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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가 필요한 날

by 미누

첫 직장에서 만난 찐빵은 베스트프렌드가 되었다. 그녀는 예쁘고 능력도 출중한, 나와 동갑내기 친구였다. 첫인상은 도도하고 세련된 도시녀였지만, 함께 지내며 서로 닮은 점이 많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과 있으면 금세 지치던 내향적인 우리는 점심시간마다 둘만의 카페를 찾아 수다를 떨고, 못다 한 이야기는 메신저로 이어갔다.


강강약약이던 그녀는 강한 부장님에게 대들다 혼이 나고, 결국 지방으로 발령을 받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성향이었지만, 결국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안 하면 결국 나중에 더 많이 해야 돼. 지금 그냥 해.”

그녀의 말 덕분에 나는 몇 가지 일을 해낼 수 있었고, 그것은 내게 큰 배움이 되었다.


우리는 언젠가 함께 글을 쓰자고도 했다. ‘만두와 찐빵’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내자, 혹은 블로그를 만들어 교환일기처럼 이어 쓰자고. 하지만 나는 결국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했다. 오래전 일이 되었지만, 아직도 ‘찐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녀가 떠오른다. 찐빵처럼 하얀 피부, 결혼식 날 눈물이 나던 기억. “이렇게 어여쁜 여자를 데려가는 남자는 복 받았지” 속으로 중얼거렸던 기억. 그러나 그녀는 딸이 초등학생이 되던 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당시 우리는 서로의 불안을 나누며 버텼다. 젊음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는 볼 수 없지만, 그녀는 여전히 가끔 내게 다가와 말한다.

“그냥 하는 거야. 걱정은 다 쓸데없어. 근데 나도 사실 그래.”

긴 머리를 쓸어 넘기던 우아한 손동작, 호탕한 웃음, 조곤조곤한 말투.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아마도 나는 그녀가 그리운가 보다.


사람은 문장으로 배우지 못한다. 삶으로 배우고, 죽음으로 가르친다. 그녀의 죽음도 내게 그랬다.


죽을 만큼 싫은 건 하지 말고.
잘하고 싶은데 두려운 건 그냥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뜨는 아침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다는 것.


어느 날부터인가, 어제의 짐을 오늘까지 지고 가는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숨을 끝까지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쉰다. 떠났던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어떤 것도 나를 해치지 못한다. 두려움은 나를 죽이지 못한다. 그러나 후회는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후회 없는 하루를 살았는가.
그렇지 못했다면, 내일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오늘 나의 기분을 망쳐버린 사건도 지나가고, 잊힐 것이다. 그러니 내일 아침에는 핸드폰을 켜지 말고 좋은 음악을 틀어야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야지. 내 숨을 느끼며, 내 안의 평화를 꺼내야지. 그 평화의 랜턴으로 하루를 비추어야지. 그러기 전에는 삶 속으로 뛰어들지 말아야지.


내일은 더 행복해야지.

찐빵과 했던 약속도 잊지 말아야지.
두려운 건 빨리 해버리는 게 낫다는 그 말, 꼭 기억해야지.
그리고 사랑해야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어쩔 수 없는 수많은 것들에 아쉬워하지 말고, 내가 살 수 있는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에 충실해야지.


그래, 너의 말처럼 삶은 쏜살같이 지나가니까.

지나고 보면 정말 별것 아니니까.


문득 그리운 얼굴이 날 찾아온 걸 보면, 또 다시 용기를 낼 때가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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