택시를 타던 날, 나는 나머지 한쪽 날개마저 똑 떨어져 버렸다. 공항으로 가던 차 안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렸었다. 대체 그 연유가 뭔지 모르겠다.


왠지 다시 돌아가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는 그게 그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젊음의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예견하는 나의 촉 때문이 아니었을지 싶다.


푸쉬카르의 호수에 앉아서 어떤 이의 묘기를 바라보던 어느 저녁, 나는 인도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흥정의 기술은 늘었고, 간단한 인도 인사도 할 수 있었다. 나는 나의 나라, 나의 이름, 나의 소속 보다 바로 여기서 내가 얼마나 마음을 열어놓는가가 바로 인생을 받아들이는 태도임을.

수많은 여행객들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광활하고 신비한, 그래서 경이로왔던 색다른 문명을 살게 해 준 인도에게서 배웠다.


그 여행 이후로 나는 탄력을 얻어서 혼자 이탈리아 기차 여행도 떠나고, 홍콩, 일본, 베트남, 다른 유럽의 나라들도 도전했다.

인도처럼 긴 여행은 아니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점점 더 나이가 들어서였을까.

아마도 내 마음의 문이 옛날만큼 넓지 않았는지도 모르겠고, 동행자를 잘 못 만나서일지도 모르겠다.

24살, 그때만큼 마음이 활짝 열리지 못했던 건지, 인도만큼이나 돌아올 때 눈물이 날 만큼의 강렬한 여행은 해보지 못했다.




나에게 이제 여행이란


삶은 바쁘게 지나갔다. 기차를 탔는데 자꾸만 역에서 역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대학, 대학원, 또 직장, 출산, 나이가 드는 만큼 내 열차는 점점 고속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볼 새도 없이 휙휙 지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일 년이 지나가 있었고 새 다이어리를 사려고 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


나는 나의 기차 안에서 내 삶을 손보고 있었다. 다시 밤에 했던 나의 밤 산책을 시작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아이가 일어나기 전, 나는 산책을 한다. 그건 글로 산책이다. 자유는 어디나 있었다. 몸이 못 떠나면 정신이 떠난다. 누구나 자유로의 회기를 꿈꾸니까.


노인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누가 그러는가.

사람의 정신은 어디에 매이지 못한다.


오랜 여행의 경험으로 나는 이제 더 이상 여행에 목마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버릇처럼 휴가에 갈 곳을 찾는다. 이제 나의 여행메이트는 내 아들이다. 그간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하는 듯, 이제 자기 짐도 들고, 엄마 문도 열어주고, 잔 심부름도 해주고, 무엇보다 죽이 척척 맞는 말동무가 되어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꿈꿨던 일상은 신기하게 빠르게 찾아온다.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는 또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는 예전처럼 즉흥적이진 못하고, 나이도 있어서 이십 대의 패기로 버텼던 궁핍도 견디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아이도 있지 않은가.


난 허리띠를 졸라맨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내 삶으로 들어가서 헤엄을 친다.

숨을 내쉬러 물 밖으로 나온다. 어푸.


뉴질랜드, 멕시코, 페루, 아프리카, 프랑스, 그리스



여행자의 밤이 아름다운 건, 오늘 여행의 마지막 날임을 알고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 그 시간의 추억임을 알기 때문이다.


속살같이 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이제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만큼 커가는 아이의 키에 하루하루의 속도를 체감한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서 떠난다.


우리가 떠난 자리가 그토록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서.

꼭 떠나야만 했던 지난 어떤 시절.


이제 나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떠나야만 알려주는 여행이라.... 나는 떠난 후에 답을 알게 될 거 같다.




여행자의 나라



거제도의 밤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첫날 도착한 숙소에서는 서울에서 온 어떤 무명가수가 트럼펫을 불고 지나간 팝송을 불렀는데, 더운 여름에도 그의 곁에 옹기종기 모여들어 춤사위까지 보여주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또다시 여행자의 나라에 접속한 것 같았다.


그래, 나는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나의 아이덴티티를 알기 위해서 떠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제는 소중한 사람들과 정말로 아름다운 절경을 눈에 꼭 품고, 열심히 번 돈으로 탐스럽게 진열된 음식들을 골라 먹고 난 후 천천히 낯설고 새로운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먹은 음식을 소화하고 싶다.


젊음의 갈망과 갈등은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그때의 기억이 또렷이 나타나, 또다시 나를 데려다 놓는다.


바로 낯설고 아름다운 여행자의 나라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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