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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Jul 05. 2023

피해를 피해가는 법



나는 그로 인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그는 나로 인해 아무 것도 할 수 없군,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가 이 상태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 한 말이야.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결혼 비율이 점점 낮아지고 출산율도 바닥을 찍었다는 소식은 많이 접하게 된다. 나 때는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한 반에 콩나물처럼 빼곡히 끼어서 수업을 들었는데. 초등교사인 친한 언니가 이번에 맡게 된 자기 반의 학생들은 17명이라고 했다. 

"17명이라구?, 교사들이 편하겠다."

 "그렇지도 않아."

 "한명 한명 더 세심하게 봐줘야 하거든. 조금이라도 자기 아이에 피해가 가면 당장 전화가 오는 세상이잖아."

전화를 건다고 더 잘 봐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도 내 아이에게 혹여 부당한 일이 생기면 전화를 걸 기세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교사생활을 해 본 나도 이런 심정인데, 안의 사정을 잘 모르는 부모라면 더 할 것이다. 

 어떻게 키운 내 아이인데... 선생님이 좀 알아봐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정원이 60명, 가방 놓을 자리도 없더 콩나물 시루 교실에서 자란 엄마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나의 아이는 좀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이런 바램은 엄마로서 당연하다. 콩나물 시루속의 콩나물같이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어쩌면 당연한 바램일지 모르겠다. 



 몇달도 더 된 이야기이다. 근처에 있는 UN 묘지에 아이와 함께 다녀왔다. 집을 나서기 전만 해도 그저 소풍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묘지에 들어선 이상, 그런 기분이 계속 될 수는 없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젊은이들의 무덤 앞에서 어찌 소풍온 것 같을 수 있으랴. 숙연해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나는 설렘을 가라앉혔다. 세계 곳곳에서 온, 나보다 젊었던, 사람들이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잃고 묻힌 곳에 나는 와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무덤이 있었다. 바로 가장 어린 나이로 참전했다가 고인이 된 당시 17살 소년의 무덤이었다.

 그 당시에도 17살의 나이는 결코 죽기에 적절치 않았다. 하지만 그 소년은 지금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 곳에 조용히 묻혀있었다. 저 멀리 간 내 아이의 소식만을 기다렸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갑자기 마음이 저려왔다.

 선택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 머리가 복잡해지면 종종 이곳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친구와 다투고 속이 상하거나, 갖고 싶은 물건을 가지지 못해 속상할 때, 자기 마음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아 풀이 죽어있을 때는 이 곳에 함께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죽음은 남은 자에게 그 무엇이라도 남기기 마련이니까.






 매일 아침 낡은 고전을 읽고 마음을 가라앉히던 작년 한 해는 내게 인생에서 커다란 상실을 겪을 때였다. 내가 버텨온 그 길이 무너질 때, 내가 쌓은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때, 나의 삶도 무너진다. 그건 사실이다. 아니, 삶이 아니라 마음이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를 돌보고, 일터에 나가야 하니까. 잠이 오고 잠이 깬다. 삶이 오면 살아가야하는 것 처럼. 

 그 때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오래된 고전을 읽었다. 예전에는 들어오지도 않던 구절들에 공감이 갔다. 베르테르의 사랑이야기에 숨어있다가, 싱클레어의 어두운 뒤안길을 따라 걷다가, 노인이 낚은 물고기와 함께 컴컴한 바다의 작은 배안에서 며칠을 뜬눈으로 지내기도 했다. 왜 그런 이야기들이 지금 이 시간에 내 마음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다. 세상의 다른 곳, 사람의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머물렀고, 그렇게 잠시 머무르는 그 시간이 그냥 좋았다. 소설은 훌륭한 도피처이고, 그중에서도 질좋은 고전은 아늑한 안식처가 된다. 그 안에서 며칠을 먹고 자다보면 나도 모르게 세상의 비밀을 혼자 알고 있는 듯, 의연해진다. 

 그래, 그때는 아주 고독하기 그지 없었지만 고독속에서 책과 함께 있을 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지나고 보면 그때 내게 왔던 상실의 사건은 아주 잘 된 일이었다. 그 시간동안 나는 내가 살아오던 모든 방식을 중지해야했고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던 마음의 기능도 고쳐 써야 했다. 

 

 파도는 쳐야했고 바람은 불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파도를 맞아야 했고 바람을 맞서야 했다. 모든 것을 잃는 다것은 새로운 것을 채울 가장 좋을 때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나는 글이 아니라 시간으로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동안 나의 벗이 되어준 책들과 함께 아주 휼륭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피해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나에게도 인생의 사건들은 닥쳐왔고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와 같은 물음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기를 반복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나고보면 그런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상실, 죽음, 병고와 같은 것들을 겪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단단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가 어떠한 아픔도 겪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 아이에게 가장 큰 아픔을 한번에 줄 수 있도록 미리 만들어 주는 것과 같다. 아픔도 고통도 겪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아이가 그것과 함께 할 힘을 길러줘야 하는 것이 부모의 사명이다. 


삶의 파도를 타는 법은 어떠한 사건에도 유연해지는 것이다. 딱딱한 마음이 아니라 단단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내게 지금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이 필요할 뿐이다. 

 언제까지 단단해져야하는가에 대한 허탈함이 묻어날 때는 어디든 좋으니 묘지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디도 갈 수 없다면 낡은 고전을 찾아 구절구절 읽어나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무일도 겪지 않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그저 그 어떤 일을 겪더라도 우리는 적절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그 속에서 그저 여물어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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