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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Jun 28. 2023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게으르고 생각하기 싫어하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냥 복종해 버려. 그 편이 쉬우니까. 내면에서 자신만의 법을 느끼는 사람들은 더 어려워." 


 데미안이 주인공 싱클레어에게, 데미안 



아이와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길, 앞서가는 연인 중 여자에게 유독 눈길이 갔다. 패션감각이 남달랐다. 특히나 그녀가 신은 반짝반짝 빛나는 운동화가 내 눈길을 확 끌었다.

'예쁘다.'

내 마음의 소리다. 마음이 가면 눈길이 간다. 아니 눈길이 가면 마음이 간다. 어떨 때는 이 둘은 서로의 동의어인 것 같다. 

 '그래, 운동화 바꿀 때가 되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운동화를 씻을 때가 되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운동화 빨래이다. 이건 정말 힘든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운동화를 자주 빠는 깔끔이도 아니다. 예쁘다고 산 베이지 빛 연한 분홍색 운동화가 회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나의 회색 빛 분홍 운동화와 앞선 여인의 은회색 반짝반짝 운동화는 차마 비교해선 안되었다. 

 '나는 아줌마잖아. 게다가 자주 이사를 다녔고 지금 운동화 살 돈도 없다고.'

그런데 이게 웬걸. 아까 그 빛나는 운동화를 신은 사람이 여기도 저기도 있었다. 심지어 꼬마 아이도 신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운동화를 지나치려던 참에 6살 아들이 옆에서 말했다.

"엄마 이거 이쁘다. 엄마도 사고 싶지?"

 간절한 내 마음은 아이에게도 들리나 보다. 내 마음을 읽고 자기 마음처럼 말하다니. 신통방통이다. 이심전심 신기방기 한 이 운동화는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나는 홀리듯 매장으로 들어가 아이를 앉혀두고 신발을 신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발이 작았다. 내 사이즈는 너무 인기가 많아서 주문해도 언제 받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내가 아쉬워하니 직원이 나와 아들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주로 사는 온라인 매장을 알려주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곧장 나는 온라인 매장을 찾아 회원가입과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 후에 곧장 주문을 했다. 그리고 하루 이틀을 기다렸다. 하지만 또 이건 무슨 일인가. 신발이 너무 큰 것이 아닌가. 신발은 되도록 신어보고 사야 하는데, 그 운동화를 본 이후 뭔가에 홀린 듯 주문부터 한 것이었다. 사이즈가 커서 그런가, 신발만 튀어 보이기도 했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신발은 보고 활짝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우와 엄마. 예뻐요".

 아이의 눈에는 엄마가 하는 모든 것이 예뻐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면 주름 하나가 더 늘어 심란해하는 엄마에게 위로를 건네듯 앞뒤 안 가리고 엄마는 예쁘다고 위로 한 다발을 던져주는 것일까. 아이의 말이 푸근해서 그 말위에서 잠깐 쉬었다. 그리고 나니 내가 뭔가에 홀렸었구나 싶었다. 

 그래 우리 모두는 집단 최면에 걸려있어. 

 그게 나에게 어울리는지, 잘 맞는지 살펴보지도 않고 이성적이고 비판적 사고를 수십 년간 학교에서 배워오고 길러온 시간에 걸맞지 않았다. 그냥 누가 좋다고 하니 그게 이뻐 보이니 덜렁 따라가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유행했던 스키니 진은 깔별로 개어서 조용히 서랍장 제일 아래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중고상품으로 올려도 아마 팔리지는 않을 것 같아서였다. 

 '고마 해라, 많이 묻다 아이가.'

 내 머릿속에는 오래된 영화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이제 그만 집단 최면에서 벗어나면 안 되겠니? 자, 하나, 둘, 셋!









 2023년이 되던 1월 1일, 새벽, 나는 혼자 바다로 향했다. 이글이글 타오로는 해님을 바라보면서 눈곱을 떼지도 못한 채로 수많은 인파 속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달도 해도 별도 어제와 같은 자리에 떠오르겠지. 하지만 나는 이제 다른 자리에 서고 싶다.'

 내 마음이 동그랗게 하늘 위로 떠올랐다. 긴 시간 동안 묶여 있던 마법, 집단 최면에서 헤어 나오고 싶었다. 


게으르고 생각하기 싫어하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냥 복종해 버려. 그 편이 쉬우니까.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한 말처럼, 집단 최면에 걸려있을 때 느껴지는 안전함과 행복이 있다. 그 안전함과 행복을 넘어서서 '나'를 찾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애써야 이룰 수 있다. 공부해야 살아남는다. 나를 낮추어야 한다. 결혼을 해야 한다. 아이는 낳아야 한다. 집은 사야 한다. 노후를 생각해야 한다.'

 경주마처럼 열심히 살아서 결국 모두가 같은 자리에 가기 위해서라면, 왜 경주마처럼 달려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고 내 눈동자에 으스러지는 해가 각인이 되어 동그란 표식이 남을 때쯤 나는 해를 등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손에 쥔 핸드폰이 울렸다. 


 '한 번뿐인 삶, 후회 없이 살자.'


 마음이 덩달아 진동을 했다. 그리고 그 울림이 점점 커졌다. 커지고 커져서 내 마음 안에 있던 해가 팡하고 터져 나왔다. 


 '남과 같은 삶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삶을 살아도 괜찮다.' 


낡은 운동화를 빨아서 조금 더 신어야겠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찾으면 거침없이 지르겠다. 유행을 따라가면 기분은 좋겠지만 뒤쳐진다 해서 나빠질 것은 없다. 잠깐의 기분은 그렇게 잠깐이다. 우체국으로 가서 직접 운동화를 반품하고 돌아오는 길, 유독 홀가분해졌다. 주문을 하고, 택배를 받고, 신어 보고 문의한 후 반품하기까지 꼬박 3일이 걸렸다. 그동안 해가 바뀌었다. 나는 두 해에 걸쳐 고민한 무언가를 해결한 셈이었다. 

 집단최면에서 서서히 걸어 나올 때가 되었나 보다. 또 다른 집단최면에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조금 전에 마음속에서 터져 나온 해처럼 나도 붕붕 날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남과 같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나를 그토록 거세게 짓누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가볍다니, 진즉에 놓을걸. 




이 느낌, 이 생각, 이토록 정확한 내 마음의 좌표를 나는 오래도록 간직하고만 싶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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