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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Jun 27. 2023

악몽의 진실



자넨 번번이 자신이 별난 사람이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책하는데, 그런 생각을 버려. 불을 들여다보고, 흘러가는 구름을 응시하고, 그러다가 내면의 소리가 들리거든 즉시 그것들에 자신을 내맡기게. 


헤르만헤세, 데미안




 나는 한동안 같은 꿈을 반복적으로 꾼 적이 있다. 매번 배경은 학교였다. 그리고 나는 늘 시험을 앞두고 있었고 다음 날 중요한 시험을 목전에 둔 상황. 그리고 언제나 비슷한 이유로 내 실력만큼 시험을 치를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게 아닌가. 한 번은 시험 과목 교과서를 학교 안 사물함에 두고 사물함 열쇠를 잃어버린 적도 있고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과목이 바뀐 걸 나만 몰랐던 때도 있고, 다음주가 시험인 줄 알고 여유를 부리다가 허둥지둥 독서실로 향하던 때도 있고.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나는 잘할 수 있는 데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내 마음은 초조 불안 억울한 감정에다가 플러스 '대체 나는 왜 이런 거지'하는 죄책감까지 얹혀 최악의 기분으로 잠을 깨곤 했다. 사무치는 감정을 느끼는 날에는 언제나 그 꿈을 어렴풋이라도 기억했다.  깨고 나서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 꿈이구나.’

 그리고 모든 감정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왜 그런 꿈을 반복적으로 꾸었을까. 어렸을 때부터 풀지 못한 감정의 숙제가 내 몸을 휘감고 있는 듯 느껴졌다. 

 묵혀둔 김치는 맛이라도 있지. 너무 오래 묵혀둔 내 마음 안에 감정은 그야말로 시체가 되어 딱딱하게 내 마음의 명당에 뿌리 박혀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시험에서 해방된 어른임을 알면서도 왜 종종 내 무의식은 그 고통의 감정으로 나를 데려다주는 걸까? 단지 시험에 대한 공포였을까?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더 많이 연애했어야 했다. 나는 고백도 했어야 했다. 나는 더 많이 차였어야 했다. 나는 더 많은 일을 해봐야 했다. 나는 더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어봐야 했다. 나는 더 자주 웃어야 했다. 나는 때로는 다른 길로 가봐야 했다. 나는 저질러 봐야 했다. 그리고 더 후회해봐야 했다. 

 어떠한 길이든 한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하지 않았음에 대한 후회였다. 












 파엘로 코엘료의 단편집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읽었던 글이다. 한 기자가 자신이 죽었을 때 남기고 싶은 단 한마디의 말을 꼽으라고 했는데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살아서 죽었다.’ 

 그는 그의 주변에서 죽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을 너무 많이 보았다고 했다. 열심히 살고 매일매일 바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살아있는 채로 죽을 수 있을까? 그렇게 살고 싶다던 그 기자는 그렇게 살고 있을까? 

 나도 그렇고 내 지인들도 그렇고 그냥 그럭저럭 잘 살아간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평탄한 길을 걷는 중이라면 나는 과연 나에게 진실했는가 질문해봐야 할 순간이고, 평탄하지 않는 길에 숨이 턱턱 막혀 온다면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 중이라고 토닥여야 할 순간이다. 꿈에서라도 평탄하지 않은 나의 감정들은 인생의 평탄함을 선택한 나의 비겁함에서 올라오는 것은 아닐까. 

 새털같이 많은 나날이 부리는 마법은 그저 남을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핑계를 거부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선택하는 힘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내가 나에게 온전히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다면, 용기를 낼 수 있다. 

 그런 기적을 살기 위해 세상에 온 게 아니라면 대체 왜 수천 년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살고 죽는 걸까. 


 지난한 꿈에서 길을 잃었을 때, 늘 비슷하게 생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 물어봐야겠다.


 나는 나에게 과연 솔직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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