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누 Jun 24. 2023

넘어지자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인도자가 나를 버렸다. 나는 아주 캄캄한 어둠 속에 혼자 서 있다. 나는 혼자의 힘으로는 한 발짝도 걸어 나갈 수가 없다. 오, 나를 도와주오!

 헤르만 헤세, 데미안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에게 학창 시절에 만난 데미안은 인도자였다. 그만큼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각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이 멀리 떠나자 싱클레어는 오롯이 혼자서 고독과 방황 속에 머물러야 했다. 그래서 데미안은 데미안에게 자신을 도와달라는 구호요청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 쪽지를 보내지 않았다.  


 한편 싱클레어는 비슷한 시기에 만난 자신처럼 방황하던 크나우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크나우어는 아마도 싱클레어를 구원자라고 여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같이 그의 방황에서 한 발자국 물러선다. 데미안도 섣불리 아는 채 하지 않았듯, 싱클레어도 섣불리 남의 인생에 끼지 않았다. 때로는 의존하다가도 완전히 독립했다. 그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도 그저 혼자 가야 하는 구간이 나온다. 묵묵히 혼자 걸어가야 하는 그 길은 처절하게 외롭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나의 답을 찾아가야 한다. 


'네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를 찾을 수 없다면 넌 어떤 마음도 발견해 낼 수 없으리라는 건 확실해. '

 데미안


 인생은 동행과 독립의 연속이다. 어떤 이와 동행하는 동안 우리는 삶의 여러 가지를 배운다. 그리고 그를 닮아가기도 하고 한다. 나에게도 데미안 같이 나를 깨 부수는 사람과 크로우너와 같이 내가 끌어주어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간다. 아무리 중요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헤어져야 할 때는 오기 마련이다. 또 아무 인연이 아닌 사람도 지나고 보면 내 삶에 중요한 깨달음을 주고 떠나기도 하였다.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건, 좋은 사람이건, 그 무언가는 남기고 떠난다.








 하지만 정말 어떨 때 보면 나는 어느 누구를 닮아가기도 미달인 것 같다. 그런 한심한 기분이 들면 어깨가 축 늘어지곤 한다. 대체 나는 누군가를 모방하기에도 불합격이란 말인가. 어떨 때는 솟구치는 자신감이 생기다가도 어떨 때는 그저 밥숟가락 들기에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런 감정들이 왜 나왔는지는 모른다. 어디서 흘러왔는지도 모른다.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그래프 속에서 나는 중심축을 못 잡고 그저 시계추마냥 좌우를 왔다 갔다 하는데 인생을 허비한지도 모르겠다. 

 똑딱똑딱 시계추가 왔다 갔다 하는 그 수만 번의 시간 동안 나의 생은 닳아갔다. 시간이 빠져나가는 게 서러운 것은 아니었다. 시간은 쌓여가는데 내 삶은 변함없다는 것이 서글펐다. 윤기는 더 사라지고 색은 퇴색된 듯 보였다. 아무리 흔들리며 피는 것이 꽃이라고 해도 흔들리기만 하면 살 수가 없다. 

 흔들리면서 나아가야 한다고 한들, 흔들리기만 하면 되겠는가. 나를 잡아준 건 그때 손을 내밀어준 나의 가족, 나의 친구,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짧은 인연들이었다. 흔들리기만 하는 나를 곧추세운 건 누군가의 조언, 그리고 위로, 그리고 사랑이었다. 

 때로는 나마저도 나를 잡기 어려울 만큼 흔들릴 때가 있다. 내가 흔들리는지도 모르고 흔들어 대는 데로 흔들린다. 하지만 그럴 때 삶의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누군가가 나에게 손을 내민다면 그 손을 잡아야 한다.  내가 살아온 방식을 내려놓고 누군가가 뻗은 손을 잡아 다시 일어날 때, 우리는 또 다른 나의 가능성을 만날 수 있다.  

 내가 돌부리에 걸려 완전히 넘어지자 삶의 모순이 반짝 빛났다. 내가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주저앉았을 때 나를 일으켜 세울 누군가의 손을 드디어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 또한 나의 인도자이자 길이라고 마음 깊이 느꼈다.

데미안




 자신의 알을 깨려고 하는 사람은 안다. 

 자신만의 알을 깨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각자의 알을 깨는 것을 서로 돕도록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후자를 위해 전자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 겨울은 봄의 예고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