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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Jul 06. 2023

용서가 아니라 그냥 지금을 사는 중이에요

미움의 한 중앙에서.



고기를 잡는 일이 나를 살리고 있는 것과 똑같이 나를 죽이는 거고, 그 애가 나를 살리고 있는 거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너무 많이 나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되지. 


노인과 바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날개를 꺾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자신만을 믿는 사람은,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방법이 악행인지도 모르고 그것을 선행이라 지칭한다. 자신만 믿기에 양심이 없다. 자신만 옳기에 기준이 없다. 자신이 맞기에 진실은 없다. 특히 기세가 등등한 그의 앞에서 작은 천사들의 날개는 힘없이 꺾인다. 

 내 삶 한가운데 피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가 떠서 지기까지 한 사람을 미워해 본 적이 있던가. 

 한동안 미움의 바다에 빠져 있을 때,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미움에만 머무르면 결국 갉아먹는 것은 바로 나라는 것을. 미움에도 끝이 있다. 바로 내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한 것들을 용서하는 것에 관한 답은 내지 못했다. 나를 위해 용서하는 것이라는 말을 백만 번 되새겨보아도 결코 쉽지가 않은 것이 바로 용서이다. 왜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가. 왜 나쁜 사람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왜 그가 한 파괴의 짓에 대한 징벌을 논하지 못하는가.






 십여 년도 더 된 이야기다.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어떤 계획 없이 차를 한대 빌리고 되는 대로 숙소를 구했다. 정처 없이 운전을 하고 마음에 드는 곳에 멈춰 서서 산책을 하고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하다가 또 차를 타고 섬을 가로지르거나 섬의 끝자락을 따라 박음질을 하다가 어느 날은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는 겨울이었으니까, 떠났다는 감격에 젖어 계절도 잊고 쏘다니다 보니 감기에 든 것이다. 약을 짓기는 늦은 시각, 와인 한 병을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그리고 와인을 따서 끓여 마셨다. 마시다 보니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를 시름시름 앓게 하는 건 추위가 아니라 외로움이었다. 그건 혼자 있는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지 못하는 상대적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이 오래되다 보니 곪았던 것 같아. 곪아서 터지고 나니 그 상처의 나이를 알게 되었다. 꽤 오래된 이별의 후유증이었던 거다. 후유증은 치유되지 않고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몸이 아프면 함께 떠 올랐다. 그게 바로 고통의 증거다. 내 마음에 아직 고통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와인 한 병을 깨끗이 비웠고 친한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울면서 통화를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의 감기는 완전히 사라졌고 내 마음의 곪은 상처도 완전히 나았다. 더 이상 헛헛한 외로움에 시달리지 않았고 알 수 없는 불안감도 많이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완전한 고독 속에서 자신과 대화하고, 그 대화 속에 내 진심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 진심은 낫고 싶어 한다. 낫고 싶어서 나에게 대화를 청하는 것이다. 아픔으로, 곪음으로, 상처로.

 그러니 어찌 그것을 외면하겠는가. 그날 이후 나는 새살이 돋았고 꺾인 날개가 펴졌던 것 같다. 그 날개로 다시 나의 일상을 날았다. 


  부러진 날개로 나의 삶을 비행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와 동행할 수는 있어도 결국 내 몸을 날게 할 날개는 내 등뒤에 달려 있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비행해야 한다는 것. 그 외로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했다. 

 그렇다고 나의 날개를 꺾는 사람을 용서하지 말자. 용서는 하는 것이 아니다. 아프게 한 나쁜 사람을 왜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하는 게 아니다. 지금부터는 내 삶을 사는 거다. 행복은 내 삶에 몰입할 때 온다. 나의 삶에 깊이 몰입할 때 나도 모르게 등뒤의 날개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날개가 필 때, 나는 용서하지 않아도 용서하게 되었다. 내 삶을 허비하지 말고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나의 판단이요, 내가 죽도록 미워했던 사람에 대한 나의 응징이었다. 

 불규칙한 은하수처럼 펼쳐진 깊은 그 우주 속 빛나는 별의 무리. 그중 하나가 나라는 것. 그것은 어떤 어둠에도 스며들지 않는 빛이 있다는 것. 

 미움을 통해 얻은 내 삶의 수업이었다.



용서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의 삶을 사는 것. 

그게 바로 미움에 대한 내 삶의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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