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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Jul 01. 2023

꿈을 살듯, 삶을 꾸듯.



길 위쪽 오두막 안에서, 노인은 다시 자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얼굴을 바닥에 대고 자고 있었고 소년이 옆에 앉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는 중이었다. 


헤르만 헤세, 노인과 바다



 H가 꿈에 나타났다. 


 H가 꿈에 나타난 적이 있다. 생전에 항시 단정하고 말이 많지 않았다. H는 가끔, 아니 자주 ‘허허허’하고 웃었는데 그조차도 입을 가렸다. 시원한 웃음조차 누구에겐가 폐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었을까? 

 꿈에 나타난 H는 생전의 모습과는 달라 보였다. 나는 만원 버스에 허리쯤 앉아 있었다. 비좁은 버스 안으로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H와 똑 닮은 게 아닌가. 나는 고개를 들어 ‘H야’하고 불렀다. 하지만 H는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대신 H는 버스 기사를 향해 몇 마디를 붙였다. 두 손에는 악기들이 잔뜩 있었다. 버스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H를 자세히 보았다. 복장은 누추했다. 아마도 일부러 그런 복장을 하고서 떠돌아다니며 악기를 연주하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그의 기쁨인 것 같았다. H는 버스 안의 통로를 걸어 들어오다가 앉아있는 나를 향해 그제야 활짝 웃어주었다. "H"하고 내가 부르니 "응, 그래"하고 전에 없던 웃음을 지었다. 그때 본 H의 얼굴에는 H에게서 보지 못했던 편안함, 기쁨, 자애와 같은 것들이 있었다. 

 꿈은 나의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하니, 그 모습이 H가 아니라 나의 무의식을 비춘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전자라면 H가 자유롭고 행복해서 좋고, 후자라면 나의 숨겨진 욕구를 빨리 발견해서 좋다. 확실한 건 그 꿈을 꾸고 난 후부터 나도 H를 생각할 때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사실이다. 



 티베트를 여행할 때였다. 한 찻집을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다. 눈 덮인 산 그 아래 작은 오두막 같은 집에 간판이 달려 있었다. 커피와 티를 판다는 말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동행들과 한국말로 뭐라고 말하다 보니 뒤에서 누군가가 한국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안녕하세요!” 

 그곳의 주인이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녀 뒤로 현지인 남편이 나와 어색한 한국말로 따라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자연스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여행을 떠났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곳에 정착했다는 이야기는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어렸던 나에게는 매우 생소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어요. 너무 팍팍한 삶."

 눈이 쌓인 산 그 중턱에 자리 잡은 소박한 찻집, 주인이 정성껏 내려온 따끈한 티베트의 차를 설경이 펼쳐진 큰 창 앞에 두자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차에서 피어나는 김을 바라보면서 주인은 나에게 말했다. 유독 열심히 살았던 자신은 행복하지 않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만난 또 다른 자신은 무척 행복했다고. 그래서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을 뿐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차를 여행객들에게 대접하며 살아갈 뿐이라고.

 "대단해요."

 나는 연신 감탄사를 난발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호들갑을 떠는 나를 조용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는 여행을 하고 다시 돌아가 일상에 적응하는 사람이 더 대단해 보여요."

 


 사실 그때 나는 내 실수로부터 도피 중이었다. 나름 인생에서 저질러 본 실수 중에 큰 건을 치른 나는 내가 사는 세상 안에서는 선택지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내 세상 밖의 세상으로의 여행을 선택했다. 떠날 수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선택이었음을 이제는 알았지만. 당시에 나는 그것이 도피라고만 생각되었다. 아무튼 시끌벅적한 델리에서 만난 인도의 첫인상에 몹시도 당황했던 것 같다. 예상을 깬 번잡함과 소란스러움 속에서 택시를 잡는 그 순간부터 생존을 위한 하루하루의 여행적응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좋은 점이 있었다.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한 여행지에서의 발걸음 속에서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도피해 온 멍텅구리 ‘나’는 어느새 사라진 것이다. 외딴 사막 한가운데에서 나는 색다른 풍경 속에 들어와 있었다. 등불이라고는 없어서 칠흑같이 어둡다는 표현이 딱이었던 사막의 밤하늘, 끈적끈적함은 없지만 텁텁함이 밀려드는 이국적인 모래바람, 무거운 나를 태운 연약한 낙타, 우연히 만나 묶여 다니게 된 나를 포함한 여행 무리를 뒤따른 또 다른 무리들, 그 무엇보다 내 눈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듯 숨 막히게 아름답던 밤하늘의 별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나도 늙었고 더 이상 실수를 했다고 훌쩍 떠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이제는 내가 훌쩍 떠났던 그 나라가 간혹 tv에서 나오기라도 하면 옛날의 나를 추억할 뿐이다. 


 해 질 녘 인도의 강가에 비친 노을아래 삼삼오오 모여 있던 젊은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배낭하나를 메고 자르지 못한 머리를 질끈 동여맨 행색이 초라한 여행객들. 하지만 삶의 생생함이 묻어나는 그들의 얼굴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도 그 생경한 풍경들을 내 머릿속에서 다 지우지는 못했다. 


 나는 지금 그녀가 말한 대단한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결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못해서 살았던 삶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조금은 더 안전하고 조금은 더 명확한 삶 속으로 말이다. 무엇이 더 대단한 삶인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꿈에 나타난 H처럼 사는 것인지, 여행 중에 만난 찻집의 그녀, B처럼 사는 것인지... 

 나도 때로는 노인과 바다의 노인처럼 '사자'를 꿈꾼다. 

 설렘의 순간이 파도처럼 잔잔히 밀려오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주 큰일이 아니라도 소소한 기대와 흥분을 느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매일을 설레게 살 수는 없지만, 지금보다는 조금 더 설레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사자'를 잃어버리지 않고, 꿈을 살듯, 삶을 꿈꾸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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